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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ul 11. 2020

사용하지 않는 펌프

마시지도 못하는 물을 오늘도 열심히 끌어올리고 있다.

캄보디아 시골에 있는 한 공립 초등학교에 갈 기회가 생겼다.

오래전부터 아워스쿨과는 어떻게 다른지,

전기 공급 상황은 어떠한지, 식수나 교육 환경 등등

궁금한 것들이 많아 가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학교를 들어서기가 무섭게 학교 입구 한편에

수동 워터 펌프기가 보기 좋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닥이 말라 있는 게

'아~ 이것도 고장이 났구나' 생각하며 무심결에 몇 번 펌프질을 해 보았다.


어라?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곳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펌프도 꽤나 멋지게 잘 만들어져 있었고,

바닥도 시멘트와 벽돌로 잘 꾸며져 있었다.


'사용하고 있는 펌프구나..'

이 학교 학생들은 적어도 물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

내심 부러운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캄보디아 시골 공립학교에 설치된 워터펌프 어라? 물이 나오네??


한참 학교를 돌아보고 선생님들과의 면담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갈 때쯤 목이 말라 학교 앞 작은 구멍가게에 가서 선생님들과 함께 마실 음료수를 사러 갔다.

그런데 집에 $30 가량하는 비싼 정수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캄보디아에서는 $30가 아주 큰돈이다


바로 옆에 워터펌프가 있고, 물도 잘 나오는데

왜 비싼 정수기를 샀는지 너무 궁금해서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가게 주인의 대답이 학교에 있는 워터펌프에서 나오는 물은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니 학교 워터펌프에서 물을 길어 하루 정도 물통에 받아 놓으면 물이 조금 붉은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냄새도 나서 마시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닌가.


학교 앞 가게에  놓인 비~싼? 정수기


캄보디아에는 우물을 파거나 워터펌프를 설치해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NGO가 참 많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우물물이나 워터펌프에서 나온 물을 식용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물을 파고 워터펌프를 만들어 주면서

뜻깊은 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놓은 워터펌프는 그렇게 마시지도 못하는 물을 오늘도 열심히 끌어올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준 이후에도

깊이 들어가서 오래도록 제대로 처다 보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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