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el May 17. 2020

원목책상

갖고 싶은 것을 갖는다는 것


어릴 때부터 큰 책상을 갖고 싶어 했다.

내 공간이 없는 삶을 살았어야 했기 때문에 내 방, 내 책상이란 것에 더 집착했던 것 같다.

처음 내 책상을 가진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공부를 조금 잘한 덕분에 특별반이란 곳에 들어가게 되었고, 학교에 지정된 독서실 책상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 작은 공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매일 같이 책상을 닦고 책을 이쪽저쪽 꽂아 보며

처음 주어진 나만의 아주 작은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애쓰곤 했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출근을 하면 물티슈로 책상을 닦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시간이 지나 훌쩍 커버린 후에는 나만의 원목책상이 갖고 싶어 졌다.

Pinterest에 나오는 원목책상을 중심으로 꾸며진 방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서재를 어떻게 꾸밀지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원목책상이 좀 비싸야 말이지..

소득과는 상관없이 소박한 삶이 몸에 베인 나로서는

책상 하나에 선뜻 수십 수백만 원을 지불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원목책상 다리를 싸게 구입할 기회가 생겼다.

큰 원목책상을 둘 공간도 없었지만 언젠가 원목책상을 가지겠다는 일념에 적금 둔다 생각하고 무모하게 원목책상 다리를 사고야 말았다.

그렇게 멋진 원목책상 다리는 조립도 되지 못한 채 박스에 쌓여 집 한켠에서 몇 년이 넘는 시간을 외롭게 보냈다.


그러다 얼마 전 큰 결심을 하고, 원목 상판을 사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몇몇 가구점을 방문한 끝에 드디어 상판을 마련하고야 말았다.

상판을 가지고 와서 사포로 곱게 밀고, 코코넛오일도 열심히 발랐다.

화학약품에 민감한지라 24시간 방에 둘 책상엔 먹을 수 있는 오일을 바르겠다는 신념으로 주방에 있는 오일 중에 가장 비싼 오일을 원목책상에 발라줬다.

오일을 먹은 원목은 색이 조금 짙어지면서 생동감을 띄는 것이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내 방 한켠에 어울리지 않는 크기의 원목책상이 놓이고야 말았다.


갖고 싶은 것을 갖는 다는 것은 내게는 항상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결정하여 사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진짜 갖고 싶은 것은 왠지 쉽게 가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오래 시간을 두고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하 보다 보면 진심으로 가지고 싶은 것인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또 하나씩 소중한 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중간중간 존재하는 기다림의 순간들도 설렘으로 느껴져 좋다.


긴 시간 생각하고, 기다리던 나만의 원목책상에서 지금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또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앞으로 오랫동안 아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원목책상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