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과 마주하며
자퇴를 원하는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때론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
"다양한 진로 체험을 하고 싶어요."
"학교는 공부만 강요해요."
"공부 외에 다른 것을 배우고 싶어요."
"정시로 대학에 갈 거예요."
"학교의 수시 중심 공부는 도움이 안 돼요."
"검정고시로 졸업하면 시간이 절약돼요."
이러한 학생들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나의 신분을 앞세워
"그래도 졸업은 해야 한다."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학생이 자퇴를 결정했을 때,
쿨하게 허락하는 부모님,
꼭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자퇴는 싫지만 자녀의 의견을 따라주는 부모님,
부모님의 반응도 다양하다.
학생들이 자퇴를 선택하는 이유는
학교 부적응도 있지만,
고등학교 수업을 듣는 것이
자신의 삶에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
수시를 염두에 두지 않는 학생들은
학교의 중간·기말고사를 무의미하게 생각한다.
정시 공부(수능 준비)에 집중하고 싶은데,
학교 시험이나 어려운 과제들 때문에
정시 준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예체능 분야(미술, 음악 등)를 진로로 정한 학생들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원하는 레슨을 받으려면 조퇴가 잦아지고,
이로 인해 학부모까지 학교에 불려 오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는 공부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학생의 본업이 공부라는 데 이견은 없다.
공부할 시기에 공부를 잘하는 것은
성실함의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바이올린 연주를 아무리 잘해도,
서울대 졸업생과 실력이 같다면
사회는 보통 서울대 졸업생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자퇴 상담을 진행하면서,
이제 고등학교 졸업이 하나의 선택지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의 욕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부모님들 역시 점차 개방적으로 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한다."
는 식의 조언은 유연하지 못하게 느껴진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퇴 후의 계획을 더욱 자세히 묻고,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다양한 방법들을
함께 모색하여 제시한다.
또한,
자퇴 후에도 언제든 어려움이 생기면
연락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미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정하고,
그에 맞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으며,
부모님까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상황에서,
학교 졸업을 강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가장 빠르게 변해야 할 교육 시스템은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수능 점수로 대학을 갔지만,
지금은 다양한 수시 전형이 존재한다.
수시 전형은 학생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떤 활동이나 대회에 참여했으며,
자신만의 뚜렷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는지 등을 중요하게 살피는 것이다.
다양성이 거대해지는 시점에서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앞으로 고등학교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기대되는 마음이 있다.
교사가 학생의 발목을 잡는 대신,
멋진 많은 기회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