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5.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내가 꾸준히 영화를 볼 수 있는 원동력은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는 즐거움에서 오는 것 같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실화에 기반한 작품도 자주 접하게 되는데 35번째 씨네아카이브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2편을 골랐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믿기 힘들 만큼 극적인 개인의 삶을 그리거나,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조명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내거나. 일부러 만들어내기도 어려울 것 같은 드라마틱한 삶을 보고 있으면 무탈한 매일에 감사하게 되고, 인생의 굴곡에 좌절하지 않고 맞서는 이들의 용기와 의지에 감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인간 군상이 존재하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도 그만큼 다양하구나’를 느끼게 된달까. 소개할 2편의 영화는 희대의 사기꾼에서 FBI 보안 컨설턴트가 된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이야기를 다룬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과 더불어 타인의 삶까지 구원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다.
'씨네아카이브 35.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전문 읽기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스티븐 스필버그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10대 후반의 나이에 수표 위조범이자 사기꾼으로 활동한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가 쓴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수시로 직업을 바꾸며 위조 수표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프랭크와 그를 뒤쫓는 FBI 베테랑 수사관 칼 핸래티의 쫓고 쫓기는 두뇌 싸움을 그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프랭크의 개인사는 일부분 각색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적 내러티브에 맞게 각색되었다 하더라도 희대의 사기꾼에서 기업과 은행의 보안 컨설턴트로 개과천선(?)하게 된 영화의 큰 줄기이자 극적인 인생사는 그대로 가져왔다.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과 연출을 맡았다. 작년에 개봉한 <파벨만스>를 본 이들이라면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각색된 프랭크의 가족사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았을까 싶다. 극 중 프랭크 아버지의 경제적 몰락과 어머니의 외도 등은 스필버그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되었던 <파벨만스>를 떠오르게 한다. 프랭크는 아버지의 경제적 몰락과 이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으로 ‘단기간에 사회적인 성공과 부’를 이루기 위한 방식으로 사기를 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비슷한 사건을 겪고도 누군가는 사기꾼,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극의 몰입도와 재미를 끌어올렸는데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끈질기게 프랭크를 뒤쫓는 FBI 수사관 칼 핸래티는 톰 행크스가 맡아 뛰어난 연기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1965년 미국. FBI를 발칵 뒤집어 놓은 희대의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팬암의 파일럿을 가장해 모든 비행기에 무임승차는 기본이고 50개 주 은행을 돌며 위조 수표로 140만 달러를 횡령한 희대의 사기꾼이 나타난 것. 더 놀라운 것은 범인이 고작 10대 후반의 소년이라는 사실이다. FBI 베테랑 요원 칼 핸래티는 프랭크의 뒤를 쫓지만 번번이 그를 놓치고 프랭크는 매번 칼의 수사망을 빠져나가는데... 프랭크와 칼의 쫓고 쫓기는 두뇌 싸움은 누구의 승리로 끝이 날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부모님의 이혼까지. 단란했던 가정이 무너지자 프랭크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10대의 나이에 가출한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던 팬암 조종사로 위장해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인다. FBI의 추격에도 놀라운 임기응변으로 수사망을 빠져나가고 조종사에서 의사, 의사에서 변호사로 사칭하는 직업을 바꿔가며 지속적으로 사기행각을 이어간다. 영화를 보며 프랭크가 벌이는 사기행각의 원동력(?)은 ‘사회적인 성공과 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프랭크가 본격적인 사기꾼의 길로 들어서기 전부터 ‘사회적인 성공과 남들의 시선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암시가 곳곳에 녹아 있다.
가세가 기울어 공립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프랭크는 이전 사립학교 교복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상상과 다른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자 새로 부임한 프랑스어 선생님을 흉내 내며 학생들을 상대로 인생 첫 사기 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사실이 발각되어 교장선생님과의 면담을 앞두고도 조퇴 허가서를 위조해 온 학생에게 어떻게 해야 사실처럼 보일 수 있는지 조언까지 건넨다. 어쩌면 이때 프랭크는 자신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았을까. 그리고 집을 나온 후 돈을 모으면 부모님과 다시 화목했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지나친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기본적으로 좋은 머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쓰지 못하고 사기꾼이 된 거다.
마리’s CLIP
“생쥐 두 마리가 크림통에 빠졌습니다. 한 마리는 포기하고 빠져 죽었지만, 다른 한 마리는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 쳐 크림을 버터로 만든 뒤 빠져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순간 저는 그 다른 한 마리의 생쥐입니다. ”
프랭크의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연설에서 들려준 생쥐 우화가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는 프랭크의 사기 행각에 행동 수칙 같은 역할을 한다. 프랭크에게 크림통에서 내젓는 발길질은 다시 부모님을 화해시키고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겠다는 일념이 아니었을까. 그 일념 하나로 죄의식 없이 벌인 사기 행각이 초래한 결과는 심각했지만 그렇다고 프랭크를 엄청난 악인이라 쉽게 단정 지을 수도 없을 것 같다. 그의 행동을 깨우쳐 주고 진짜 크림통에서 꺼내줄 어른이 곁에 없었으니까. 어떠한 이유로든 프랭크의 행동에 면죄부가 있을 수 없지만, 범죄자이기 이전에 가족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소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진심으로 그를 도와주고자 했던 칼 핸래티의 손에 붙잡히게 된 것은 프랭크 인생에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남다른 재능을 올바른 곳에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크림통에서 벗어난 생쥐가 되었으니까. 범죄자의 능력을 역으로 이용해 유사한 범죄를 막는다는 설정은 영화에서 자주 변주되는 테마지만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영화와는 뚜렷이 구분되어 프랭크의 개과천선이 더 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