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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Sep 13. 2024

다가올 삶과 사랑 그리고 시 <칠드런 액트>

씨네아카이브 48. 엠마 톰슨의 얼굴들 Part.2

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관심 가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파고 들어가다 작품에서 또 다른 배우를 발견하는 굴레를 반복하며 좋아하는 배우 리스트를 쌓아 나간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좋아하는 배우들의 국적을 살펴보니 영국 배우들이 많은 편이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가장 애정하는 두 배우 특집으로 9월의 씨네아카이브를 준비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엠마 톰슨!


씨네아카이브 48. "엠마 톰슨의 얼굴들 (배우특집 ep.5)" 전문 읽기

"엠마 톰슨의 얼굴들" Part.1 읽기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칠드런 액트>는 모든 판결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는 존경받는 판사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소년의 사건을 맡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어톤먼트』, 『체실 비치에서』 등을 집필한 이언 매큐언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이언 매큐언은 영화의 각본에도 참여했다. 제목이기도 한 ‘칠드런 액트(The Childeren Act)’는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한 1989년에 제정된 영국의 아동법을 말하는데 소설과 영화는 이 법에 근거한 판결로 예기치 않은 변화를 겪게 되는 판사와 소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받았다.


원작 소설은 이언 매큐언이 판사들과의 저녁 식사 모임에 동석했다가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판사들이 서로의 판결에 대해 토의하는 대화 속에서 드라마틱한 요소를 읽어냈고, 가정 법원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인간적인 분쟁들로 각 사건이 한 편의 드라마틱한 단편 소설처럼 느껴져 본격적으로 가정법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을 집필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고 한다.


극의 중심이 되는 ‘피오나’ 판사는 엠마 톰슨이 맡아 우아한 카리스마와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그녀만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완성시켰다. 법률 자문을 맡은 판사는 엠마 톰슨의 연기를 보고 “판사라는 위치가 갖는 외로움을 잘 반영했다”라고 찬사를 건네기도 했다고. <칠드런 액트>는 개인적으로 엠마 톰슨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엠마 톰슨이 표현하는 ‘피오나’ 이외에 다른 인물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 작품이기도 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존경받는 판사 피오나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은 가운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한 소년 애덤의 생사가 달린 재판을 맡게 된다. 치료를 강행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애덤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피오나는 이례적으로 병원에 찾아가 애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날의 만남은 두 사람의 삶에 예기치 않은 파장을 불러온다.


피오나는 어떤 판결이 소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칠드런 액트’에 입각해 판결을 내리기 위해 애덤의 인생에 관여하게 된다. 이는 피오나가 애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애덤 역시 피오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두 사람이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피오나와 애덤은 각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피오나에게는 결혼생활, 애덤에게는 종교가 이에 해당하는데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믿음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피오나와 애덤의 만남은 그 믿음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작용한다.


마리’s CLIP: “제 선택이에요. (My choice)” – 애덤

가장 크게 변화하는 인물은 애덤으로 그에게 주어진 삶은 ‘죽거나 혹은 살거나’ 두 가지뿐이었지만 피오나와의 만남은 그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했고 종교에 대한 관점과 삶의 태도까지 변화시킨다. 그리고 애덤은 자신의 변화를 피오나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피오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애덤은 피오나와의 첫 만남에서도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애덤의 한 마디는 줄곧 판사로서 논리적 판단과 감정을 배재한 이성적 모습을 보이려는 피오나를 변화하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처럼 느껴졌다. 피오나는 어디까지나 ‘칠드런 액트’에 의거해 판결을 내렸고 한 소년이 ‘다가올 삶과 사랑, 그리고 시’를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고 생각했지만, 피오나로 인해 변화한 소년 역시 이성에 매몰되어 있는 피오나의 감정을 되살려 주는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피오나는 애덤의 변화와 선택을 지켜보며 삶이란 항상 이성적인 논리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때로는 이성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감성에도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며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우리의 삶도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 것처럼.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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