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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15. 2024

실력으로 차별을 넘어 최초를 써 내려간 <히든 피겨스>

씨네아카이브 52. 세상을 바꾼 변화 Part.2

MBTI를 믿지 않지만,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나를 간파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정리 강박에 가까운 J성향을 들켰을 때와 끊임없이 공상의 나래를 펼치는 N성향이 들켰을 때. 어릴 때부터 자주 하던 공상 중 하나는 ‘만약 천재로 태어났다면, 나는 세상을 바꿀만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실상은 평범 조차 쉽지 않은 이의 공상 치고는 터무니없는 것 같지만, 비범한 이들의 업적을 돌아보며 이들의 성취 이면에 가려진 인간적 고뇌에 공감하고 그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번에 소개할 2편의 영화는 모처럼 나의 공상에 다시 불을 지핀, 비범한 능력으로 세상을 바꾼 변화를 이룩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과 <히든 피겨스>다.


씨네아카이브 52. "세상을 바꾼 변화" 전문 읽기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데오도르 멜피, 2016년 개봉


(이미지 출처: 네이버)

<히든 피겨스>는 1962년 미국 나사에서 우주 임무 그룹을 맡았던 흑인 여성 3인방의 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마고 셰털리의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고는 어린 시절부터 나사 출신 아버지에게서 과학자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는데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시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아카이브를 토대로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업적을 발견하고 그녀들의 이야기에 집중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성공했는데 제89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색상,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백인 남성 위주였던 나사의 역사를 새롭게 그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는데 미국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흑인 여성 3인방의 이야기를 양지로 꺼내 제목 그대로 ‘숨은 공로자’들을 세상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최초’가 되기 위해 이들이 겪어야 했던 불합리한 차별을 오로지 그녀들의 능력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감정보다 이성에 집중해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한 우주 임무는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으로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진행된 미국의 첫 유인 우주 계획으로 냉전 당시 우주 경쟁에서 소련보다 먼저 인간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를 말한다. 그러나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미국보다 먼저 우주로 나가면서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보낸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후 머큐리 프로젝트가 조금씩 발전해 아폴로 프로젝트가 되었고 결국 미국이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타고 태어난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나사에 근무하는 흑인 전산원들의 리더이자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로 나사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 시기, 천재의 두뇌와 재능을 타고난 3명의 흑인 여성은 나사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되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사회적 편견과 따가운 시선에 점점 지쳐 간다. 한편,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난항에 부딪히고 해결책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 공식을 찾아내는 것뿐. 과연 캐서린과 도로시 그리고 메리는 사회적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어 미국 항공 우주 역사상 ‘최초’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을까?


영화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한창 심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인종차별을 비롯해 성 차별에 대한 내용도 비중 있게 다루지만 기존의 인종차별을 다루는 영화들과는 궤를 조금 달리 하고 있다. 인종차별에 집중하기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영화를 한층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 개인적으로 <그린북>과 함께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마리’s CLIP:

“나사에서는 모두 같은 색의 소변을 본다! (We all pee the same color!)”

<히든 피겨스>에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실력으로 극복한 세 명의 주인공들만큼 기억에 남았던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머큐리 프로젝트의 책임자 알 해리슨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많이 언급하는 전설의(?) 화장실 신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조차 어렵게 만드는 관습과 제도에 울분을 토하는 캐서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기관의 책임자로서 몸소 변화를 실천하던 모습과 유색인종 화장실 간판을 때려 부수고 남긴 대사는 손에 꼽힐 만한 명대사로 기억에 남아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인물들이 있었기에 세 여성이 자신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게 되는 결말이 관객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 아닐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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