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산책 ep.1 (feat. 샤토 비질)
내가 프랑스와 첫 인연을 맺게 된 도시이자 여행지로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르노블. 파리, 마르세유, 보르도, 니스처럼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알고 나면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도시다. 보통 프랑스 론 알프스 지역을 여행할 때면 리옹이나 몽블랑처럼 많이 알려진 곳을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르노블도 보고 즐길 거리가 꽤 많다. 파리랑 비교하면 작은 마을처럼 느껴져 심심하다 툴툴거리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자연경관도 아름답고 근교에 다녀올 수 있는 곳도 많은 주거지로서도 여행지로서도 부족함 없는 곳이었다. 사실 파리에 비해 작을 뿐 프랑스에서 16번째로 큰 공업 도시이자 산업도시이며 1968년에는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도시 그르노블. 조금 특별한 론 알프스 지역 여행지로 어떨까.
스탕달의 고향 그르노블 (Grenoble)
내가 프랑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도시는 그르노블이다. 프랑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면 들어봤을 법하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곳일 수도 있다. 나도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야 알게 된 도시니까. 그러나 고대 로마 시대부터 발전해 온 역사가 깊은 곳이자 소설 『적과 흑』으로 유명한 스탕달의 고향이 그르노블이다.
그르노블 중심가에는 스탕달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아파트를 개조해 만든 스탕달 박물관과 스탕달의 생가가 있다. 가뇽 아파트라고 불리는 스탕달 박물관은 스탕달이 엄격한 아버지를 피해 숨어들었던 공간이자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 소설가로서의 자양분을 기를 수 있었던 곳이다. 박물관 맞은편 생가는 스탕달의 가족들이 대를 이어오며 살던 곳으로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행복의 상징인 곳이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억압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르노블 시립도서관 연구소에는 스탕달의 자필 원고, 그의 작품과 관련된 논문 등 많은 양의 자료가 보관되는데 스탕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다면 그르노블 관광 안내소에서 세 곳을 소개하는 가이드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방문할 수 있는데 스탕달 박물관의 경우 토요일에만 문을 열고 생가는 그르노블 관광 안내소를 통해 방문 신청을 해야 한다.
그르노블 구시가지
프랑스는 파리를 제외한 도시들은 구시가지가 존재한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파리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특별히 구/신시가지를 나누는 기준이 없지만 (콕 집어 나누자면 신도시로 조성된 라데팡스가 있긴 하다) 다른 도시들은 구시가지를 꽤나 명확하게 구분해서 나누는 편이다. 대분이 그렇듯 구시가지에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들이 모여있어 여행 포인트로 꼽힌다. 12세기에 건립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해 유럽 소도시 감성을 품은 골목길, 소극장과 바스티유까지 그르노블 구시가지도 볼거리가 많다.
구시가지 생 앙드레 광장에서는 그르노블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라 따블 홍드(La Table Ronde)는 1739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파리 오데옹의 ‘르 프로코프’와 53년 차이. (르 프로코프는 1686년 처음 문을 열었다) 역사가 오래된 곳인 만큼 이곳을 거쳐 간 사람도 이야기도 많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들의 비밀 아지트 역할을 했고,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로도 사용됐는데 장 자크 루소, 스탕달이 즐겨 찾았다. 파리에 레 두 마고 (Les Deux Magots)와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가 있다면 그르노블에는 라 따블 홍드가 있는 셈이다. (다만... 음식 맛은 장담 못 하겠다)
알프스 산을 방패 삼은 분지 도시 그르노블의 바스티유 요새
그르노블은 지리적으로 프랑스 론 알프스 지역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의 춘천이나 대구처럼 분지라 알프스산맥이 도시를 빙 둘러싸고 있어 도시 어디서나 알프스가 보인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1년 365일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연경관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나의 첫 해외 거처이자 9개월가량을 보낸 그르노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도 눈 덮인 알프스 산이다.
알프스 풍경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바스티유 요새에 올라가 보는 걸 추천한다. 바스티유 요새는 그르노블 대표 관광 명소로 가벼운 하이킹을 통해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고, 이제르 강 근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제르 강 근처에 다다르면 동글동글한 케이블카 4쌍이 요새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포켓몬이 들어있을 것만 같은 동그란 케이블카는 1934년부터 운영해 온 그르노블의 또 다른 명물이다. 케이블카는 멀리서 보면 귀엽지만 오래된 세월만큼 실제로 탑승하면 스릴 넘치는(?) 흔들림 많이 느껴지는데 꼭 놀이 기구 타는 기분이랄까. 요새까지는 걸어가면 1시간 정도 걸리고 케이블카는 5분이면 정상에 도착하기 때문에 다이어트 목적이 아니라면 대부분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편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그르노블을 빙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산맥과 도시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날씨 요정이 함께한다면 유명한 몽블랑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바스티유에 올랐으면 요새도 봐야 하는데 항상 주변 풍경을 눈에 담기 바빠서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었다. 요새는 2000년 넘게 그르노블을 지켜온 곳이라고 하니 다음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제대로 봐야겠다. '언제가 다음에'라는 명목으로 여행의 목적과 이유를 남겨두고 오는 거지.
그르노블 근교 샤토 비질(Chateau de Vizille)
그르노블은 차로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근교 도시도 많다. 미식의 도시로 리옹은 30분, 스키 족들의 사랑을 받는 샤모니 몽블랑과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한 안시도 그르노블과 가깝다. 그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샤토 비질(Chateau de Vizille). 비질은 그르노블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로 우리나라의 읍이나 면 정도 규모라고 할 수 있는 코뮌(Commune)에 속한다. 샤토 비질은 이 마을에 있는 공원이자 공원 내부의 성으로 도피네 지역에서 가장 권위 있고 중요한 성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5번의 사계절을 보냈다. 5번의 가을을 지나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샤토 비질을 이야기할 것 같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가을을 보고 싶다면 고개를 들어 샤토 비질을 보라고. 사계절 다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에 방문하면 공원을 가득 수놓은 울긋불긋한 단풍을 눈에 한가득 담아 올 수 있다.
샤토 비질은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 언제든 주말마다 도시락 싸서 피크닉 가기에도 좋은 곳인데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잔디와 호수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백조와 오리도 볼 수 있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서 바게트 조각이나 쿠키를 던져 주기도 하는데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곳도 있으므로 사전에 안내문을 꼼꼼히 살펴볼 것!
Reference
Wikipedia France, Bibliothèques municipales de Grenoble Official Web Site
Grenoble Office de Tourisme Official Web Site
본 글은 매일경제/네이버 여행+ CP 8기 활동으로 제공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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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