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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경 Jun 10. 2020

폭죽이 피어오르는 여름바다

무엇이 밤마다 폭죽을 피어오르게 하는가?


6월의 강릉은 벌써부터 여름이었다.


따가운 볕과 지글거리는 바람, 청춘을 맞은 녹음들이 이르게도 나를 반겼다. 그렇게 달궈진 낮을 온종일 부둥키고서야 선선한 밤을 맞이했다. 그제야 예약해둔 바닷가 바로 앞의 고층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릉까지 왔으니 옵션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눈을 뜨는 아침, 졸린 눈을 비벼가며 마주하는 바다의 풍광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선물한다. 무릎을 탁 치는 여행의 묘미랄까. 그러한 이유로 바다 전망의 옵션을 버릴 수가 없다.



292호의 밤 


그곳은 창문을 열면 푸르거나 검은 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고요함이 좋다가도 철썩대는 파도 소리가 이내 마음을 살랑였다. 그때였다. 사방에서 무언가 터지는 굉음이 순간 바다의 적막을 가로챘다. ‘슝, 타다닥.’ 파도가 놀랐는지 가만히 멈추어 잔잔하게 움직였다. 다시 또 한 번 굉음이 퍼졌다.  ‘피웅, 타다다다닥.’ 이번엔 바다가 겁먹고 제 몸을 숨겼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바다와 하늘이 꽁꽁 숨어버린 탓에 분간하질 못했다. 밤바다가 짙게 드리워지는 사이 나는 그제야 캄캄한 바다를 창문으로 막았다. 더 이상 고요한 여름 밤바다는 그곳에 없었다.

폭죽음이 멈추지 않고 연달아 피어오르자 한낮의 하늘을 연상케 했다. 불빛이 지나간 자국마다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고, 바다는 점점 고요히 정적을 머금었다. 뾰로통해진 나를 지켜보던 동거인이 말했다.

"그냥 이맘때 누리는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즐겨."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특권은 누가 부여한 것이며 또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내 처지가 짐짓 억울해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에도 폭죽은 끝없이 하늘을 울렸다. 끝난 것 같다가도 저쪽에서 밝았다가, 또다시 이쪽으로 번져왔다. 그 사이 베개에 파묻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창문에 비친 어둠을 바라봤다.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모를 일이지만 둘이 하나가 되어버린 사실만은 알아차렸다. 그렇게 그날 밤, 우리와 그들만 잠 못 이루는 밤을 함께 지새웠다.


무엇이 밤마다 폭죽을 피어오르게 하는가?


바다를 찾아온 몇몇의 여행자는 그날의 의지를 밤마다 불태운다. 한껏 고양된 기분은 폭죽에 실려 작렬하고 만다. 바닷가의 여름밤이 그토록 화려하게 수놓아지는 것도 그들 덕분이다. 폭죽을 터트리는 행위는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호불호의 문제가 더는 아니다. 여름날의 의식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으니 말이다. 청춘들의 여름과 닮아서 그런지 매해 여름 밤바다는 가장 요란하고도 찬란한 찰나의 빛을 뿜는다. 그래선지 폭죽은 한정된 시간의 기회를 얻어 부리나케 팔린다. 낮에 가본 바닷가 앞 상점에는 다양한 폭죽들이 즐비해있었다. 길고 긴 막대형 폭죽부터 작고 네모난 상자형 폭죽까지 모양도 다양했다. 놀러 온 일행들의 손에는 저마다 길거나 짧은 폭죽들이 제 손에 들려있었고 발걸음도 경쾌했다. 그렇게 그들은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열렬하게 불태우기 위해서. 그런 밤이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청춘의 공간에는 불꽃이 튀겼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빨갛고도 샛노란 섬광이 번뜩였고, 불꽃이 질 때면 환호성을 질렀다. 여름만 되면 발현되는 여름병 같은 것이었다. 그래선지 한국의 여름바다는 밤에도 늘 분주했다. 밤은 만물이 재생하는 시간이다. 생물이 다시 살아 움직이려면 제시간에 기운을 회복해야만 한다. 밤은 그런 생물을 위해 기꺼이 커튼을 치는 때다. 그러니 바다도 밤에는 분주하지 않아야 한다.

여름철에 찾아 나섰던 서양의 해변에서는 개인이 폭죽을 터트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유와 적막을 즐기는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치자면 여기는 억눌린 한이 분출되는 형상이라 해두자. 어쨌거나 그곳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바다와 하늘을 물들이지 않았다.

때로는 내게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그저 당연함이라는 권리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누리고 있었는가. 폭죽이 사방에서 터지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지만 다른 누군가는 두귀를 막는다. 당연함은 자칫 거만하게 보여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가 각자의 방식대로 여름을 즐기고 바다를 누리더라도 마땅히 당연함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릉의 밤바다는 나 같은 사색꾼들에겐 아직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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