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왜 나는 이미 지난 일을 곱씹을까?

질릴 때까지 씹고 나서야 알게 된 것

by 본조잘


주변에서 보면 간혹 기억력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 있다.
학습에 대한 기억력이 아니라
'그런 것도 기억하고 있어?'
하게 되는 별 것 아닌 것들을 잘 기억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이런 기억력을 학습하는데 잘 이용했다면 학창 시절
조금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같은 부서, 타 부서, 환자들, 보호자들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다 보니 그 시기에 나는
상처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굳이 기억하고 저장했다.
나에게 별 도움되지도 않을 그 기억들은 혼자 있을 때면
꼭 다시 생각하고 곱씹으며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려 하면서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고 더 상처 주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 좀 그만하고 싶은데 나 왜 그러지?' 하며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내 뇌의 작용 방식이 너무 싫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도 많은데 왜 하필 불편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점령하고 되새김질하듯 떠올리게 될까?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심리적 반추'라고 한다.

불편한 기억은 찝찝하다.
미완결 상태의 어떤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기억들은 대부분 수치심, 억울함, 화 와 같은 감정이다.
이런 개운치 않은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생각을 되새김질한다.
그때의 불편함을 씻어내고 싶어서 말이다.
손에 더러운 게 묻었다고 '아 괜찮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른 곳에 옮겨 묻을까, 냄새날까 싶어
깨끗하게 닦아내고 싶은 마음과 똑같다.

혹은 다시는 똑같은 감정을 겪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다시 생각하고 되돌려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검토와 방어 본능이 작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니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만 생각해야지'라고
다짐할수록 그 생각이 더 떠오르는 것이다.
억제하고 억누를수록 튀어나오는 반동.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흥미를 잃는 청개구리 심보.

나는 그럴 때마다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질릴 때까지 곱씹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제 풀에 지쳐
'아.. 몰라 몰라.. 그만하자'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하느라 뇌가 너무 과열되어 멈춰버리는 상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것.
곱씹는 동안 올라오는 부정적 감정들을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치명적 단점은 있지만
부정적 감정을 둔감화 시키는 데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좋아하는 음식도 삼시세끼 내리 먹으라고 하면
질려서 쳐다도 보기 싫어지듯 부정적인 생각과 경험도
결국 그렇게 된다.

그러다 어떤 날은 문득 궁금했다.

'그 사람은 지금 뭐 할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상처 줬던 그 사람은 그
때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기억조차 못 할 텐데 나 혼자 곱씹고 있는 지금이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나만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기억도 못 할 텐데 내가 왜?'

생각이 거기에 도달하니 맥이 끊기고 허무했다.
되새김질하며 다시 씹어서 삼켜봤자 영양가가 1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계속 씹고 있어 봤자 상처만 날 뿐이라면 뱉어내야 현명하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기억을 되새김질한다는 것이 심리적인 반추가
꼭 불쾌한 경험이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소가 되새김질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듯 과거의 경험에서 스스로를
다짐하고 그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쓰고 어떻게 다룰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생각은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도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여전히 불편한 기억은 불쑥 떠오른다.
아마도 살아가는 내내 그렇게 나를 귀찮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을 다시 씹으며 상처를 낼지
아니면 뱉어내고 그냥 흘려보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모든 기억이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들은 단지 의미 없이 지나가도 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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