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길을 바꾸는 주문
지나온 인생의 시간 동안 아마도 나에게는 여러 번의 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봄은 봄인지도 모르게 지나갔으며 인생의 따스한 봄이라고 해도 그때의 나는
그 봄을 온전히 만끽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완벽하길 바랐고, 항상 긴장 상태에 놓여있으며
나 자신에게 항상 엄격했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끊임없었기에 말이다.
그랬었기에 40대가 된 지금 다시 다가올 인생의 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봄을 다시 맞이한다는 건 뭘까? 생각해 봤다.
어쨌든 봄을 다시 맞이한다는 건 결국 겨울을 얼마나 잘 보내고 이겨냈느냐다.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기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와 따뜻한 봄바람과 햇볕을 받을 수 있을지는 겨울을 어떻게 잘 지내느냐다.
인생의 겨울은 언제든 찾아오고 때로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기도 한다. 외부적인 요인의 매서움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겨울에 가두기도 한다.
아마도 스스로를 겨울에 가둬두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생의 어둠과 힘듦 속에서 누군가의 위로든 자기 위로든 결국엔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와 인지적 유연함이 없다면 어둡고 추운 땅을 뚫고 나올 힘과 의지는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값비싼 영양분을 많이 주고 온도를 유지해 줘도 스스로가 뚫고 나올 단단함이 없다면 땅에 박힌 씨앗은 결국 새싹이 될 수 없고 봄을 맞이할 수 없다.
어두운 땅속에 갇혀 있을 뿐.
남다르게 뭔가를 준비하고 값비싼 영양분을 얻어서 봄을 맞이하는 게 아니다.
그저 잘 버티고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이 봄을 맞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잘 버틴다는 건 말은 쉽지만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현대사회와 나를 흔드는 누군가의 이야기들 거기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까지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너무도 폭풍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폭풍 속에서 결국 잘 살아간다는 건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뿐이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나는 생각의 유연함, 심리적 유연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기에 그냥 버티기만 해 서는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버티기만 하면 결국 부러진다.
단순히 "버티는 것"을 넘어,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핵심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지내 왔던 폭풍 같은 시간 속에서 흔들릴지언정 뿌리 뽑히지 않을 유연함을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준 나만의 주문 같은 말이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우니, 당장의 나쁜 일이 복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일이 화가 될 수도 있다는 이 말이 어느 순간부터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이 되었다.
이 말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 이 말을 되뇌는 순간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다음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생각의 길을 한 방향으로만 가둬두지 않고 부정적 사건 속에서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나를 사고의 확장과 또 다른 가능성의 발견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보면서 비록 바닥을 쳤지만 다시 위로 튀어 오를 수 있는 발판으로 만드는 회복 탄력성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특정 사건의 경험 속에서 상황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방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은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고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라기보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자신이 부여한 절망적 해석 때문이지 않을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찌할 수 없다. 어쩌지 못하는 사건 속에 사로잡혀 나를 매몰시킬지 아니면 어쩌지 못하는 사건에 대한 곱씹음으로 나를 붙잡아 두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생각의 전환부터 시작해 볼지는 각자의 몫이다.
내게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못해 볼 일은 아니다.
관점, 생각, 인지라는 것 모두가 습관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결국 생각의 흐름이 지나갈 길을 만든다.
물길은 흐르던 물줄기를 따라서 흐른다.
새로운 물줄기를 파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몇 번의 반복은 결국 물이 흐를 길을 만들게 된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미 흘러버린 부정적이고 가고 싶지 않은 길이라면 물줄기를 바꾸기 위한 시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거친 땅에 물이 처음 흐르기는 어렵지만 한 번 물길이 나면 다음부터는 그 길을 따라 조금씩이라도 자연스럽게 흐르듯 생각과 말의 습관화는 어떤 사건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혹은 당황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수용과 관점 변화라는
안전한 물길로 생각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말하는 대로 되니 말도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하고, 생각도 습관이기에 함부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뇌는 신경가소성이라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신경가소성의 핵심은 사용하면 변화한다는 것이다.
"난 안돼" "역시 나쁜 일만 생겨" 하는 말과 생각들은 뇌를 절망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넓히고 그 길을 따라 작은 일에도 우울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지만 내 경우 "새옹지마" 같은 말은 습관처럼 내뱉게 되면 뇌는 수용과 회복으로 가는 길을 닦게 되고 자연적으로 어떤 사건을 직면했을 때 생각은 내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조금 더 객관적이고 희망적인 결론을 낼 수 있게 흐른다.
인생의 봄을 언제 또 맞이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40대가 넘어가면서 더 다양해지는 책임감과 인생의 숙제, 사회적 압박감 속에서 시들어버린 나무가 아니라 비, 바람을 맞을지언정 뿌리 뽑히지 않고 다시 한번 꽃을 피우겠다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나의 주문 같은 이 말과 생각은 단순한 자기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잠재의식을 향한 끊임없는 자기 암시이며 고통의 순간에 뇌가 길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는 가장 강력한 자기 최면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