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계절은 내가 결정하기로 했다.
작년 봄 철쭉을 보러 갔다가 나도 모르게 어디에 홀렸는지 철쭉 분재화분 하나를 사 왔다.
식물을 키우는 데는 영 소질이 없어 그 키우기 쉽다는 다육이조차도 잘 키우지 못했는데 무슨 용기로 분재를 집에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잘 키워서 다시 다가올 봄에 예쁘게 꽃 피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데려온 철쭉을 약 1년여 동안 애지중지 키웠고 집안에서 키워서인지 조금은 빠르게 봄을 맞이한 듯하나 둘 꽃 봉오리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식물을 그것도 꽃 분재를 죽이지 않고 다시 꽃 피우다니!!'
그리고 그 꽃들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내 인생에 이렇게 꽃을 피운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는 이미 꽃을 피우고 졌을까 아니면 꽃을 피우기 위해 여전히 애를 쓰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인생을 사계절에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전체의 인생의 4개의 계절로 나누어서 말이다.
찬란하고 열정 넘쳤던 20대를 여름에 빗대기도 하고
중년에 접어들어 갈 때쯤을 가을의 시작이라 말하기도 한다.
40대가 되어가면 뭔가 더 쓸쓸한 것만 같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이라 여기는 이야기들이 많다.
1년여간 동안 열심히 키우며 정성 들인 철쭉이 꽃을 피운 걸 보며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 인생을 큰 4계절로 나누지 말고 돌고 도는 순환의 4계절의 반복이라 생각하기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인생의 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칙칙하게만 느껴졌고 나는 또 다른 봄을 맞이하고 싶었다.
철쭉을 다시 꽃 피우기 위해 여러 우여곡절과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저 꽃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낸 것처럼 40이라는 나이에 새롭게 무언가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40세에 등단한 박완서 작가
52세에 맥도널드를 인수한 레이 크록
44세에 월마트를 창업한 샘 월턴
그 외에도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정점에 오르거나 전문가가 되어 있거나 두터운 경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한 사람들은 많았다.
이들의 인생은 지속된 봄이 아니라
여러 4계절을 보내고 또 보낸 뒤 다시 맞이하는 새로운 봄이 아닐까?
다시 피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게 길가에 들꽃이든 고목에 피운 꽃이든 우담바라든 또다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비바람을 이겨내며 인내하고 단단하게 굳은 땅을 뚫고 나올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피고 시들어버린 꽃이 아니라 언제든 피어날 수 있는 꽃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낙엽 지는 쓸쓸한 가을에 가두어 두고 앞으로는 내게 겨울만 남았구나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나는 언제든 꽃을 피우고 따스한 햇빛을 받을 봄을 기다리는가 그것은 자신 스스로가 인식, 나를 위한 사고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신체적 한계야 자연의 섭리이기에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관리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지만 정신적, 정서적 한계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결정짓는데 내가 굳이 나에게 한계를 두고 가둬둘 필요가 있을까?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굳이 무언가를 해내고 큰 목표를 만들어 성공하겠다기보다는 스스로를 한계와 테두리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그어놓은 테두리를 지우고 나면 계절은 언제든 봄으로 흐를 수 있다.
내게 또다시 봄이 언제 올지 모르고 다시 만날 봄을 위해 겨울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맞이하고픈 그 봄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신체적 한계를 대신할 유연한 생각과 지혜로움을 영양분처럼 채워가며 다가올 계절을 겸허히 마주해 본다.
다음 글에서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외부적 요인 비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스스로에게 거는 작은 주문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제 글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