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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스 Nov 26. 2021

나를 지키는 매일의 리추얼

오늘도 북 나잇

 예민하고 민감한 자아와 30여 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타고난 기질이 단체 생활하는 데에는 꼭 알맞지 않다는 걸 알기에 무던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다. 외부 자극에 취약하지만 무딘 ‘척’ 까지 해야 하니 쉽게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아아, 이제 막 출근했는데 벌써 침대로 돌아갈 시간이 그립다. 예민보스 아닌 척, 단체 생활에 최적화된 직장인으로 변신하기 위해 분투하는 매일. 내 자아가 '더는 못해먹겠어' 반항하지 않도록 비위를 맞춰주는 리추얼(ritual) 처방을 하루도 빼먹지 않는다. 리추얼이란 일상의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뜻하는데, 최근 원래의 뜻보다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의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출근 버스를 기다리면서 정류장 앞 스타벅스에 들르는 일, 매일 거르지 않는 나의 리추얼이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 컨디션에 따라 다른 음료를 고른다. 5,000원 남짓하는 음료 메뉴판을 앞에 두고 고민할 때면 최고급 뷔페도 부럽지 않다. 오늘 아침은 기분이 영 달달하지 않아서 달달한 바닐라라테를 주문했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피로가 걷히고 여유가 생긴다. 이때에 느끼는 감정은 행복보다는 감사에 가깝다. 또 새로운 하루를 맞아 무탈한 하루가 반복되는 것에 새삼 감사하며 버스에 몸을 실는다.

 

회사에 도착하면 모든 일은 나의 의지와 다르게 흘러간다. 원하는 대로 수월한 날이 있고, 쉬울 줄 알았는데 한 없이 꼬이는 날도 있다. '오늘은 정말 쉽지 않구나.'싶은 날에는 퇴근 이후에 예정된 루틴들을 떠올리며 숨을 깊게 마시고 내쉰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고 평온해진다.


매일 저녁 6시 즈음, 남편은 퇴근하면서 나에게 '출발!!'이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이 문자를 받으면 여전히 살짝 설렌다. 나에게 가장 큰 안정감을 주는 사람을 곧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것도 작은 의식이다. 남편은 아무 예고 없이 그냥 집에 올 수도 있지만, 매일 문자를 보내 퇴근을 알리는 덕에 나는 잠시나마 기분 좋은 들뜬 마음이 된다.


일상을 조금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특별한 이벤트를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 모두의 행복은 사소한 것에 있다.


나를 지키는 매일의 의식  어떠한 스트레스도 단번에 물리치는 극적인 처방이 있다. 바로 잠들기 전에 즐기는 독서.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가 리추얼의 시작이다. 책장 앞에 서면 마치 실력 좋은 아로마테라피스트에게 찾아간  차분해진다. 심신을 어루만져  향을 고르는 기분으로 책을 고른다. 오늘은  쏘는 자기 계발서보다 뭉근한 에세이가 좋겠다. 안전한 침대에서 오로지 두뇌의 힘만으로 온전히 다른 세계로 떠난다. 활자 속에서 유영하다 보면 세상에 오로지 책과   둘만이 남는다. ,  명이  있는  깜빡했다. 이때에 뱃속의 아이가 하루  가장 바쁘게 움직인다. 엄마가 편안할  태동이 거세진다는데 종일 얌전하던 아기는  배를 찢고(?) 나올 기세로 발길질을 한다. 피식 웃음이 난다. 마치 대단한 태교를   의기양양해진다.     


누구에게나 리추얼이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하루의 작은 루틴들이 쌓여 점점 단단한 나를 만들어 간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 소박한 행복이 숨겨져 있다. 인생을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나를 위한 건강한 루틴들을 더 많이 발견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 내가 마실 커피는 뭐가 될까? 잠시 생각하다가 책장을 덮는다. 오늘 밤도 편안히, 북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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