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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스 Jul 30. 2021

간장종지의 고군분투

책을 매개로 나와 타인을 만나다.

 어려서부터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내 인간관계에는 '원만히'와 '중간'이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관계망의 분류는 단 0.1m의 오차 없이 두 종류로 정확하게 나뉘었다. 성인이 되고 회사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난 사람이 멀리서 걸어오기만 해도 '당신은 아웃입니다' 하는 재단이 내려졌다.


나의 편협한 세계관은 나와 함께 사는 남편도 피곤하게 만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녹초가 된 사람을 붙들고는 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쏟아냈다. ‘데이브 걔는 목소리가 너무 커' '신입이 눈치를 안 봐' 싫어하는 사람의 수만큼 싫은 이유도 차고 넘쳤다. 어느 날 나의 대나무 숲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남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지야, 기분 나쁘게 듣지 마.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너는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면 너만 힘들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를 지키려고 움켜쥔 재단의 칼날이 나를 찌르고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리고 나서야 나의 편협함이 나를 다치게 한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시의 나는 매번 만나는 사람만 만났다. 게다가 주말이면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주관은 더 뚜렷해지고 주장도 강해졌다.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난쟁이 세계에 갇힌 걸리버가 되어버렸다. 지난 7년간 읽는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이 무용하게 느껴졌다. 바로 잡아야만 했다. 인생의 고비마다 나타나 나를 구원해줬던 책에게 간장종지로 사는 편협한 독자의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내 인생에서 가장 이레적인 결정을 내렸다. 인터넷을 통해 독서모임을 만들고 스스로 모임장이 되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책에 기대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편견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나 스스로가 나와 다름을 포용하는 품이 넓지 않기에, 찬반 의견이 오가는 날 선 분위기 가 아닌 서로의 말에 공감하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모임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굴러갔다. 나와 다르게 마음이 넓고 매너가 좋은 분들만 찾아주신 덕에 매번 분위기가 좋았고 우려했던 불편한 상황도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신기한 사실은 같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지만 열이면 열 모두의 생각이 달랐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드디어 인정하게 되었다. 나와 다른 면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배울 점이 많았고, 내 좁은 세계를 강하게 허물어주었다. 나이, 직업,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의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편견 없이 듣고 공감하는 모습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독서모임을 하고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미리 재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건 내 인생에 굉장한 변화다. 뒤를 돌아보니 나에게 우호적이면서 제각각 좋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의 저마다 다르게 반짝이는 모습들이 내 마음을 밝혔다. 다름을 진심으로 인정하자 삶이 편안하고 풍요로워졌다.


2021년 8월 9일. 모임을 운영한 지 딱 2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부족함이 많은 초보 운영자이지만 책임감 만은 더 충실하게 가져야지 다짐해본다. 모임에 참여하시는 멤버분들이 각자의 다름을 편안하게 내보일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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