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심으로 구독하고 콘텐츠까지 좋아서 꾸준히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배달의민족 마케터 장인성 이사가 운영하는 <인성아 뭐 샀니>라는 채널인데, 자신이 새로 구입한 물건을 소개하는 게 컨셉이다. 기본적으로 유튜버 자체의 개성이 뚜렷하고 취향도 니치 해서 소개하는 물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내가 이 채널에 꽂힌 포인트가 한 가지 더 있다. 단순히 물건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그가 소비를 하고 물건과 함께 생활하는 과정 속에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유튜버의 취미는 러닝이다. 그는 러닝을 더 기쁘게 즐기기 위한 물건들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고르고 구입한다. 유니크한 디자인의 형광색 러닝화를 시작으로 달릴 때 거추장스러운 핸드폰을 감쪽같이 수납해주는 속주머니가 있는 러닝 바지, 최신형 애플 워치까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트렌디한 것을 추구하는 섬세한 취향과 취미에 큰 가치를 두는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한 후, 그냥 '좋다'에서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물건이 '왜' 좋은지 혹은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경우는 드물다. 나의 경우 내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는 물건들에 큰 비용을 투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가령 침대, 의자, 신발, 속옷 같은 물건들. 몸이 지치면 쉽게 예민해지는 스스로를 지키는 게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내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책을 고르고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유 없이 고른 책은 없다. 내가 고른 책을 들여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에 가치를 크게 두는지 알 수 있다.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실패하면서 취향과 안목이 생기듯 책도 그렇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추천받기보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고민해서 책을 고르는 경험을 쌓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스스로에게 더 이롭다. 기껏 고른 책이 재미가 없어서 다 읽지도 않고 먼지만 쌓인다 해도, 돈 낭비가 아니라 책 고르는 안목을 다지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반론도 개인의 특수성 앞에서는 무력하다.'라는 문장을 굉장히 좋아한다. 다수가 좋다고 평가하는 책이 나에게 무조건 좋으란 법은 없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중학생 필독서를 보고 경악한 기억이 있다. 책 취향은 물건 취향보다 더 내면적인 가치가 반영되는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왜 독서 앞에도 '必'자를 붙여야만 속이 시원한 거냐며 (소심하게 혼자서 속으로만) 분개했다.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데미안 / 헤르만 헤세
허생전/ 박지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흥준
희망의 증거 /제인 구달
등등
하긴, 초등학생이 되면 하나의 의식을 치루 듯 부모님께 전집을 선물 받는다. 이건 뭐 내 취향이 아닌 똑같은 디자인의 옷들을 색깔별로 걸어두고 억지로 입으라는 격이다. 선물이 아니라 고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넉넉한 돈을 쥐어주며 서점에 함께 가서 '네 마음대로 쇼핑해봐라'라는 지령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독서가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인생의 짐이 되진 않았겠지. 성인이 되어서야 '내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기막힌 상황을 겪는 경우도 적겠지.
책을 고르는 과정을 쇼핑처럼 즐겼으면 좋겠다. 내가 구입한 물건들이 나의 가치를 반영하듯, 내가 고른 책을 통해 스스로를 조금 더 알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