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 되어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판문점에 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5학년 중에서도 아직 만 열 살인 현서는 학교에 남았다. 현서는 시무룩한 얼굴이었지만 곁에 서 있던 아래 학년 아이들은 장난치느라 배웅도 제대로 못했다.
한이는 내게 혀를 내밀면서 장난스레 웃더니 입모양으로 ‘해골’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어쨌든 5학년과 6학년 전부해서 열 명이 이제 전쟁 현장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
판문점은 우리 마을에서 4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버스를 타고 갔다. 다른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판문점에 대한 설명,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견학 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들었다. 이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줄줄 외울 수도 있었다.
비무장지대는 영어로 DMZ, 공동경비구역은 JSA. 우리 동네를 포함해 휴전선 아래로 2킬로미터 지점까지는 다 비무장지대이다. 남과 북 사이에 회의를 하는 건물인 판문점 주변을 공동경비구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견학을 하니 궁금한 점이 많았다.
“비무장지대가 뭐래?”
나는 승기에게 속삭였다.
“넌 설명 못 들었어? 총이나 대포 등 무기가 없는 지역이라잖아.”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이상하네, 이상해…”
“뭐가?”
“군인아저씨들을 봐. 전부 총을 차고 있는데?”
“어, 정말!”
승기가 눈을 뱅글뱅글 굴렸다. 나는 또다시 조그맣게 물었다. 이곳에서는 귓속말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면 안 된다니 나도 모르게 소곤소곤 말했다.
“그리고 이곳은 공동경비구역인데 왜 우리 군인들과 북한 군인들이 서로 감시하고 있어?”
공동경비구역은 남과 북이 공동으로 지키는 장소라고 했다. 그런데 남북한 병사들은 겨우 높이 10센티미터 솟아오른 시멘트 띠 너머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그것이 남과 북을 가르는 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남과 북의 군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마치 아이들이 책상 위에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는 것 같았다. 유치했다.
“왜일까?”
승기는 뽐내면서 말했다.
“왜긴, 넌 정말 수업시간에 뭘 한 거야? 도끼사건 몰라?”
“아…”
어렴풋이 그런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났다. 우리는 견학 본부 2층에 있던 전쟁기념관을 구경했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갔다. 안에는 1976년에 있었던 도끼만행사건에 대한 설명과 당시 상황을 재현한 인형들이 조그마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커다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미루나무에는 사다리 하나가 기대어져 있었다. 북한의 초소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미루나무 아래에는 군용트럭이 서 있었다. 북한군의 옷을 입은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 미군 병사를 때리고 있었다. 도끼로 머리를 때려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도끼만행사건이라고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싸우고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남과 북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던 땅은 다시 둘로 나눠지고 각자의 땅을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공동경비구역이 더 이상 공동경비구역이 아니게 된 그 사건을 보여주는 이 인형들은 불쌍하게도 당시의 무서웠던 사건을 40년 동안이나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썩어 없어지지 못하다니! 이에 비하면 사람이 죽어 뼈만 남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일이었다. 전쟁도 이처럼 세월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는 것이었으면! 생기가 사라져 잔뜩 말라붙은 미라처럼 전쟁은 우리 마을에서 아직 진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