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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Jan 24. 2021

이 버스 고장 났어요.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발권하느라 직항은 타지 못했다. 일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일정이었다. 한국에서는 동트기 전에 집을 나섰는데 깜깜한 밤이 돼서야 인도 공항에 도착했다. 델리 공항에 도착하면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주는 '손들'을 만나게 된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입국 심사대에서 숙소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숙소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여행책에서 본 아무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댔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이다.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무표정한 그의 계속되는 질문 세례에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혼자 왔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자, 여권을 돌려주며 그는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You're so brave. Good luck!" 그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단야밧!(감사합니다)" 나의 힌디어 인사에 그는 조금 더 밝아진 미소를 보이며 나를 들여보내 주었다. 여행을 할 때 그 나라의 간단한 인사말 몇 가지를 외워가는 것은 늘 크고 작은 도움이 된다.


자, 1단계는 가볍게 통과. 공항 안 환전소에서 우선 100달러만 환전을 했다. 다음 단계는 시내까지 가는 것이다. 공항에서 나와 뉴델리 빠하르간지에 도달하는 여정은 악명 높기 그지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 건물을 나서자마자 택시기사가 들러붙는다. 공항버스를 이용해 시내로 가려는 내게 그는 말했다.


“오늘 버스가 고장 나서 한 시간 뒤에나 출발합니다. 택시 타고 가요”


한국에서도 난 택시를 거의 타지 않는다. 혼자서 자의로 택시를 타는 일은 예매한 기차를 놓칠 수도 있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이 아니고서야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택시에 대해 안 좋은 추억들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은 순전히 돈이 아까워서이다. 아무리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 여행을 가도 혼자서는 택시를 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돈도 돈이지만, 저 자가 나를 이 야심한 밤에 어디로 데려갈 줄 알고 덥석 타겠는가.  


그는 친절한 척(?) 뒷좌석 문을 열어주며 얼른 타라고 했고, 내가 됐다고 하자 택시에 밀어 넣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인도에서 벌어지는 그런 수법에 대해 익히 들었던 나는 그를 가볍게 무시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택시기사는 외국인 먹잇감을 놓치기가 영 아쉬운지 버스까지 따라 올라타며 말을 건다. 들은 척도 않고 연신 무시를 하자 그는 급기야 언성을 높였다. 버스에 외국인은 나뿐이었다. 언성을 높이는 그에게 승객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그제야 그는 버스에서 내렸다.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혹시 버스가 언제 출발하는지 아시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황했을 나를 위로라도 하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말했다.


“Soon.”

그리고 나는 다시 웃으며 답했다.

"단야밧!"


고장은커녕 버스는 정확히 6분 뒤 요란한 시동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택시기사 앞에서는 아닌 척했으나 내심 무서웠던 나는 조용히, 그러나 길게 숨을 내쉬었다.

“휴…….”


처음 버스에 올라탈 때는 운전석에 아무도 없고 요금을 내는 통도 보이지 않아 다른 승객들을 따라 자리에 앉아있었다. 운전기사가 버스에 올라탈 때 안내양 같은 역할을 하는 직원 분도 함께 탑승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그는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버스비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뒤쪽에 앉아 있었기에 그가 앞자리 승객들과 무엇을 주고받는지 눈여겨보았다. 승객들이 버스비를 내면 그는 영수증 같은 작은 핑크색 종이를 주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환전한 루피 중 가장 작은 숫자가 적힌 돈을 건넸다. 그럼에도 버스 가격 대비 액수가 큰 지폐였다. 버스 가격은 단돈 75루피.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1,500원 정도였다. 택시 안 타길 정말 잘했다. 버스비를 내면서 그에게 나의 목적지를 말하고 내려야 할 때 알려달라고 했다.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그가 괜히 믿음직스러웠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하는 동안의 감정은 놀랍도록 매번 같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기쁨과 안도. 옳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소소한 불안과 걱정. 혹시라도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칠세라 긴장 또 긴장.‘내 가방은 안 열리고 잘 있나?’하는 궁금함. 그리고 보통은 예약한 숙소의 위치를 확인하지만 인도에서는 숙소조차 정하지 않았기에 어디서 자면 좋을까 생각하기.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도 차창 밖의 생경한 풍경 입 벌리고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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