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블레이 / 케이프크로스의 물개들 / 에토샤 워터홀
데드블레이
한때 물이 흘렀던 이곳에 물이 없어지면서 사막 한가운데 죽은 나무들만이 남았다. 그래서 Dead 죽은 Vlei 계곡이 되었다. 하얗게 말라버린 땅 위에 죽은 채로 굳어버린 나무둥치들을 보고 있자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하지만 데드블레이는 보다가 내가 죽겠다 싶을 만큼 뜨거운 기온을 자랑한다. 공원 입구에서 데드블레이까지 오는 길도 만만치 않아서, 셔틀이 아닌 4륜 차를 직접 몰고 들어온 사람들이 바퀴가 빠져서는 고생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셔틀을 타고 와서도 데드블레이까지 적어도 10분 정도는 걸어 들어가야 는데, 그 10분이 정말 지옥 같다. 셔틀 버스비를 한번 아껴볼 거라고 공원 입구에서 걷기 시작했는데, 셔틀버스기사가 지친 우리를 보고는, 너네 그러다 죽어, 내가 다음 차를 운행할 건데 그때 태워줄게-한다. 그래, 진즉 타고 오는 건데,,, 시간만 버려버렸다.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판단 미스를 하곤 한다. 예를 들어 하루에 만 원을 아끼면 일 년에 365만 원을 아끼게 되는 거니까, 작은 돈에도 조금 예민해진달까. 오래 여행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무척 공감할 거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아끼려고 했던 그 돈이 너무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친절한 셔틀버스기사의 도움으로 다음 셔틀을 잡아타고 데드블레이 입구에 도착했으나 이미 해가 많이 떠버렸다. 얼마나 뜨거우면 정오가 넘은 시각에는 데드블레이를 방문하는 것을 지양할 정도.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11시 정도 되었다. 태양이 제법 뜨거워지기 시작할 시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지대를 힘겹게 걸어 데드블레이에 도착했다.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보고 엄청 기대했던 데드블레이. 하지만 현실은 덥고 힘들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쨍쨍한 땡볕이었다. 멋있긴 하지만 멋있음을 100% 즐길 수 없는 상황이랄까. 겨우 생긴 나무둥치 그늘에 몸을 숨기고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세상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화보 촬영을 하고 있다!!!
10초만 햇볕에 서있어도 뼈까지 달궈지는 느낌인데, 수영복을 입은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개인적인 사진인지 상업적인 사진인진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대단한 의지가 있지 않고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철학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어 보였던 데드블레이가 갑자기 세상 멋진 화보 배경이 되었다. 뜨겁고 지치지만 수영복 언니 덕분에 한바탕 웃을 수가 있었다. 수영복 언니의 에너지를 받아 정오가 가까운 뙤약볕에서도 무사히 셔틀까지 돌아올 수가 있었다. 역시 인생에 유머가 빠지만 안된다. 수영복 언니- 응원해요~!!!
케이프크로스의 물개들
물개들의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다. 눈에 닿는 모든 땅에 물개들이 가득했다. 몽글몽글한 형상이 귀여운 물개들은 수영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였다. 다른 일을 하는 물개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물개들은 오로지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 같았고, 나머지 시간은 따뜻한 햇볕을 쬐며 잠을 잤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으면 동물로 태어난다고 하던데, 물개를 보니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놀고먹는 삶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가지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귀여운 형상과 달리 냄새는 고약하다. 아무래도 배설물 냄새겠지?! 이렇게 많은 녀석들이 한 장 소에 있으니 냄새가 안 나는 게 이상할 테지만 정말 냄새 때문에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차를 탔더니 차에도 냄새가 배어버려서는 10여분 정도는 문을 열고 달려야 했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동물들을 봤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머리수의 동물은 케이프 크로스가 유일했다. 전 세계 물개가 멸종한다 해도 케이프 크로스의 물개들만 보호할 수 있다면, 물개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 싶다.
에토샤의 워터홀
에토샤 국립공원은 캠프마다 있는 인공 워터홀이 유명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참으로 브릴리언트하다. 동물들이 물을 찾는 건 당연하고, 인공 연못을 만들어두면 찾아올 거라는 것! 아프리카의 모든 국립공원에 도입이 시급하다. 굳이 게임 드라이브를 하지 않아도, 캠프의 워터홀만 보고 있어도 찾아오는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동물들이 찾아오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조용히 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들이 있었음에도 어떤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던 에토샤의 워터홀. 경건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도 자본주의의 손길이... 워터홀 앞 방갈로들은 방갈로에서 바로 워터홀을 바로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캠핑장을 이용하는 우리 같은 캠퍼들은 워터홀과 떨어져 있어서 캠프 사이트와 워터홀을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조서방은 에토샤의 워터홀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고, 나와 함께 워터홀에서 일몰을 보는 로맨틱한 그림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샤워를 해버리는 그 타이밍에 해가 지고 말았고, 조서방의 꿈은 산산조각 났으며, 그 짜증을 내가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는 것. 물론 나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이나, 미리 나에게 언질을 좀 줬으면 좀 늦게 씻으러 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조서방의 화를 달래 기라도 하듯, 그날 밤 워터홀에는 코뿔소 7마리가 다녀갔다. 한 마리도 보기 힘든 코뿔소가~!!! 서너 마리씩 워터홀에 와서 멱을 감고 물을 마시는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여보- 다음엔 미리 말해죠. 일몰 보고 씻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