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방고 델타 / 초베국립공원 / 코끼리의 나라,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
오카방고 델타는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주이다. 습지이다 보니 큰 배는 다닐 수가 없고, 모코로라는 작은 전통배를 이용해 오카방고 델타를 누빌 수가 있다. 하마의 등을 스치는 날엔 배가 뒤집혀 죽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지만, 여기서 나고 자랐다는 사공의 오감을 믿어보는 수밖에.
연꽃이 가득한 잔잔한 습지에 하늘은 거울처럼 비치고, 뱃사공의 노 젓는 소리만 들리는 한낮의 오카방고 강은 평화 그 자체다. 모코로를 타고 도착한 곳은 델타 내의 섬. 죽은 코끼리의 머리뼈가 맞아주는 기이한 섬. 사자를 찾아 한참을 쏘다녔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가이드가 총을 들고 있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참 섬뜩한 워킹투어였다. 그렇게 평화로움과 섬뜩함을 오가다 다시 모코로를 탔던 마을로 돌아왔다.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 줄 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을 안에서 잠깐 기다리기로 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오지 마을이었는데, 기적처럼 작은 상점이 하나 있다. 우리가 상점 앞 벤치에 앉아 맥주 한 병으로 목을 축이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든다. 백인들이야 많이 봤겠지만 동양인은 아무래도 좀 드문듯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들어 우리를 쳐다보는데 우리만 뭔갈 먹고 있는 게 미안해져서 작은 과자 여러 봉지를 사다 나눠먹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경계심을 풀고 활짝 웃어 보인다.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다 기후가 이상하다며 건기 우기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걱정이 된다는 얘기들을 한다.
오카방고 델타는 칼라하리 사막 한가운데 있는 삼각주다. 대부분의 강은 바다를 만나지만 오카방고는 바다와 만나지 못하고 칼라하리 사막의 뜨거운 모래와 평원에 증발해 버리는,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주이다. 그렇다 보니 동물들에게도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것. 이 오카방고 델타 때문에 수많은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서식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느끼기에도 건기와 우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언젠가는 오카방고 델타도 주변의 칼라하리 사막처럼 바짝 말라버릴까?
여행을 다닐수록 환경문제가 정말 급하게 느껴진다. 일회용을 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그래야 10년 뒤에도 오카방고 델타에서 또 모코로를 탈 수 있을 테니까. 그때는 마을 사람들에게 맥주를 한 병씩 돌려야겠다.
초베 국립공원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파리를 했지만 뱃놀이 사파리는 초베 국립공원이 유일했다. 배를 타고 강변을 따라 내려가며 동물들을 찾아보는 기분이란…
얼핏 보면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동글동글 하마 가족들, 멱감는 코끼리,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낮잠 자는 악어, 나무에 앉은 독수리와 알록달록 예쁜 새들, 물 마시는 버펄로 떼. 오후 햇살에 윤슬이 예쁜 초베강을 미끄러지는 배에 앉아, 갇혀 있지 않은 자연 상태의 동물들을 보는 건 너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다시 배를 돌려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려는데, 강 한가운데 수풀에서 아기 코끼리 한 마리가 열심히 수초를 뜯고 있다. 몸은 물에 담근 채로 머리만 빼꼼 수면 위에 두고 열심히 풀을 뜯는다. 그런데 녀석이 분명히 웃고 있다! 대체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웃고 있을까. 한여름, 수영장에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칵테일을 마시는 정도의 기분일까?! 행복한 아기 코끼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웃고 있었다. 초베강에 사는 동물들은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 동물인지 알까? 물을 찾아 헤매는 평원의 동물들은 상상도 못 할 호사를 누리고 있는 건데... 활짝 웃는 아기코끼리를 보니 어쩌면 알고 있겠다 싶었다. 물세권에 사는 아기코끼리야 무럭무럭 자라렴~
보츠와나의 코끼리들
입국하기 전부터 보츠와나는 코끼리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경을 넘었더니 정말 코끼리를 조심하라는 사인이 보였고, 머지않아 도로변에서 풀을 뜯는 코끼리를 만날 수 있었다. 세상에 도로변에서 풀 뜯는 코끼리라니… 차에서 절대 내리면 안 되는 국립공원에서 보던 코끼리를 도로에서 만나 너무 신난 우리는 코끼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이리 찍고 저리 찍어댔다. 결국 보다 못한 코끼리가 뿌앙-하고 화를 냈다. 혼비백산 차를 타고 달리는데, 등골이 서늘하다. 코끼리가 정말 화가 많이 났다면, 한 번에 우리를 찍어 눌러 죽여버렸을 테지… 그러니까 차에서 내리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코끼리가 차도를 건너기라도 하는 날엔 모든 차들이 기다려야 한다. 설사 그게 고속도로라 할지라도… 빅토리아 폭포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에서 한 무리의 코끼리 떼를 발견했다. 평화로워 보이는 무리를 보면서 서양 남자애 하나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 친구 덕에 우리도 용기를 얻고 같이 코끼리 가족을 지켜보기로 했다. 거리를 두고, 가만히 서서 코끼리 가족을 지켜보는 기분은 심히 경이로웠다. 풀을 열심히 뜯던 코끼리 가족은 이제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가고 싶어 했다. 선두가 움직이자 나머지 무리가 따라나선다.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고속도로를 건너는 코끼리 가족. 쌩쌩 달리던 트럭도 코끼리를 보자 멈춰 선다. 고속도로가 한순간에 횡단보도가 되어버렸다. 코끼리 무리가 다 건널 때까지 어떤 차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한 마리까지 건너고 나서야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마치 시간을 정지하는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멈춤 능력을 썼다 풀어버린 것 같은 느낌. 우리도 현실로 돌아와 다음 도시로 가는 일정을 재촉했다. 운전을 하는 동안 생각했다. 동물을 보는 일은 왜 이렇게 경이로운 기분이 드는 걸까. 어쩌면 대화가 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말로써 뭔갈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정말 원초적인 눈빛, 손짓, 행동으로 교감해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행여 놀라서 도망가기라도 할까 숨죽여 지켜볼 때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이 내 눈앞에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할 뿐.
오늘도 보츠와나 코끼리는 고속도로를 건너 다닐 테고, 그럴 때마다 지나는 모든 차들이 정지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