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 치앙마이
방콕 짜뚜짝시장
태국 하면 더운 날씨, 마사지, 팟타이와 쏨땀, 예쁜 바다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나에게 태국은 '시장'이다. 수많은 시장과 나이트마켓은 그 자체로 태국을 상징한다. 방콕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시장은 바로 짜뚜짝 시장이다. 주말에만 열리는 이 거대 시장은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지금까지 3번 정도 방문했는데, 아직도 짜뚜짝 시장 전체를 다 돌아봤다는 느낌은 없다. 시장이 크기도 하고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 많아서 세 걸음 이상 떼기가 힘든 탓도 있다. 언제 어디서 온 지모를 외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빠에야 집이 유명하며, 옷, 신발, 액세서리, 인테리어용품부터 코코넛 아이스크림 집까지, 눈 돌 리가 무섭게 마음을 뺏긴다. 짜뚜짝에서 지갑을 단 한 번도 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랑 친구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본업이 쇼핑 요정인 나는 짜뚜짝에만 가면 힘이 솟았다. 땀이 줄줄 흘렀지만 갓짜낸 귤 주스와 시원한 코코넛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이겨내며 쇼핑에 전념했다. 그래 봐야 장기 배낭여행자가 살 수 있는 건 별게 없었으나 남편에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어가며 조금씩 사고야 말았다.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 우리가 휴식을 가지기로 한 도시도 결국 방콕이었다. 항상 아쉽게 쇼핑하는 내가 안쓰러웠든지 '이제 한국 가니까 마음껏 사봐-' 하고 나를 짜뚜작 시장에 풀어주는 조. 이게 바로 2년 동안 이혼하지 않고 우리가 여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암파와 수상시장과 반딧불이
이런저런 시장이 있다지만 태국에 왔다면 또 수상시장은 한번 가봐야 한다. 암파와 수상시장은 보트 가게들도 있지만 운하 양옆도 모두 상점이었다. 그래서 그냥 걷기만 해도 재미있는 곳. 물고기 모양 동전지갑, 에그타르트, 태국 바지, 에스닉한 티셔츠, 갓짜낸 생과일주스. 이것저것 만져보고 사서 먹다 보면 암파와를 둘러보게 된다.
암파와 수상시장 자체도 특별하지만 암파와 수상시장은 반딧불이 투어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해가 지면 반딧불이 투어가 시작된다. 시장에서부터 배를 타고 나가니 작은 강촌마을이 나왔다. 그 마을의 큰 나무들에는 반딧불이 몇 마리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 나무 옆으로는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 그림 같이 반짝이는 수많은 반딧불이들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강촌마을 여념 집 옆 마당에 자라는 나무에 서식하는 반딧불이 구경을 간 것. 게다가 가로등이 밝은 곳은 반딧불이가 있다고 하는데도 내 눈엔 당최 보이질 않았다.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란!
반딧불이 예쁘게 보이는 장소 아시는 분~
쿠킹클래스
우리가 왜 이걸 여행 마지막에 알았을까. 직접 만들어 먹는 현지 음식은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직접 장을 보고, 직접 만들어서인지 음식 맛이 기가 막혔다. 팟타이도 어느 가게에서 먹었던 것보다 내가 만든 게 제일 맛있었다. 태국식 레드 카레를 만들기 위해 절구질도 해보고, 쏨땀도 직접 빻아가며 만들어보니 맛의 차원이 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로코에서 쿠스쿠스 만드는 법 좀 배우고 멕시코에서 타코 수업 좀 듣는 건데, 너무 후회가 되었다.
세계여행에서 돌아와서 베트남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이때의 교훈으로 쿠킹클래스를 수강했다. 직접 만든 반세오와 분짜의 맛은 꿀맛. 역시나 만족도 200%였다. 역시 여행은 식도락이지- 이제 앞으로 여행 가는 나라들에서는 무조건 쿠킹 클래스다!
마누라 말이 항상 옳다
치앙마이에 머물고 있을 때, 도이수텝 사원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도이수텝 사원은 산꼭대기에 있어서 운전이 어렵기로 유명했지만 족자카르타에서 오토바이 극기 훈련을 마친 조에게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호기롭게 오토바이 렌트! 역시나 불안함은 다 내 몫이다. 그래도 막상 오토바이에 탔더니 즐겁다. 더웠던 시내와 달리 산바람은 시원했다. 꼬불 길을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조가 소리를 지른다. '기름!' 나는 태연하게 '아니, 여기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얼마나 많이 타는데, 사원 앞에 가면 기름을 넣을 수 있을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조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주유소가 어디 있냐며. 걱정인형 조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기름을 못 구하면 어떡하지, 중간에 오토바이가 서면 어떡하지. 난 다시 한번 말했다. 분명히 기름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조는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도이수텝 사원을 둘러보는 동안 간간히 한숨을 내뿜었다. 이제 정말 사원에서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 사원 앞에는 수많은 상점이 있었고 나는 그중 한 상점에 들어갔다. 오토바이 기름을 찾고있다고 하니 가게 주인이 무뚝뚝하게 한 곳을 가리킨다. 초록색 액체가 닮긴 유리병들이었다. 알고보니 상점들 앞에 무수히 많이 놓여져 있던 유리병들이 다 기름이었던 것이다! 나는 '거봐 내 말이 맞지?!'라는 표정으로 조를 쳐다봤고, 조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었다. 귀여운 우리 남편. 그날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거봐, 마누라 말을 잘 들어야 해'
조는 꼼꼼한 공대생이라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한 걸 좋아하는 반면 나는 즉흥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여행 중 이런 부분으로 수없이 많이 부딪혔다. 조의 꼼꼼함과 계획성이 빛이 발할 때가 있는가 하면 나의 대담함과 낙천성이 빛을 발할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낫다 아니다가 아니라 우리가 성격적으로는 참 반대라는 걸 여행 동안 많이 깨달았다. 떠나오기 전 5년의 결혼생활에서보다 2년의 세계여행에서 훨씬 많이, 그리고 피 터지게 싸웠다. 결론적으로 지금도 우리는 그대로이지만, 여행동안 서로의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싸워도 금방 화해하며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뽀글 머리가 귀여운 이탈리안, 지오반니
치앙라이 원데이 투어를 하던 날 여러 명의 일행을 만나 SNS 주소를 주고받았는데, 그중 유난히 귀여웠던 이탈리안 보이 지오반니가 연락이 왔다. 지금 치앙마이냐고, 자기도 치앙마이인데 만나서 저녁 한 끼 하잖다. 귀여운 녀석, 우리는 언제든 환영이지. 지오반니는 20대 초반의 남자애였는데, 중국어를 배우려고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다수의 유러피안들에게 나타나는 은근한 아시안 차별의 벽이 보이질 않았다. 잘 웃고 유쾌한 이 녀석과 함께 치앙마이 야시장을 쏘다녔다. 우리는 각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하나씩 사 와서 품평회를 하고, 근처 루프탑 바에 올라가 맥주를 마셨다. 별로 한 게 없는데도 그냥 즐거웠다.
지오반니와 헤어지고 돌아오면서 조와 얘기했다. 사람은 저렇게 밝은 기운을 뿜어야 하는 거라고. 지오반니는 전 세계 어디 떨어져도 사랑받을 녀석이다. 치앙마이 야시장 사진을 보면 성벽 앞에서 환하게 웃던 지오반니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