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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May 24. 2022

인도 India II

카주라호 / 오르차 / 아그라






카주라호


#1

 인도 남자들이 음흉하게 웃으면서 뚫어지게 쳐다볼 땐, 그 눈빛만으로도 뭔가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그런 기분 때문에 찝찝한데, 카주라호는 성추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여행자 커뮤니티에는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가는 곳마다 스토커처럼 한 인도인 남자가 따라붙는다며, 같이 여행할 일행을 구한다는 여행자의 얘기에는 내 등골이 다 서늘했다. 남편과 함께 있는 내 다리도 만지는 놈들인데, 여자 혼자 다니는 여행자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렇게 긴장하며 도착한 카주라호. 도시 자체는 자그마하니 너무 평화로웠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보다 생각하며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에 나섰다. 그제야 우르르 몰려다니는 동네 불량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네 몇 없는 외국이 관광객인 우리를 볼 때마다 낄낄거렸지만 하나하나 상대해줄 힘도, 시간도 있지 않아서 무시하며 다녔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이런 도시에 나 혼자 왔다면 어땠을까. 새삼 조서방이 예뻐 보였다.


#2

 사원이 위치한 유적지에 입장하자 카주라호의 풍경이 바뀌었다. 초록 초록한 잔디밭 드문드문 위치한 사원들은 정말 독특하고 화려했다. 사원을 구경하는 인도인들도 타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이라 그런지 표정이 밝았다. 다들 사원이 신기한 모양. 정말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감탄하자 조서방은 사원들이 우주선 같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떠오를 것 같단다. 그러고 보니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 스타워즈에 우주선으로 카주라호 사원들이 나온다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것 같았다. 지구에 천년을 있었는데, 이제는 날아갈 때가 되지 않았니?! 어지러울 정도로 정교한 조각들을 보고 있으면 매직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카주라호 사원은 한 번은 볼만한 건축물이었다.


#3

 카주라호는 작은 도시라 식당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숙소 바로 앞에 레스토랑이 하나 보였다. 2층 루프탑에 위치한 자그마한 레스토랑이었는데, 길만 건너면 닿는 거리라는 게 너무 좋았다. 지면보다 한층 올라있느게 다 인데도, 탁 트인 루프탑 레스토랑이라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게다가 서빙하는 아저씨의 서비스가 너무나 정중했다. 서비스로만 본다면 델리나 뭄바이의 5성급 호텔에 와있는 기분. 이 시골구석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을 줄이야. 카주라호에서는 이 레스토랑에서만 식사를 했고, 그때마다 동네 불량배들의 불쾌한 눈빛에서 치유되는 것 같았다.






오르차


#1

 인도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답은 오르차. 잔잔히 흐르는 강과 오래된 고성이 만드는 풍경이 고즈넉한, 정감 가는 마을이었다. 작디작은 도시라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없어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마을 주택가 안에 위치한, 아직도 공사 중인 미완성의 건물이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상큼한 오렌지색 벽과 사람 좋게 활짝 웃는 주인아저씨가 너무 좋아서 머물기로 결정했다. 공사 중인 2층 한편에 유일하게 완성된 방이 우리 방이었는데, 그래서 난간 하나 없는 테라스를 매일 지나다녀야 했다. 대신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깨끗한 방에서, 설치한 지 얼마 안 된 새 에어컨의 은혜를 누릴 수가 있었다.


#2

 오르차에서 가장 먼저 산책한 곳은 제항기르 마할. 아버지 황제에게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한 무굴제국의 왕자를 위해 오르차의 비르 싱 데오가 지어준 궁전이다. 후에 그 왕자가 무굴제국의 왕위를 이어받은 제항기르. 이런 역사를 알고 제항기르 마할에 가면 놀라움이 배가 된다. 도망 온 타국의 왕자를 위해 이 정도의 궁전을 지어줬다고?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비르 싱 데오의 마음엔, 왕자가 무굴제국의 왕위를 잇기만 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이 있었겠지만, 당시로썬 꽤 대담한 도박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한적한 유적지가 되어버린 제항기르 마할은 기도하는 주민들, 몇몇의 관광객 그리고 웨딩촬영을 하는 신혼부부들이 드나드는 장소가 되어있었다. 쓸쓸히 낡은 유적지지만 규모는 상당해서 나름의 황량한 분위기가 꽤 멋졌다.


#3

 오르차는 작은 마을이라 다 좋았는데 한 가지,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 너무 없었다. 그런데, 제항기르 마할의 부속 건물인 쉬시 마할을 호텔 겸 레스토랑으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쉬시마할의 레스토랑은 우리에게 아주 반가운 장소일 수밖에 없었다. 설사병 걱정 없이 한 끼를 해결한다는 게 인도에선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니까. 이 정도 깔끔함이면 안심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들어서는 순간부터 안심이 되었다. 카레 하나와 탄두리 치킨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킹피셔 맥주를 들이켜고 있자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드디어 커리와 탄두리 치킨이 나왔다. 비주얼도 나쁘지 않다. 탄두리 치킨을 썰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방심했던 것이다. 빨간 피가 선명한 덜 익은 탄두리 치킨이 나온 것. 청결도는 합격인데 이번엔 조리가 말썽이다.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나라다 인도는.


#4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장소가 있었다. 큰 바오밥 나무인데, 인도에 관한 책을 쓴 작가가 사랑한 장소였단다. 작은 마을에서 크게 할 일도 없고 해서 산책 겸 슬슬 걸어가 보기로 했다. 락쉬미 템플 입구에 서니 정말 저 멀리 크은 나무가 보였다. 이때만 해도 마다가스카를 가기 전이라 바오밥 나무 자체가 궁금했다.

 바오밥 나무까지 가는 길은 없었다. 우리가 풀에 쓸리고 모기에 물려가며 오직 나무만 바라보며 길을 개척해갔다. 나무가 제법 가까워져 왔다. 이제 다 왔다 하고 바오밥 나무에 도착했더니, 세상에, 나무 밑을 시멘트로 발라 깔끔하게 정리해놨다. 햇빛을 듬뿍 받은 시멘트 바닥은 엄청 뜨거워져 있었고, 새똥은 또 어찌나 많은지... 바오밥 나무 아래에서 피크닉 할 거라고 미얀마 론지도 돗자리 대신 챙겨 왔는데, 운치라곤 1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분명 바오밥 나무에서 보는 일몰이 장관이라고 했건만, 도저히 일몰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다. 철수! 이런 일을 겪는 것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들로 실시간 상황을 알 수가 있으니까. 누군가 장소 리뷰에 '이제 바오밥 나무 밑에 시멘트 발려서 운치 없어요'라고 적었을 거고, 여행자들은 시간을 아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길을 잃거나, 뜻밖의 일을 하게 되는 우연성은 줄어들었을 거다. 나는 뭐가 더 좋은 거라는 말은 못 하겠다.





타지마할


 타지마할은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한 건축물이다. 얼마나 예쁜 왕비였으면 추모하는 건물도 전 세계 사람이 사랑하는 예쁜 건물이 되었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건축물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편인데, 타지마할은 가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 입장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 타지마할로 향했다. 하지만 사람 생각은 다 같은 법. 이미 타지마할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사진작가들은 대체 타지마할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궁금해하며 입장을 시작했다. 해가 막 떠오른, 은은하게 밝아오는 하늘 아래 타지마할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했다. 실제로 보면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나는 오히려 실물이 더 좋았다. 청소 중인 미나렛 하나가 아쉬웠지만 곧 본관 청소도 시작한다 하니, 타지마할 앞면이 청소 중일 때 아그라에 방문한 사람은 얼마나 화가 날까 싶었다.


 그리고 타지마할이 수면에 반영되는 장면을 꼭 보고 싶었는데, 성공했다. 수직 수평 강박증인 나에게 네모 반듯한 무굴제국의 건축양식은 마음의 평안을 줬다. 완벽한 대칭과 네모 반듯한 정원들. 깔끔하다. 그렇게 타지마할에 감탄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분수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타지마할의 반영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해가 쨍쨍해지면서 아주 더워지기 시작했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난 보람이 있구먼. 







씁쓸한 아그라 포트


 샤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10년 뒤,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말년을 이 아그라 포트에 갇혀 지냈다. 샤 자한이 갇혔던 아그라 포트에서는 저 멀리 타지마할이 내려다보였다. 건물 위치만으로도 이렇게 애틋할 일인가 싶었다.

 아그라 포트는 여러모로 안쓰러운 구석이 많았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왕의 접견실. 금은 물론 다이아몬드나 에메랄드, 루비 같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엄청나게 호화로운 접견실이었으나 영국을 비롯한 여러 열강들의 침탈로 지금은 눈알 빠진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데, 유러피안들은 침략의 역사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인도에 대한 만행이라든지, 스페인의 남미에 대한 잔인함은 사과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인도, 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역사는 정말 참혹했다. 언제가 되었든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이 필요한 일이다. 






두르가 축제


 분명 홀리 기간은 아니었는데, 축제 행렬이 지나간다. 물어보니 두루가 축제 기간이다. 두르가 여신이 악마와 싸워서 이긴 날이라는데, 사람들이 여간 신이 난 게 아니다. 신들이 많다 보니 축제도 많은 게 당연하겠다 싶었다. 인도 전역 어디에선간 축제가 일어나니까, 매일이 축제라는 말이 맞았다. 인생은 힌두교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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