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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Oct 07. 2022

이란 Iran I

테헤란 / 카샨 / 아비아네 / 슈쉬타르





테헤란로, 서울로


네팔에서 만난 프랑스인 친구 바티스트가 말했다. 

'세계일주 중이라고? 혹시 이란에 갈 계획도 있니? 지금껏 내가 여행 한중에 가장 멋진 나라야.'

그렇게 계획에 없던 이란 여행이 추가되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나라는 어디야?'

'응 이제 이란에 갈 것 같아.'

'이란?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있고 테헤란에는 서울로 가 있대. 한번 찾아봐.'

다들 걱정을 먼저 하는데, 이 친구는 서울로를 찾아보란다. 그래도 덕분에 서울로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행기가 이란 땅에 닿자마자, 여자들은 일제히 히잡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가지고 다니던 스카프를 급히 머리에 썼다. 국제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나라다 보니 비자받기도 까다로웠다. 염려했던 입국심사도 잘 마치고 테헤란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테헤란은 한 겨울이었다. 중동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니었나. 나의 편견 때문에 첫날은 오들오들 떨며 예약해둔 숙소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12월의 테헤란은 스키장을 개장한 상태였다. 도심에서도 눈 덮인 산이 보였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중동은 사막, 낙타, 더위 뭐 이런 거 아니었나. 가져간 옷 중에 보온이 될만한 건 다 껴입어도 테헤란의 겨울은 제법 추웠다. 하지만 석유 부국답게 실내 난방과 온수는 빵빵 잘 나와서, 여행을 이어갈 수가 있었다. 


친구가 말한 서울로는 관광객이 다니는 동선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서울로를 찾아가긴엔 테헤란의 겨울이 너무 추웠어.




 



코란 : 손님 대접을 잊지 마라


 관광객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 보니 외국인은 어딜 가든 주목을 받는 편이다. 인도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은 없어서 부담스럽지는 않다. 대신 우리가 뭔가를 찾는다거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인데, 핵보유국, 테러, 이런 이미지로만 그려지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우리도 은근히 세상을 미국의 눈으로 바라보게 교육되었달까. 여행을 하면서 나도 얼마나 편견 덩어리였는지를 참 많이 깨닫게 된다.

 코란에는 손님 대접을 융숭히 하라는 구절이 명시되어있기 때문에, 무슬림은 손님 대접에 진심이다. 외국인인 우리는 이란에 온 손님인 것. 이란에서는 정말 우리가 손님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름도 찬란한 페르시아


테헤란의 골레스탄 궁전을 방문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제껏 본 이슬람 문화는 맛보기였구나 싶었기 때문.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건물의 아치, 거울 모자이크 방 등등 너무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그래 여기가 바로 페르시아잖아. 인류 문명의 많은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로 그 나라.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에 보이콧을 당한, 고립된 나라치고는 너무 건재하다 싶었는데, 이런 역사적 뿌리를 무시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정 할아버지들의 정원 정리

아자디 타워를 가는데, 너무 귀여운 할아버지 세 분이 조경을 관리 중이시다. 먼저 인사했더니 빵긋 웃으시며 화답해 주신다. 지금도 내가 이란 사람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할아버지들.

이란에 가면 당장 죽을 것처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는 이 할아버지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기아 프라이드를 아시나요?


내가 어릴 때 티코와 프라이드라는 경차가 아주 유명했다. 물론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그런데 그 프라이드를 테헤란에서 만났다! 세상에 추억의 프라이드를 이란에서 만날 줄이야. 나중에 알고 보니 이란 국영 자동차 회사 사이파에서 프라이드의 현지 생산 라인과 권리를 사들여 계속 생산 중이었던 것. 그러고 보니 프라이드가 꽤 많이 보였다.

 잘 굴러가는 프라이드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이상했다. 초등학생으로 타임슬립 한 기분이랄까. 익숙한 외관에 이슬람 숫자 번호판이 달린 프라이드. 마치 내가 아는 친구가 외국인이 되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추억의 차가 이란에서는 인기 차종이라니. 여하튼 프라이드를 볼 때마다 반가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카샨


카샨은 참 예쁜 동네였다. 전통가옥과 하맘 등이 잘 보존되어있어서 어떤 건물이든 들어가기만 깜짝 놀라기 마련. 좁은 골목골목을 다니다 유적지 푯말에 이끌려 들어가면 펼쳐지는 넓은 이슬람식 중정에 바로 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이슬람 건축 특유의 좌우 대칭, 중정, 호수, 조경, 화려한 장식 그리고 과학적인 난방 및 환풍 시스템까지 너무너무 멋졌다. 노년엔 한옥집을 지으리라는 꿈이 있었는데, 이슬람 양식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딜 가도 이렇게 멋들어진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카샨에는 유난히 좋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많았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우리는 매일 카샨의 멋들어진 레스토랑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 아라베스크 장식 아래에서 촛불을 켜고 앉아있자면, 여왕이라도 된듯한 기분이었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동네.

 바티스트에게 새삼 고마웠다. 이렇게 예쁜 나라를 모르고 지나칠뻔했다니.






카샨의 연쇄살인마


카샨에도 이란의 여느 도시처럼 큰 시장이 있었다. 도시마다 바자를 구경하는 게 아주 큰 재미. 카샨 시장을 나서는데 이란 아저씨 한분이 말을 건다.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이란에서는 이런 일이 많을 거라는 바티스트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쁜 의도는 없으니 초대에 응해보라는 말도.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집에 가는 건 너무 어색한 일이라 거절했다. 

 다음날, 바자에 갔더니 또 그 아저씨가 서 계신다. 설마 우리를 기다린 건 아니겠지. 다시 한번 저녁식사에 초대하길래, 이번엔 흔쾌히 수락했다. 두 번이나 마주치기도 쉽지 않으니까. 그날 저녁, 아저씨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양인 청년도 하나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낮에 만나서 인사한 적이 있는 프랑스인 청년 크리스토퍼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초대받았어?! 이 아저씨는 외국인을 집으로 초대하는 게 취미인 사람인가부다.'

'아는 사람들과 같이 가게 되어서 다행이다.'


우리 셋은 아저씨 뒤를 따라 걸었다. 집에 도착했더니 우리 보고 지하로 내려가란다. 이때 우리 셋은 아마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비장한 눈빛으로 지하로 내려갔는데, 생각보다는 아주 넓은 거실이 나왔다. 우리 보고 잡지를 보면서 기다려 달란다. 저녁을 준비하겠다며... 잡지에는 할리우드 가십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에는 한국 연예인들의 기사도 실려있었다. 이란에서는 주몽이 엄청난 인기였다던데, 그 이후로 한류가 시작되었나 보다. 비키니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자 사진에는 펜으로 덧칠해서 몸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두었다. 아주 기괴한 잡지 체험이었다. 밀수꾼이 구해다준 귀한 잡지, 할리우드, 덧칠.

 그렇게 잡지를 다 봐가도록도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토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 대게 우리는 연쇄 살인마에게 잡혀온 희생양들인데 말이야.'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어.'

'우리는 세명이고 아저씨는 혼자니까, 뭔 일이야 있겠어?!'

나와 조서방만 오싹한 줄 알았더니 크리스토퍼도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시나리오와 달리, 아저씨는 조촐한 저녁상을 차려내셨고, 그제야 우리는 안심하고 웃을 수가 있었다. 아내와 딸이 있다는데, 지금은 다른 지방에 갔단다. 대화가 아주 잘 통하는 게 아니어서 안타까웠다. 너무 자주 외국인을 초대해서 부인분이 화가 난 게 아닐까 나 혼자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저씨 집을 나서면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활짝 웃는 아저씨가 왠지 안쓰러웠다. 연쇄살인마로 오인한 게 미안하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도 의문이다. 아저씨는 왜 바자를 지나는 외국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던 걸까. 불교의 보시 같은 개념일까. 알 길은 없지만 아저씨 덕분에 진짜 카샨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뭘 먹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라는 친구도 얻었다. 


잠깐이지만 오싹했던 카샨에서의 저녁식사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걸 함께 기억해줄 친구가 있어서 참 좋다.






꽃할매들의 마을, 아비아네


아비아네는 이슬람 개종을 거부한 조로아스터교 사람들이 몰려든 산비탈의 붉은 마을이다. 여성들의 전통복식인 꽃무늬 히잡이 아비아네의 상징. 입구에서부터 꽃무의 히잡을 쓴 할머니가 활짝 웃어주신다. 너무너무 귀여우시다. 12월, 한겨울이었지만 볕은 따뜻했다.


대문 앞에 앉아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 뜨개질하시는 할머니, 달달한 전통과자를 파는 할머니. 모두들 꽃무늬 히잡을 쓰고 계셔서 온통 붉은 흙집 사이에서 할머니들의 존재는 너무 빛이 났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족히 수백 년은 되었을듯한 낡은 나무문들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 젊은이나 아이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 꽃할머니들 마저 사라지면 마을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마을이 살아남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기원전 5세기의 관개시설, 슈쉬타르


슈쉬타르는 자연 지형지물을 이용한 관개시설로 유명한 도시. 슈쉬타르 도시 전체에 물을 공급하고, 수력을 이용해 제분을 했으며, 하류 분지 평야에 물을 공급해 농사가 번성할 수 있게 한 관개시설이었다. 이렇게 들으면 그게 뭐 하겠지만 그게 바로 BC 5세기. 약 2500년 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2천 년 전의 인류는 무언가 아주 미숙하고 미개할 것 같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천재성과 창의성은 동일했다.


슈쉬타르는 한동안 수력발전소로 쓰이기도 했단다. 2천 년 된 유적지에 수력발전소라니. 그만큼 입지가 뛰어났다는 말. 현재 발전 시설은 철수한 상태, 대신 슈쉬타르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분을 하고 있었다. 물론 수력을 이용해서. 


슈쉬타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자니 한 할아버지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그리고 아마도 기원전 5세기부터 해왔을 방법으로 제분하는 과정을 보여주신다. 곱게 빻아지는 밀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건 참 다 똑같구나.






지구라트, 초가 잔빌


테헤란의 박물관에서 페르세폴리스의 부조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지구라트였다. 메소포타미아의 피라미드, 우리가 아는 바벨탑도 지구라트의 하나이다. 이란의 초가 잔빌은 BC 1250년에 건설된 지구라트.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초가 잔빌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낡은 표지판 하나, 낮잠 자는 동네 개 한 마리가 다였다.

 3천 년이 넘은 이 엄청난 메소포타미아 유적에 우리밖에 없다니.

조서방과 나는 한동안 우리가 전세 낸 초가 잔빌을 돌아다녔다. 우리를 데리고 온 택시 기사는 팁이라도 좀 더 받아볼 요량인지 자기가 아는 선에서는 열심히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지만 딱히 흥미로운 정보는 없었다. 쐐기문자를 찾아준 것 정도?!

 이 정도 규모의 지구라트가 이란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었다면? 전 세계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텐데...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은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초가 잔빌은 그 자리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동네 개들의 안식처로만 쓰이기엔 너무 아깝다.







장미도 먹을 수 있나요?


이란에서 장미 때문에 딱 2번 놀랐다. 장미 잼 그리고 장미 주스!

세상에 그 향기로운 장미를 먹는다니! 장미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질 못해서 정말 낯설었다. 향수나 화장품으로 익숙한 그 장미를 먹는다니. 


첫 번째 도전, 장미 잼

설탕의 단 맛이 강해서 장미의 향이나 맛은 그다지 진하지가 않다. 안 알려주면 무슨 잼인지 모를 정도.


두 번째 도전, 장미 주스? 장미 음료!

쉬라즈의 레스토랑에서 도전한 장미 주스! 양고기를 먹는 중이었는데, 양고기와 장미 주스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장미의 향긋함이 양고기의 잔향을 싹 씻어버렸다. 이것은 맛의 신세계.


장미 마니아라면 이란에서 꼭 장미 주스에 도전해 봐 얀다. 꼭 양고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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