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nie Feb 10. 2023

이란 Iran II

이스파한




세상의 절반, 이스파한


 16세기에 이스파한을 여행한 프랑스 시인 레니에는 이스파한을 '세상의 절반'이라고 노래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물자가 오가는 도시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실크로드의 카라반들이 묵어가던 도시. 이스파한 그랜드 바자르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 모습이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긴 지붕을 가진 시장, 지붕의 길이가 무려 2km에 달한다. 




카우치 서핑


카우치 서핑은 이름처럼 집에 남는 '카우치'를 여행객들에게 잠자리로 제공한다는 콘셉트의 플랫폼으로 대가 없이, 그러니까 무료로 잠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센세이셔널한 앱이었다. 선의로 시작한 플랫폼이었겠지만 아무래도 대가가 없다 보니 흉흉한 리뷰도 종종 찾아볼 수 있어서, 우리는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방인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이란인들을 보고 나니 여기서는 카우치 서핑을 한번 시도해 봐도 되겠다 싶었다.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가게 된 페이만과 마히네 집. 정말 소파에서 자는 줄 알고 갔는데 으리으리한 집, 웬만한 호텔 컨디션보다 더 좋은 방에서 머물게 되어서 깜짝 놀랐다. 페이만과 마히는 이스파한에서 큰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란사람들 중에도 미국 혹은 캐나다로 이민을 원하는 사람이 제법 있어서 영어학원은 꽤  잘되는 편이었다. 우리는 페이만과 마히의 학원에서 학생들과 만남을 가지고, 이스파한 시내를 같이 돌아다녔다. 이란과 미국은 분명 적대국이건만 미국으로의 이민을 원하는 사람이 꽤 있고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배운다는 사실이 처음엔 아주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과 얘기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란의 정치적 현실을 꽤 힘들어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꿈꾸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첫 카우치 서핑에 부유한 영어학원 원장님을 만나 VIP 대접을 받고, 많은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주 감사했으나 그들의 의욕 넘치는 스케줄을 따라주는 건 생각보다 많이 피곤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란에선 한국드라마 주몽의 인기가 대단했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주몽! 소서노! 를 외쳤다. 정말 오래된 드라마인데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물어보니, 이란에서는 지금 3번 정도 방영을 했단다. 주몽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페이만과 마히는 한국드라마를 보다가 몰래 수입된 칼스버그 맥주를 홀짝이며 에미넴의 뮤직 비디오로 채널을 돌렸다. 술이 금지된 나라에 수입 맥주는 어디서 들여오는 걸까? 이것이 이란 부자의 삶인가? 이스파한의 한 가정집에서 미국의 상징인 테일러 스위프트와 에미넴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수입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아주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이스파한의 유적지를 거닐고 싶은데, 정작 페이만과 마히 그리고 그 조카들은 현대식 쇼핑몰을 더 좋아했다. 이스파한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줄이야. 너무너무 피곤했지만 다들 너무 좋아라 해서 맥을 끊을 수가 없었다. 1인 1 햄버거까지 클리어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아주 뜬금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햄버거는 어디든 아주 맛있었다는 것! 테헤란부터 카샨의 구멍가게, 이 이스파한의 쇼핑몰까지... 햄버거는 죄다 맛있었다. 졸면서 먹었지만 아주 맛있었다는 건 선명하게 기억난다. 맥도날*, 버거* 없이도 잘할 수 있어!라고 보여주는 듯한 맛. 이란에서 케밥에 질렸다면 햄버거를 먹어볼 것을 권한다. 그게 어디든 맛있을 거다.




마흐무드


 마흐무드는 페이만 영어학원의 학생으로 우리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리끼리 다녀도 되는데, 굳이 보디가드를 보내고 싶어 하는 페이만 때문에 마흐무드와 우리는 이스파한 구석구석을 같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서울로 치면 남산 같은 이스파한의 소페산에 올랐을 때이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보더니 '나도 여자친구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한다. 이 녀석 하쉬 베쉬 궁전을 걸을 때도 그 소리를 하더니 외롭긴 외로운가 부다.

 

 어느 날은 마흐무드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마흐무드는 부모님이 사는 빌딩 꼭대기층에 혼자 살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화분에 물을 준다. 무슨 화분인데 이렇게 애지중지하냐고 했더니 망고 나무란다. '망고를 먹고 씨를 한번 심어봤는데, 진짜 싹이 나서 이만큼 자랐어. 요즘 내가 사는 낙이야' 라고 한다. 어찌나 웃었는지. 그래 애지중지할만하다. 마흐무드는 최근에 산 티브이를 자랑했다. 남자는 티비지! 한다. 어쩜 전세계 남자들은 이렇게 똑같을까. 너무 놀랍다. 왕좌의 게임과 제이슨 스테덤 영화는 다 좋아한단다. 녀석. 취향도 참.


  낮에 박물관에서 본 전통악기가 보이길래 연주도 할수 있냐고 물었더니 "당연하지. 10년 넘게 연습중이야. 몇 달만 배우면 할수있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서양악기랑 페르시아 전통악기는 차원이 달라. 10년은 연주해야 이제 소리 좀 내는구나 한다구" 그러면서 이란이나 중국처럼 유구한 역사가 있는 민족은 미래에 크게 될 거라며 애국심을 드러낸다. 그저 망고나무에 물이나 주는 허허실실 한 노총각인줄 알았는데, 제법 나라에 대한 생각이 깊다.


 마흐무드네에서 우리는 참 많이 웃었다. 별 시답잖은 얘기들이었는데, 마흐무드와 우리는 개그코드가 잘 맞았나 보다. 별로 중요치 않았던 그 이야기들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나서 피식 웃게 된다. 마흐무드의 집을 나서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새 티브이를 배경으로 찍어야 한단다. 하여튼 재미있는 녀석이다.

마흐무드의 망고나무는 잘 있을까? 마흐무드도 망고나무도 어떻게 지내나 참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란 Iran 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