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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Nov 16. 2022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나요?

ep. 130 The Killers - Read My Mind


서른의 마지막 분기를 지나고 있다. 길었던 20대를 보낸 후 조금의 설렘을 안고 맞이했던 30살, 참 지독하게도 오르락내리락했다. 작년에 내가 너무 힘들어할 때 남자 친구와 같이 심리 검사하는 곳을 갔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걸 알면서도 올해는 가자는 걸 몇번이고 거절했다. 정말 마음이 힘들 때는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꺼내는 것도, 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것도 애써 피하게 된다. 가을이 오고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자 마음의 여유가 생겨 그와 함께 '애니어그램'을 통한 상담을 진행하는 카페를 찾았다.



 애니어그램은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보고 인간의 성격이 육체가 아닌 영혼에서 온다고 믿는 이론으로 인간의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며 수련을 통해 변화시키는 과정이 있다고 본다. 표면적인 성격을 분석하는 MBTI와는 달리 애니어그램은 타고난 본래 성격을 찾아내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자신이 [성장(일이 잘 풀리는 상황)] 할 때와 [퇴보(스트레스 상황)]할 때 어떤 성격을 보이는지를 분석해 인간의 개발과 성장을 돕는데 유용하게 활용되는 성격유형검사다.


 심리학계에서는 비주류로 평가되지만 시나리오, 스토리 업계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는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캐릭터 설정 시 필수적으로 활용되며 한국에서도 시나리오 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에게 활발하게 보급되는 추세라고 한다. 애니어그램을 이용하면 캐릭터의 본래 성격을 고정적으로 설정할 수 있고 처한 상황에 따라 성장과 퇴보하는 성격을 묘사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MBTI와 달리 9가지 유형의 분류인 애니어그램이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애니어그램에서는 이를 보완하는 '날개'라는 요소가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성격에서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게 되는데 자라면서 성격에 대한 칭찬보다는 단점에 대한 지적을 받는 경험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단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좋은 의도였겠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성격을 숨기고 약점을 보완하는 다른 성격의 장점을 반영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이것을 '날개'라고 하는데 자신의 성격 유형 양 옆에 있는 유형들의 장점을 빌려오는 것을 말한다.

 [4번 유형-예술가]가 나온 경우 성취지향적인 [3번 유형] 날개를 많이 쓰는지(4w3), 고독하고 사색하는 [5번 유형]의 날개를 많이 쓰는지(4w5)에 따라 같은 유형이라도 다른 성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게 분류하면 세부 성격유형은 총 18개가 되고 [성장]과 [퇴보]에 따라 나타나는 성격을 합하면 더 세부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애니어그램에서 얘기하는 [성장]과 [퇴보]에 대한 소재는 꽤 흥미롭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퇴보하고 일이 잘 풀리는 상황에서 성장한다는 것과 각자의 본성 유형에 따라 갖고 있는 대표적인 '두려움'들을 해소했을 때 성장 단계로 간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작품의 서사를 만든다. 그림에서 화살표의 방향이 향하는 곳은 퇴보할 때 나타나는 성격 유형이며, 반대로 성장할 때는 화살표가 오는 방향에 있는 성격 유형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미지 출처 : 범츠의 건강한 생활. 네이버 블로그


나는 [4번 유형-예술가]로 이 유형은 '평범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불안의 형태이다.  


 옛날에는 "평범하게 살기 싫다"는 얘기를 많이 하곤 했다. 그렇다고 평소에 눈에 튀는 행동을 할 만큼 두드러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평범해지는 게 싫어 계속 무언가를 시도하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 되었다. "평범해도 뭐 어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상담사님은 내가 '평범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1번 유형-개혁가]로 성장단계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미지 출처 : 퍼블릭 뉴스, 이현준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성격이 많이 변화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본래 갈등을 너무 싫어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성향이 강했던 성격이었는데 몇 년 전 새로 회사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꼼꼼을 넘어서 깐깐하기 그지없는 원칙주의, 완벽주의 성격이 보이곤 했다. 누군가를 구속하거나 간섭하는 게 싫고 자유로운 게 좋다고 생각했었지만 회사를 새로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조직 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리와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에 대한 이유를 이전의 나는 '성격이 꼬장꼬장하게 되게 별로인 모습으로 바뀌었네.'라고 생각했는데 애니어그램은 내가 [성장]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상황'의 대표적인 예가 직장생활이라고 하는데,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는 꽤 좋은 선배이자 후배였다. 싫은 소리도 거의 하지 않고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애썼던 사람이었다. 애니어그램 대로라면 호감을 사기 위한 행동들을 했던 그 때가 스트레스 상황, 즉 [퇴보]하고 있었던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MBTI나 애니어그램과 같은 성격유형검사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유형을 분석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적인 검사의 결과를 통해 한 발짝 떨어져서 분석해보는 경험은 내가 지나온 인생의 서사에서 발생한 일들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개발과 성장에 분명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인터넷에서도 무료로 애니어그램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곳이 많지만 그것 역시 내가 선택한 문항들로 나온 표면적인 결과에 가깝기 때문에 전문상담사님과 함께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 해석을 해보는 것이 좋다. 실제로 상담사님은 검사 결과와는 다른 자신의 본성을 상담을 통해 찾아내시기도 하신다. 이렇게 찾아낸 결과를 내담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앞으로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하게 고민하신다고 한다.




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때쯤 이곳을 다녀오고 나서 내면에서 갈피를 못 잡던 질문들이 해소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후 친구들을 데리고 재방문을 했는데 친구는 다재다능하고 무언가를 할 때 '재미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성격으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지만 한 가지에 오래 몰두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는 [7번 유형-낙천가]라는 결과가 나왔다. 오랫동안 알아왔던 친구이지만 최근 모습을 보면 [5번 유형-사색가]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7번 유형의 특징들을 들어보니 처음 알았던 어린 시절의 친구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았다. 본래의 타고난 성격이 주변 환경들에 영향을 받아 다른 성격인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살펴보면 성격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친구가 물었다. "선생님, 그럼 저는 [5번 유형]처럼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나요?"


"사실 우리는 태어난 성격대로 사는 게 제일 행복해요. 다만 그보다 좀 더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자신의 성격에서 오는 불안을 극복하고 다른 유형으로 진화하기 위해 노력해보는 거죠."


역시 사람은 성격대로 사는 게 행복하다. 조금 더 발전하고 싶은 건 현대인들의 욕망이지만, 어쩌면 욕망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에게 하고 있는 강요는 아닐지,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스스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https://youtu.be/lMvIFWrgI5k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이번 주의 추천곡은 The Killers의 [Read My Mind]입니다. 제목 그대로 '내 마음을 읽어달라'는 가사의 노래인데요. 제가 추천하고 싶은 영상은 블랙핑크 로제가 버스킹으로 부른 버전이에요. 원곡과 로제 버전 두 가지 모두 들어보시기를 추천해요! 그리고 조금 더 내 마음을 읽어보는 가을의 마무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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