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덕질하기 시리즈 01. 여름
서른이 될 무렵 나는 그런 얘기를 자주 하고 다녔다. 나는 30년을 살아봐도 딱히 취미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다들 무언가에 진득이 미쳐있는 것들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데 난 왜 없을까? 이것저것 해봐도 딱 취미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어. 그런 얘길 하면 주변인들은 그랬다. 너만큼 취향이 확실한 애가 어디 있다고.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이 대체 뭘까?”
그렇게 찾으려 할 땐 모르겠더니 서른의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 꽤나 긴 시간을 진득하게 좋아해 오고 짝사랑해오고 있는 것들이 분명 있단 걸 안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지겨울 정도로 집착하는 것들. 나도 ‘덕질’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그래서 ‘취향 덕질’에 대한 몇 편의 시리즈를 써보고자 한다.
누군가 왜 여름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그 이유를 열 가지는 넘게 댈 수 있을 만큼 나는 ‘썸머홀릭’이다.
우선 여름의 풍경은 눈이 즐겁다. 겨울에 주로 블랙&화이트의 두꺼운 옷에 꽁꽁 싸여 둔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는 것에 비해 여름은 너도 나도 컬러풀한 옷을 입고 저마다 어울리는 액세서리로 자신을 꾸민다. 진짜 패션을 아는 멋쟁이는 블랙을 입는다지만 난 모르겠고 개성 있는 여름의 알록달록함을 보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여름의 꽃이 좋다. 썰렁한 겨울을 지나 마른 가지에 피어나는 봄꽃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에 비해 여름에 피는 꽃들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 무성한 녹음에 가려져서, 또는 날이 너무 더워서 바깥을 다닐 때에도 꽃에 관심을 덜 기울인다. 그래도 그 와중에 꿋꿋하게 피는 여름꽃들이 좋다. 특히 기분 좋은 코랄 색상의 꽃잎을 가진 능소화가 여름날 담장 가득 핀 것을 보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 꽃이 능소화라고 알려주곤 한다.
또 여름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자꾸 걷고 싶고 어디론가 뛰어들고 싶어 진다. 수영을 잘해도 못 해도 상관없이. 그리고 실제로 뛰어들든 상상 속에서 헤엄치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계절이다. 마음껏 헤엄쳐도 좋고 미친 듯이 걸어도 멋진 계절. 물론 요즘은 너무 뜨거워 여름을 좋아하는 나도 8월 낮의 뙤약볕은 견디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짝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요즘은 일찍부터 더워져서 5-6월부터 ‘여름’이고 7-8월은 ‘미친놈’이라고 할 만큼 미친 더위를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계절을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갈수록 쉽지 않다. 그래서 종종 여름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다. 마구 우리가 덕질하는 여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내가 유독 여름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어릴 때 살았던 동네의 영향도 컸을 것 같다. 감성 풍부한 10대 시절을 온전히 보낸 동네에는 앞으로는 푸른 논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넓은 저수지와 습지가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 아파트가 덩그러니 있었다. 도시냐 시골이냐를 놓고 보면 시골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한 번도 그 동네에 사는 것이 싫었던 적은 없었을 정도로 예쁜 곳이었다.
특히 그곳은 여름이 제일 예쁜 동네라 그곳에서 보낸 그 계절의 기억은 더 짙다. 학교가 끝나면 능소화가 가득 핀 길을 지나 녹음 냄새가 물씬 나는 습한 논두렁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비 오는 날이면 친구들과 나란히 딸기모양의 우산을 쓰고 첨벙 거리며 걸었다. 우산이 없으면 그냥 맞으면서 걷기도 하고 좋아하는 애와 나란히 정자에서 비를 피할 때 다리를 바깥으로 내밀어 발가락을 간지럽히던 빗방울을 느끼던 기억. 10대는 청춘, 그리고 여름은 뜨거운 청춘을 닮았다. 그래서 내 기억 속 10대는 온통 여름이다.
그런 기억들이 모여 여름을 특별하게 만들었고 그때부터 여름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더 벅차게 열병을 앓기 시작했던 건 20대의 여름이었다.
인생에서 제일 활기 넘치는 시기, 그 10번의 여름에는 늘 재밌는 일들이 일어났고 나는 그것을 ‘여름의 마법’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여름이 되면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 거고 일어나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여름을 기다리는 그 자체가 설렘과 기대의 시간이었다.
가만히 있는데 마법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계절만 되면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 돌아다니다 보니 재밌는 일도 많이 일어났던 것일 텐데, 마치 그게 여름이 가져다주는 선물 같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듯 여름이 되기를 기다렸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배낭여행, 여름밤이면 늘 자주 갔던 맥줏집, 한없이 걷던 서울의 거리, 밤의 한강 등 여름과 어울리는 곳곳의 장소. 20대의 기억에도 유독 여름의 색은 강렬하다.
일시적인 관계나 짧은 사랑을 의미하는 ‘플링(fl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 역시 왠지 여름에 스파크가 튀는 한 철의 감정을 떠오르게 하는데 그만큼 여름이 되면 뭔가에 홀린 듯 끌리고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솟구쳤다. 그 에너지가 이끌어낸 마법 때문일까 항상 모든 연애와 썸도 여름에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느 여름날 비가 내리거나 길가에 핀 능소화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되는데, 살면서 흔하지 않은 꽤 낭만적인 일일테다.
모든 것이 깊은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여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옅어져 버리곤 했다. 뜨겁고 끈적한 날씨와 함께 달아오르던 감정들이 날이 선선해짐과 동시에 차분해지고 이성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마치 축축한 이파리가 말라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낙엽이 되듯.
사실 여름의 밤은 낮만큼 선명하지 않다. 자주 취해 있던 탓이다. 여름에는 아무 데서나 술을 마셔도 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여름에는 사랑이 잦고, 착각이 잦다.
여름에 했던 사랑은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지만 그중 절반쯤은 착각이었다. 모든 것이 그토록 선명한 여름이 착각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사실은 조금 이상하다.
[VOSTOK - 시작도 끝도 여름] 중
그러고 보면 여름의 마법에 빠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세상에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마법은 대부분 흑역사를 생성한다. 저마다의 감정에 너무 취해 버리는 탓이다.
그러나 늘 이성적으로만 살아가는 어른이어야 했을 필요가 있을까. 이 계절엔 잠시 취해도 괜찮다는 듯 여름은 하루하루 사회가 정해놓은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나를 자꾸 어딘가로 불러냈다. 흐트러뜨리고 헝클어 놓았다.
그런 것들이 나를 좀 더디게 자라게 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렇게 여름에 대한 글을 쓰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냈으니 그걸로도 충분히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겨울인 사람은 여름 나라에서도 겨울을 산다. 손 닿는 것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싸늘한 마음은 뜨거운 계절조차 차갑게 만들어버린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름을 완성하는 건 계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아무튼 여름] 중
생각해 보면 여름을 좋아하는 가장 마지막의 이유는 그 계절에 유독 더 생생하고 흐트러져 있던 내 모습을 꼽을 수 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