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관계의 즐거움

결국엔 사람, 사람, 사람.

by Bonnie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다르다.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일(학업이나 일) 그리고 나 자신 외에 타인에게 쏟는 에너지는 늘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좁고 깊은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을 하는 '나'로서 맺는 사회적 관계들은 나의 사회적 이미지, 그리고 나의 밥줄이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둘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그다음은 나 자신. 다음은 우리 가족. 그리고 친구들. 만약 내가 연애를 하고 있다면 상대의 등장으로 이 우선순위들은 재정립되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서운하지 않게, 어떤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테트리스 블록을 짜 맞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멍은 늘 생기기 마련. 그럴 때마다 벅차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었다. 타고나길 이렇게 타고났기에, 늘 사람들과 함께 북적북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나는 E가 아닐까?라고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1:1 관계를 훨씬 편안해한다는 부분에서 그런 생각들은 쏙 들어가 버린다.


이곳에서는 원래도 좁고 깊은 나의 인간관계들이 물리적인 환경과 조건으로 한 단계 더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혼자 있는 걸 즐기지만, 외로움도 잘 느끼는 역설적인 사람이기에 처음엔 그 거리감이 불안하고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느슨해진 관계가 나를 종종 외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이곳에서 새로운 관계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공간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벌써 꽤 내 주변에 생겼다. 대학생 신분 또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험을 쌓기 위해 워홀을 선택한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나와 비슷한 상황,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는데, 막상 나와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큰 의미가 없었던 행사에서도 꼭 한두 명의 사람들은 사적인 관계로 이어졌고, 이 친구들과는 사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끔 만나 한식도 해 먹고, 한국어로 수다도 실컷 떨고, 여행도 간다. 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과는 언어의 한계가 있음에도 외국인으로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공통점으로 서로 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같이 재미있는 활동을 하러 가거나 각자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공유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는 요즘 영국 젊은 친구들의 문화, 농담, 그들이 뿜아내는 활기찬 에너지를 느끼며 일할 수 있어 리프레시가 되고, 가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대학생 시절을 돌아보며 나도 저런 멋진 순간이 있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어떻게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듣는 건 늘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다. 다양한 배경, 다양한 고민, 다양한 꿈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사람들. 그들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들은 간접 경험으로써 나를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왠지 모를 동질감도 생기고. 물론 이곳에서의 관계들은 적정한 거리가 있는, 느슨한 관계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재미있게 놀되, 각자의 경험을 위해 또 다시 흩어져 살아가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동물이고, 싫든 좋든 여러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나를 성장시키는 것도, 나의 세상을 확장시키는 것도, 때로는 나를 무너지게 하지만 또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도 결국엔 사람이다. 관계의 느슨함은 나를 종종 외롭게 만들지만, 이 느슨함이 주는 편안함과 여유도 있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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