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 맞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인생의 어떤 순간부터 건강하게 먹고 운동을 하는 것이 하나의 중심 가치가 되었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지만, 한국에서 3년여간 꾸준히 했던 필라테스를 시작으로 복싱, 러닝 등을 경험하면서 건강을 위해 즐기는 스포츠가 많아졌다. 다이어트의 목적이 아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사실 일을 하면서 평일에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3년간 필라테스를 지속하지는 못했을 텐데, 자타공인 성실의 아이콘인 엄마와 처음으로 함께 시작했던 운동이라 초반에 꾸준한 운동습관을 들일 수 있었다.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나와 잘 맞는 운동을 찾은 것 같아 좋았는데, 선생님의 1부터 8까지 카운트다운, 3세트씩 모두가 함께 정해진 카운트에 맞춰 모든 동작을 정확히 해내야 하는 것이 때로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날도 있었다. '오늘은 생리 중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무릎이 조금 아픈 것 같은데.. ' 하지만 그 카운트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쉬면 옆에서 집중 코치를 받는 것이 마치 열등생처럼 느껴져 무리해서 운동을 하는 날도 있었다. 물론 반대로 그 수업에서 내가 가장 잘 따라가면 그날은 말도 못 할 성취감과 우월감으로 행복하게 잠에 들었지만 말이다.
복싱은 그 해 여름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다. 정해진 라운드에 맞춰 줄넘기로 워밍업을 하고, 쉐도우 복싱으로 폼을 연습하고, 샌드백을 때리는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흠뻑 젖어버린 티셔츠에 괜히 뿌듯했다. 그리고 그날그날 쌓인 스트레스를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와 스피드 등에 대해 계속해서 지적을 받고, 옆 학생과 비교당하고, 그 자세가 마스터될 때까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선생님의 다소 엄격했던 지도 방법은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되었고, 재미를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결국 "전 복싱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라며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에 오기 직전, 돈 들이지 않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하다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2km도 쉬지 않고 뛰는 게 벅찼는데 어느 순간 5km-6km까지 뛰는 게 그리 힘들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5km를 쉬지 않고 완주했을 때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집 앞 공원으로 가서 숲 냄새와 맑은 하늘, 사람들 구경하며 뛰는 건 불안하고 막연한 나의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었다. 음악을 듣거나 친구와 함께 통화를 하면서 내 컨디션에 맞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 페이스에만 집중해서 뛰는 게 좋았다.
영국은 운동 관련 앱들도 다양하고, 스포츠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편이라 이곳에서 여러 가지 원데이 클래스들을 경험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복싱 클래스를 들었던 날. 각자의 위치에서 신나는 음악과 선생님의 구호에 맞춰 자유롭게 쉐도우 복싱을 했다. 비기너들을 위한 세트만 시범을 보이고는 "잽, 어퍼컷, 훅 본인의 조합대로 자유롭게!" "본인의 스텝을 찾아보세요" 등의 가이드를 주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처음엔 너무 자유도가 높아 그 분위기를 살피기 바빴는데, 어느 순간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고 이런저런 동작들을 하다 보니 그 순간을 정말 즐기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 수업이 좋아서 두 번째 근력운동 수업도 들어보았는데, 간단한 도구들을 사용하는 맨몸운동 세션이었다. 한쪽 공간에는 2kg부터 20kg까지 다양한 무게의 아령들이 있었고, 수업 시작과 동시에 모두 각자 무게에 맞게 몇 개씩 골라 가져왔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범에 맞춰 더 많이 하고 싶은 사람은 횟수를 추가하고, 좀 더 난이도를 높이고 싶은 사람은 포즈를 추가하는 등 각자 페이스에 맞게 몸을 움직였다. 한 동작에서도 각자의 속도, 횟수, 동작 모두 달랐다.
또 오랜만에 필라테스가 하고 싶어서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던 날. 두 번의 수업 모두 역시 본인의 페이스에 맞게 각자 동작을 변형하거나 횟수를 조절했고 선생님 또한 특정 학생에 대한 집중 코치 없이 앞에서 가이드와 시범만 적절히 보여주셨다. 천천히 내 몸에 집중하며 호흡했고 리포머 위에서 오랜만에 몸을 늘이고 움직이다 보니 수업이 끝난 후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영국에서 자유도가 높은 수업들을 경험한 후,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고 사소한 이런 면들에서조차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배어있다고 느꼈다. 모두가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해 다 같이 달리는 사회. 남들과 같은 선 상에 서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사회. '평균'속도에 맞춰 뛰어가기 위해 때로는 열등감, 때로는 우월감을 느끼며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게 되는 사회. 우리는 각자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속도에 맞춰 각자 자유롭게 걷거나 뛰거나 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난 운동을 좋아했지만 그 운동을 배우는 방식을 좋아하진 않았다. 이곳에서는 어떤 운동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게 전혀 두렵지가 않다. 나의 속도대로, 그 순간에 집중해서 즐기면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