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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궁전 Dec 03. 2020

임산부로 대중교통 출퇴근하기

지하철 임산부석에 관하여.

이제, 임산부로 핑크 좌석에 앉아서 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 지하철 보통 타면 임부석이고 뭐고 앉아있고 고개 절대 안 들고 자거나 핸드폰 하기 바쁘다. 아 바쁜 현대사회란.... 

다들 출퇴근 힘들고 고단한 거야 왜 모르겠냐마는.... 임신한 나보다 힘들까...라는 서운함도 불쑥 들곤 한다. 난 요즘 잠자는 것도 힘들다; (막달이 다가오니 아이가 뱃속에서 열심히 발길질하느라 계속 선잠을 잔다. 그리고 몰랐는데 임산부는 천장을 바라보고 잠들기 어렵다. 일단 폐가 눌려서인지 뭔지 숨쉬기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서 옆으로 잘 수밖에 없다. )

출퇴근길 사람들은 핸드폰 하느라 다들 정신없어서 배지도 안 본다. 

배지 보고도 양보안 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배 나오고 배지 달린 채로 임부석 말고 다른 좌석 가기도 힘들다. 마치 앉아있는 사람에게 이봐 일어나라고 말하는 꼴이니 말이다. 비켜주던 안 비켜주던 그냥 그 앞에 서있는 수밖엔 없다. 

 이런 말 하면 임산부 자리가 말 그대로 배려지,  의무로 비켜줘야 되냐고 하는 사람들 있을 거 같은데, 자리 양보가 그렇게 크나큰 희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9개월 넘게 아이를 안고 무사히 출산하기까지 사회에서 당연히 같이 노력해 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국가에서 이런 좌석까지 마련한 게 아닐까. ) 결국 내가 나이 들었을 때 실질적으로 일하는 일꾼이 될 아이들 아닌가.  


 나도 임신전에 누구한테 자리 양보 받아본 적 없는 사지 멀쩡한 사람이었으며 임부석에는 당연히 아무리 힘들어도 앉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임부석을 비워두지 않고 앉는다. 사실 앉아도 되는 자리가 맞지만, 내가 임산부로 지내다 보니 그 자리에 누가 앉아있으면 앞에 가서 서기가 무척 망설여지며, 비켜달라고 말하는 꼴이라 참 민망하다. 그래서 임부석은 비워달라고 주기적으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까지 지하철 타면서 지하철 사람이 꽤 있을때 임산부석이 비워져 있는 경우는 열 번이 되질 않는다. 비워두기엔 너무 달콤한 유혹인가 보다. 

 자리가 비워져 있으면 사람들이 많아도 어떻게든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에 가서 앉을 수 있지만, 누가 앉아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그쪽으로 가기도 뭐하고 이미 탄 쪽에서 사람들에게 끼여서 배를 보호하며 탈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이 많을수록 임산부들이 앉을 확률이 더 떨어지기에 웬만하면 임부석은 비워주십사 하는 거다. 임부석에 앉아있다가 임산부 오면 비켜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이 많으면 임부석은 출입구 쪽이라 본인 앞에 누가 서있게 되고 정작 임산부들은 서있는 사람 뒤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앞사람에게 가려져서 결국 내릴 때까지 서서 가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일반석에 앉은 사람들이 본인도 하루 종일 시달리고 피곤한데 앞에 임산부가 끼여있다고 비켜줄 결심이 들기 힘들 거라는 거 너무 잘 안다. 

 노약자석에 가면 되지 않냐는 말도 있던데, 노약자석에서 앉아본 적 있는데 눈치 엄청 받았고, 눈앞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계시는데 계속 앉아있으면서 그 눈총을 다 받느니 그냥 다른 쭉 가서 서있는 게 낫다. 심지어 본인은 임부석에 앉아있던 할머님이 자리 비켜주셔서 못 앉고 그냥 앉으시라고 했다...=_= 그냥 좀 젊은 할머님이면 앉았겠지만, 정말 나이 든 할머님이셨고, 차마 비켜주신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옆이나 주변에 아무도 자리는 양보해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내려서야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부석이 핑크색 자리만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지하철 양 끝에 핑크색은 임부석으로 비워둔 거고 그 사이에 5줄은 임부석, 아이 등 대중교통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되도록 양보해달라고 만든 좌석이다. 앉아있는 자리 창문에도 쓰여있다. )

 사람들은 각자의 용무가 무척 바쁘다.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많이 안타는 열차로 타려고 내가 내리는 역 바로 다음 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를 타거나 아니면 그 차고지에서 출발하는 바로 전 역에서 출발한 열차를 이용하는데, 기껏 한두 대를 보내고 그 열차를 기다려서 타면 바로 좀 전에 타고서 바로 눈 감고 가시는 바람에 회사 오는 내내 서서 온 적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한번 앉으면 앞에 누가 서 있는지 보질 않는다) 

 그나마 지하철은 양호 한 편이고 버스는 정말 앉기 힘들다. 특히나 마을버스에서 앉아서 가는 건 거의 기대하면 안 된다. 애초에 출입문이랑 가까운 곳이 임부석이지만, 그쪽이 가깝고 편하기 때문에 많이들 앉고, 역시나 다들 핸드폰하고 전화하고 정신없이 바쁜 현대인들이라 옆에 임산부가 서있는 것까지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난 버스 경우는 짧게 타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하철은 길게 타고 가는 형편이라 자리가 나는 게 무척 소중하기에 빈자리를 목 빠져라 찾게 된다. 

매번 빈자리가 있기를 기도하며 타고 있다. 

임산부 배지 달고 지하철 타고 다닌 지 한 7개월이 된 시점에서 기억나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어떤 아주머니가 임부석에 앉아서 핸드폰 하시면서 내가 앞에 서있는 걸 보고서도 안 비키고 계셨고 그 옆에 여자분이 있었는데 한참 후에 날 발견하고는 '아 비켜드려요?' 하며 날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 보통 비켜줄 마음이 있으면 궁둥짝이라도 들면서 말할 텐데 가만히 앉아서 누가 봐도 일어나기 싫은데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의 말투로 느껴져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데, '네 좀 비켜주세요' 할 수 있는 임산부가 있을까 싶다; 그제서야 그 임부석 아주머니가 내가 앉을 의사가 없는 줄 착각하셨던 건지 여기 앉을 거예요?라고 물으셔서 이미 가야 할 정류장이 10개나 남았던 나는 냉큼 "네"라고 대답해버렸었다. 그제서야 벗고 있던 신발을 다시 신고(놀랍게도 자기 자리에서 신발 벗고 맨발로 계셨다) 자리를 주섬주섬 비켜주셨는데, 어지간히도 외면하고 싶을 만큼 피곤하셨나 보다. 

일화 두 번째. 

서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열차에 탔을 때 임부석 앞에 서자 앉아있던 아주머니분이 '여기 앉을 생각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비켜주시면 앉을 생각입니다만....이라고 대답하진 않고 뜻밖의 질문이라 '네'라고만 대답했다. 무척 아쉬워하며 일어나시던 아주머니.... 

일화 세 번째 

배가 많이 불러서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앞에 임부석에 있던 임산부가 비켜주려고 해서 괜찮다고 한 적 있다. 나나 앉아있던 사람이나 다 같은 임산부인데, 누가 누구한테 양보한다는 게 참 모양이 좋진 않았다. 

그 옆에 사람은 뭔가 계속 앉아있기 힘들었던 건지 아님 본인 내릴 때가 된 건지 몇 정거장을 더 가다가 결국 비켜주었다. 

그래도 세상은 대체적으로 따뜻한 것 같다. 

7개월 넘게 임산부 배지 달고 다니면서 감사했고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다. 

첫 번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임부석 쪽에 서있는데 내 뒤편에 있던 처자가 벌떡 일어나 나보고 앉으라고 양보해 준 것이다. 자신의 자리 쪽으로 서있던 것도 아니고 분명 양보안 해도 괜찮았을 텐데 굳이 나에게 자리 양보해 주는 걸 보고 감동받았었다. 아 아름다운 처자여...ㅠㅠ 

두 번째는 역시 임부석이고 좌석이고 만석이라 다른 임부석 앞에 서있으려고 지가나는데 중간에 있던 아저씨가 내 옷을 끌며 자리를 양보해 준 일화이다. 앞에 서있던 것도 아닌데 자리 양보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ㅠㅠ 신사분이심. 이분은 내가 내릴 때까지도 계속 가는 나보다 더 오래 타고 가시는 분이었다. 너무 감사해서 내릴 때도 다시 감사하다고 하고 내렸다. 

세 번째는 임부석에 어떤 처자가 자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는데 출입문 쪽에 서있던 아저씨가 그 처자에게 앞에 임산부 있으니 좀 비켜주라고 해준 일화이다. 피곤해서 자고 있었겠지만, 나도 몸이 무겁고 힘들었기에 덕분에 앉을 수 있었다.  그냥 모른척 하셨을 수 있는데 나서서 자리양보를 강요(?)해주신 덕분에 편히 올 수 있었다. 

임산부석을 이용하다 보니 생각나는 댓글이 있다. 

왜 출입문 바로 옆에 꿀 자리를 임부석한테 양보해야 되냐고 하는 거였는데, 

 척 봐도 어린 사람이 쓴 거라고 보였는데, 출입문 쪽에 둔 이유란... 사람이 많을 때 인파를 뚫고 내리는 게 임산부에겐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배가 눌리기라도 한다면 그 위험은 태아에게 직결된다; 꼭 미래의 일꾼을 위해서 양보한다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도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주변 사람들의 배려로 무사히 나왔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휴먼들이 현재 인간의 자궁 외에서 잉태돼서 태어난 복제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모두 앞세대 분들의 배려로 무사히 태어난 셈이다. 

 대체적으로 나는 아저씨들과 젊은처자분께 자리 양보를 많이 받았다.  임부석에 앉는 임산부 아닌 그룹들은 (젊은 남자, 젊은 여자, 아주머니,아저씨등) 애초에 잘 일어나주질 않았다. 하긴 비켜줄 생각이면 거기 앉아있지도 않았겠지만.... 

이제 출산휴가를 일 개월도 안 남기고 있다. 하루하루 출퇴근의 전쟁 통과 코로나 마스크의 답답함에도 아이를 품고 출퇴근하고 있는 임산부들 힘내시길. 지긋지긋한 코로나로 2020년을 마감하게 될줄은 임신준비할때도 전혀 예상 못했다... 우울하고 답답함이 없지 않지만, 나만 겪는 것이 아니니 힘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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