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지마 섬 카페투어
세계 최대의 관광지에서 한적한 곳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극도로 내향적인 나로서는 사람이 많은 곳이 제일 싫다. 하지만 해외여행에서는 의외로 덜 부담스러운데, 영어, 일본어, 중국어처럼 외국어가 들리면 귀가 덜 시끄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발길을 옮기다가, 물을 마시는 사슴을 발견했다. 그 모습은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 신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순간, 내가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일원이 되어 동물을 관찰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번잡한 관광지가 아닌 깊은 숲속에서 홀로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사슴을 발견하고 몰래 지켜보는 듯한 감각이었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카페나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지 않아, 생각보다 한적하고 조용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자, 아래에서 놀고 있던 사슴들이 한마리씩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마치 사슴과 교감하는 느낌도 들었다.
공원을 찾아 미니 등산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는 사슴을 만났다. 5월이지만 여름처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 나도 목이 말랐는데, 사슴들은 얼마나 더 목이 말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잉어들이 헤엄치며 물을 튀기는 사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을 마시는 사슴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놀란 사슴은 뒷걸음질치며 멀어졌다. 미야지마 섬 입구 근처에 있던 사슴들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었었는데, 숲속의 사슴들은 대체로 사람을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로프웨이 타는 곳 근처에 자리 잡은 전통 료칸. 나는 현대적인 건물들보다는 해외에 나가면 그 나라 특유의 전통음식과 옛 건축물에 더 끌린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가 베트남 다낭의 호이안이다. 호이안에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전통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특별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는 교토를 좋아한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여성이 인력거를 끄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체구로 두 명이나 태운 인력거를 끄는 모습에서 강한 근력이 느껴졌다. 게다가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인력거를 끄는 모습은 일본의 세심한 서비스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테마형 서비스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만약 경복궁에서 가마를 타볼 수 있다면, 관광의 재미와 풍성함이 한층 더해질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남편과 함께 인력거를 타고 여행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로프웨이 타는 곳에는 끝없이 이어진 줄이 늘어서 있었다. 골든위크라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아, 결국 로프웨이는 타지 않기로 했다. 관광지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다 보니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미리 찾아두었던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미야지마 섬에 위치한 [미야지]라는 카페를 찾았다. 외진 곳에 있어 한적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카페 안은 만석이었다. 날씨가 다소 무더웠던 탓에, 토리이 그림이 그려진 따뜻한 카페라테 대신 아이스 커피를 주문했다.
5월 초인데도 불구하고 여름 날씨처럼 더운 날이라, 카페에서는 빙수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고 싶었던 나는 빙수 소리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고,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곧바로 다음 카페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두 번째 카페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한적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숨겨진 명소라며 추천하는 영상을 보고, 구글 맵을 켜서 열심히 찾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며 관광객들도 이 길이 맞는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계단을 약 2분 정도 오르면 꼭대기에 숨겨진 카페가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에 반사되는 나무들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다만, 이곳에서도 풍경이 잘 보이는데 사진 촬영만 하면 비용을 내야 한다. 그럴 바에는 차 한 잔을 주문해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높은 현대식 건물이 없어, 마치 내가 시간을 거슬러 에도 시대로 여행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조용하고 차분했으며, 그곳에서 잠시나마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었다.
이 카페에서 재밌었던 점은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은 풍경이 보이는 자리를 일부러 피한다는 것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도 곤충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고, 점원이 곤충들을 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기피하던 자리는 왕벌과 곤충들로 인해 인기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빈 자리를 보고 기분 좋게 다가가며 "왜 이렇게 좋은 자리가 비어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지만, 곧 벌과 곤충들의 성가심을 겪고 나면 불편함을 느껴 다시 자리를 옮기곤 했다. 결국, 나 역시도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 그늘진 자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소동이 지나간 뒤에는 더없이 조용해져서,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읽고 있던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항상 아날로그 책을 한두 권 챙겨 다니는 편인데, 대개 하루에 한 권 정도는 완독하곤 한다.
나는 일본에 가게 되면 꼭 킷사텐을 들르곤 한다. 킷사텐은 쇼와 시대의 정취가 느껴지는 카페로, 커피와 음식을 함께 제공하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감돌며, 나무로 된 가구와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레트로한 감성이 가득하고, 조명은 살짝 어두운 편이라 낡은 듯한 느낌마저도 아늑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킷사텐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반면 한국의 카페는 대체로 수다를 떨거나 공부를 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킷사텐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단골 손님이 주로 찾는 곳이라, 마음 편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미야지마섬에서도 킷사텐이 한곳 있어 지도를 보며 찾아가게 되었다. 섬의 유명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토리이와 신사에서 꽤 떨어진,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 안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였다.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니, 관광객이 없는 한산한 거리에 카페가 위치해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자,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더욱 반짝이며 빛나는 듯했다. 고요한 시간은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흘러가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정지한 듯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카페 안에는 주인 할아버님,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신 할아버님, 그리고 단골로 보이는 또 다른 할아버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미야지마에서 세 번째 방문인 카페에서 어떤 커피를 마실지 고민하다가,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할아버님이 추천해 주신 카페오레를 주문했다. 케이크도 함께 먹을까 생각했지만, 곧 밥을 먹을 시간임을 깨닫고 결심에 포기했다.
카페에서 서비스로 내주신 오챠는 더운 날씨에 딱 어울리는 시원하고 적당히 우러난 차였다. 귀여운 꽃무늬 컵받침 위에 올려져 있던 차 한 잔은 단순히 음료를 넘어, 작은 배려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직, 도쿄]라는 책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한 책인데, 작가가 자주 가는 카페나 음식점 등을 소개한다. 마치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일본 여행 중에 참 재미있게 읽었다. 나도 일본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라, 언젠가는 나만의 '킷사텡'이라는 책으로 엮어서 출판해보고 싶다. 물론, 그러려면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