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환경에서의 출발

사교육 전무, 시골이 키운 통번역사

by 데보라

평범해서 가능했던 길



내 일은 매일같이 영어와 스페인어로 해외 파트너들과 협상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회사에서 글로벌 해외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리더이자, 통번역대학원을 나와 국제회의동시통역 자격을 갖춘 한명의 통번역사 이기도 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면, 대개는 어릴 때 부터 언어에 둘러싸인 특별한 배경이 있겠거니 짐작한다. 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민, 혹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거나 유학을 다녀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시작은 매우 평범했다.

나는 서울 사람들이 '시골'이라고 부르는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학원도, 유학도, 원어민 친구도 없는 환경이었다.


다만 꿈이 있었다.

어릴 때 부터 다른 언어를 구사하며, 나와는 이질적으로 생긴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아주 더딘 걸음이었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있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그 평범한 출발선이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었다.







무턱대고 외우던 내신용 영어



내가 영어를 처음 접한 건 학교 외국어 시간이었다.


내가 자란 지역에서는 당시 대부분이 영어 사교육을 따로 받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첫 영어는 초등학교 때 외웠던 'Jenuary February March...'로 시작하는 챈트이다. 6학년 때 학교에 교포 출신 영어 선생님이 계셨는데, 어눌한 한국어를 사용하시면서도 영어를 구사할때만은 유난히 멋져 보였다.


그 시절 나는 영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배우는 영어가 어떻게 쓰일지도 몰랐다. 중학생에 들어가서는 내신대비 학원에 다니면서 학교시험을 준비했다. 그때의 공부법이란 지금 돌이켜보면 꽤 무식했는데, 단순히 텍스트를 외우는 것이었다.


정말 독하게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시험범위에 있는 영어 교과 텍스트를 100% 완전히 외워서 절대로 문제를 틀리는 법은 없었지만, 나는 열심히 하긴 했지만 늘 한 두 문제씩은 틀리는 학생이었다. 늘 상위권이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학생이었다.


시험 범위 내의 영어텍스트를 완전히 외우는 것 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다른 "소리" 그 자체 였다.

시험용 영어를 무작정 외우던 중에도 내 관심을 끈 건 "소리"였다.

한국어는 적힌 대로 읽으면 되지만, 영어는 전혀 달랐다. 알파벳 소리를 조합해서 발음하려고 해도 그게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였다. 영어선생님은 매 수업시간마다 단어시험을 보곤 했다. 시험에 틀리지 않으려면, mp3 파일을 다운받아서 발음기호와 소리와 단어를 같이 외워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과정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소리의 리듬이 재밌었고, 다른 세계를 엿보는 듯 했다. 단어장을 외우고 소리를 따라 하다 보니 점차 경향이 보였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규칙 같은 게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mp3를 듣지 않아도 내가 예상한 발음이 맞는 경우가 늘어났다.







영어 점수는 유럽도 보내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나는 영어학원에 다닌 적이 없었다. 대신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온라인 강의를 몇 개 들었을 뿐이다.


어느 날 학교 담임섬생님이 도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셨다. 거기에 신청서를 내서 선발되면 무료로 유럽을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해외 연수이니 만큼, 참가자를 뽑는 기준은 영어 점수였다. 영어 점수가 없던 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회였다.


내 주변에는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 몇 있었다. 그 친구들은 학교 주변 영어학원을 다녔었는데, 학원을 다니며 이미 토익이나 토플 점수를 만들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뒤, 가장 친한 친구가 그 프로그램에 지원해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여행책을 보며 유럽을 동경했지만, 비용이 너무 커서 꿈으로만 남아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내 친구는 영어 점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짜로 유럽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영어 점수 하나가 어떤 사람에게는 닫힌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나에게는 닫혀 있던 문이, 친구에게는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순간 단순한 부러움보다 더 깊은 감정이 밀려왔다. 상처였고 동시에 깨달음이었다. 언어는 성적표 위의 숫자가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티켓이었다. 나는 그 티켓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나도 언젠가 그 문을 열어야겠다

그리고 결심했다. 언젠가 나도 그 문을 열어야겠다고.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그 아픔이 있었기에 나는 그 이후로 언어를 놓지 않았다. 언어가 기회가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처는 결국 나를 더 멀리 이끌고, 끝내는 내 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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