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당신이 외국으로 진출하고 싶다면, 영어를 하는 것이 우선순위일 수 있다.
그리고 다들 영어부터 잘 하고 다른 언어를 하라고 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기도 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영어는 가장 치열한 경쟁의 장이라는 거. 지원자 수백, 수천 명이 영어를 특기로 지원한다. 하지만 그 중에 눈에 띄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는 무기, 나만의 특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게임의 룰은 바뀐다.
당신의 시장은 급격하게 넓어지고, 경쟁률은 확 낮아진다. 심지어 "당신밖에 할 수 없는 자리"가 기적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제2외국어는 당신의 커리어지도를 쉽게 넓히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이다.
스페인어는 지금도 민간, 공공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요가 있다. 해외 외교공관, ODA 현장, 공공기관, 세종학당, 한국문화원 같은 공공분야 뿐만 아니라, 기업의 수출, 해외영업, 협상 자리에서도 스페인어 인력은 늘 귀하다.
특히 한국 기업의 "싸고 품질 좋은" 고기능/고기술 제품들은 중남미 시장에서 환영받는다. 건설, 방산, 화장품, 제약, 첨단기술, 의료기기까지.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과의 교류는 매년 늘고 있다.
스페인어가 열어주는 진짜 세상은 더 넓다. 스페인어는 단순히 스페인에서만 쓰는 언어가 아니다. 중남미로 가보면, 브라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과도 로망스어계열로 제한적인 소통이 가능하고 (말은 달라도 서로 알아듣는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는 언어다. 아프리카 적도기니처럼 스페인어가 공용어인 나라도 있다.
결국 스페인어 하나면,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페인어로 전 세계 5억명이 넘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스페인어 덕분에 완전히 다른 문화와 삶을 살아온 나도 있다. 통번역 현장에서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사업부서에서 10년 넘게 수출, 출장, 협상, 법인설립까지 온갖 재미있는 일을 경험했다. 그런데 언어의 힘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삶의 지도까지 넓혀준다.
멕시코에서 마야 문명 속을 거닐며 진짜 타코를 맛보고, 콜롬비아에서는 커피 농장에서 얼마 전 수확한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페루 마추픽추에서는 잉카 문명의 위대함에 압도당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를 배우고 빙하 얼음에 위스키를 마시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듣기만 해도 즐거운 이 모든 경험들은, 스페인어라는 '열쇠'가 있었기에 더 깊고 생생하게 나에게 왔다. 카르페디엠이라는 말 처럼, 하루하루를 즐기고 인생에 감사하는 중남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행복해지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언어는 물리적이고 외부적인 세계를 넓혀줄 뿐만 아니라, 내면의 새로운 나를 만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특히 스페인어를 말할 때의 나는, 한국어로 소통할때와는 전혀 다른 성격과 태도를 보여주곤 한다. 특히 스페인어로 말할 때면, 더 즐겁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더 행복한 내가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언어는 단순히 취업을 위한 자격증이 아니다. 내 삶의 반경을 넓히고,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는 또 하나의 자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요즘은 AI가 발전하면서 굳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파파고나 구글 번역, GPT의 번역 실력이 인간 번역사를 아득히 초월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지치지 않는 체력과 암기력과 배경지식), 맥락을 읽는 능력은 아직 인간을 따라올 수가 없는 한계도 있다.
더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앞으로는 맥락을 읽고 그에 따른 통역/번역을 하는 것 마저도 기계가 더 잘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먼 옛날 인간이 신에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고, 이에 분노한 신이 사람들을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고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퍼뜨렸다는 바벨탑 신화가 있다. 통번역사들은 언어의 격차를 줄이며, 신이 분노했던 이 바벨탑에 대해 다시금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칭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인류는 진정으로 바벨탑에 가까워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앞으로는 영어나 제2외국어도 '굳이'배우려는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간편한 소통은 기계가 더욱 자연스럽게 대신할 날이 아주 금방 올 것 같다.
하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의 한계를 넘고, 대륙과 문화를 잇는 무엇보다 즐거운 자기 발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커리어와 삶을 압도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나와 환경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전혀 다른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대신해줄 수 없는, 온전히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