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스타트업의 끝을 받아들이며, 지난 희망과 좌절을 떠올린 채 서류 위에 오늘의 날짜를 적었다.
창밖으로 희미한 오후의 햇살이 들어왔다. 그 빛은 아무것도 위로하지 않은 채 그저 사무실 안을 어슬렁거렸다. 지난 몇 년간 이곳에서 보낸 수많은 밤과 새벽,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제 이 공간은 비워질 예정이었고, 나의 꿈도 그와 함께 정리될 터였다.
서류의 빈칸을 바라봤다. 아직 날짜란이 비어 있었다. 날짜를 적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손이 떨렸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백 번도 더 생각했었지만, 정작 그것을 눈앞의 종이 위에 적어야 하는 순간이 오니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벽에 붙은 여러 장의 종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종 합격 공고', '선정 통지서', '수상 확인서'. 이제는 빛이 바래버린 그 종이들은 내게 꿈을 약속했던 증거였다. 하지만 지금 그것들은 단지 내가 걸어온 고된 길의 흔적일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이 사무실엔 침묵만이 남았다. 팀원들도 하나둘 떠났고, 걸려오는 전화조차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끊겼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제는 전화벨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이 공간에 겨우 살아 있는 생명의 흔적을 남길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의 거리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걷고, 자동차들은 끊임없이 움직였으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실패한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은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쉬었다. 문득 사업을 시작할 때의 설렘과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정부의 지원과 약속들이 나를 더 강하게 밀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놓쳤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을까.아니, 그저 내가 너무 평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성실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성공을 허락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혹시 내가 너무 일찍 포기한 건 아닐까,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한숨과 함께 내 안의 마지막 남은 저항도 사라졌다. 이제 나는 이 종이에 날짜를 적을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위로조차 지금은 공허했다. 그저 고요한 침묵과 마주할 뿐이었다.
서류 위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날짜란에 오늘의 날짜를 적기 시작했다. 오늘, 나의 스타트업이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