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먹고사니즘에 대한 짧은 생각
'나 하나 벌어먹고사는 일 이외의 다른 것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먹고사니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오로지 내 살 길에만 집중하겠다는, 무신경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상태. 특히 먹고사는 문제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습관처럼 되뇌는 이 먹고사니즘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흔들렸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임을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사회 문제들로 귀결되는 나의 숱한 고민과 방황들은, 사실은 너도 먹고살만해서 그런 고민도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그 비아냥거림 앞에서 여러 번 침묵으로 남았다. 내가 먹고사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문제들을, 이를테면 인권, 환경, 평등, 사회정의 같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을 남들 앞에서 건드리면, 나는 혹시 정말 나보다 더 배고픈, 또는 더 배부른 사람들 앞에서 배부른 척하는 건방진 사람인 걸까? 하는 내 안의 두려움도 내 침묵에 한몫했다.
지금에 와서 당시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아마도 내 수준에서는 충분히 먹고살만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미 ‘배가 불렀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이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벌써 배불러도 되는 건가? 와 같은 영양가 없는 질문을 나 스스로 던지며 더더더 욕심을 더 부려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사실 사람마다 '배부르다'는 기준은 다 다르고, 비유하자면 나는 꼭 '피자 한 판'을 다 먹어야만 배가 부른 사람이 아니라 '피자 두 조각'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사람이란 걸 그때는 인정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물론 먹고사는 문제에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는 아직 많다. 가난의 굴레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심지어 먹고사느라 바빠서-라는 말을 낼 여유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먹고사니즘을 주창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정말로 여유가 없었을까. 사실은 어디로 달리는지, 왜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고, 왜 더 먹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일단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빨리 먹어두는 게 경제적, 사회적으로 이익이라고 자위하느라 바빠 스스로 배고픈지, 배가 부른 지 판단할 여유만 없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정말로 먹고사는 문제 하나에만 온 힘을 다해 매달려야 할 만큼 스스로의 삶이 궁핍한지, 또는 먹어도 먹어도 습관적으로 먹고사니즘의 굴레에 빠져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지는 살면서 한 번쯤 돌이켜볼 문제다. 예전의 나 같은 경우는, 나는 내 배가 부르다는 것을 예전부터 이미 몸소 느끼고 있었음에도 딱히 스스로 배부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 나 배부르다고 말을 내기가 쓸데없이 겁이 났다. 그래서 그냥 더 먹고 싶지는 않은 것 같은데 주변의 반응이 무서워 일단 더 먹는 시늉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멍청했다.
어찌됐건, 먹고사는 행위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지금 충분히 먹고사니즘이 해결된 사람들도 살기 위해 먹고, 또 살아간다. 그렇다면 더 많이 먹고, 더 비싼 걸 먹는 게 목표가 아닐 때에는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볼 때가 아닐까. 그동안 먹고사니즘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경제적인 능력 또는 배경을 갖추어나가는 부분만을 논했다면,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가 자유로운 환경의 먹고사니즘에는 '잘 먹고', '잘 살아가는' 그 자체의 행위도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
배고픈 척할 필요 없고, 내가 더 많이 먹을 수 있다고 과시하지도 않는 먹고사니즘. 서로 먹고 싶은 음식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각각이듯, 다른 사람의 먹고사니즘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면서 바로 설 수 있는 나만의 먹고사니즘. 내 취향에 맞는 음식 한 두 개쯤은 언제 어디서나 혼자서도, 또는 남과 나누기도 잘하는 먹고사니즘. 먹고사는 행위를 하면서도 나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사회에도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 먹고사니즘. 내가 실천하고 싶은 새로운 먹고사니즘은 이런 것이다. 굳이 이름을 한 번 붙여보자면 "잘먹고잘사니즘"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