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흉내 내는 민들레가 되지 말라.

선악을 생각하지 말자.

by 부소유

이번 강신주 선생님의 강의는, 마치 낯선 풍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철학적인 논리와 깊이 있는 사유가 엮인 그 강의는 나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특히 강의 중에 자주 언급된 "본래면목"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행동하려고 한다. 사회적 규범 속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며, 그것이 마치 정답인 양 살아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정해진 기준이라면? 그 의문을 강신주 선생님은 마치 나에게 던지듯이 설명했다.


강의의 초반부에서 강신주 선생님은 혜능 스님과 해명의 이야기를 통해 본래면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혜능 스님은 글을 읽을 줄도 모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깨달음을 얻고 육조로 등극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외적인 조건이나 지식이 아닌 내면의 진리를 보라는 교훈을 준다. 해명이 혜능 스님을 추적해 가사를 뺏으려 할 때, 혜능은 그에게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해명이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고, 나 역시도 이 질문에 머물러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내 본래의 모습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살아온 삶 속에서 그저 남들이 정해준 틀에 맞춰 살아왔던 것은 아닌가?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라는 메시지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선생님은 혜능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앵무새’처럼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게 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다"라고 규정하며, 사회적 규범이나 종교적 교리에서 주어진 도덕적 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선악의 기준이 과연 나의 것이 맞는가? 강신주 선생님은 이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말했다. 남들이 정해놓은 틀을 무작정 따르는 삶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판단하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농부의 비유였다. 강신주 선생님은 인연과 연기의 법칙을 농부의 역할에 비유하며 설명했다. 농부가 논에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벼는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논에 물을 대주는 것만으로는 벼가 자라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 땅의 기운이 맞아야 비로소 벼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결국,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는 자연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이 비유는 우리가 삶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늘 모든 것을 제어하려고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허락된 영역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후에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법칙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많기에, 스스로를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위로를 받았다.


또한, 강신주 선생님은 불교적 사고방식의 여유로움을 강조했다. 그는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에서는 절대적인 믿음이나 도그마가 강요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보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불교의 연기설에 따르면, 모든 것은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며, 독립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으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이 얽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농부가 물꼬를 터주는 순간처럼, 적절한 때에 최선을 다한 후에는 그 결과를 하늘에 맡기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의 후반부에서 선생님은 '선악을 생각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는 사회에서 배운 선악의 이분법적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남을 판단한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은 그 경계를 넘어서는 데서 온다. 선과 악이라는 구분을 넘어서면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남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본래면목을 찾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깨달음이다. 선생님은 우리가 남들 앞에서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듯 살아가는 모습을 비유했다. 사회에서 원하는 얼굴을 하고 살아가지만, 진정한 나 자신은 그 속에 감춰져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 선사의 가르침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남이 만든 규범과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마음속에는 깊은 여운이 남았다. "장미를 흉내 내는 민들레가 되지 말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 행복의 기준을 쫓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피어날 때 가장 아름답고, 장미는 장미대로 피어날 때 가장 빛난다. 남이 정해준 삶의 궤도를 따라가기보다, 나만의 길을 찾고, 나 자신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일 것이다. 결국, 강신주 선생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모두 각자의 본래면목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이었다. 남들이 만든 틀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과 경험을 통해 나만의 진리를 찾는 것.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자, 삶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