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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by 부소유

느낀 점 :


쉽지 않았다. 올해 읽은 10권 정도 되는 민음사, 문동 세계문학 책 중에 제일 쉽지 않았다. 작가는 헤르타 뮐러, 익숙해서 찾아봤더니 장편소설 <저지대>로 유명한 작가다. <저지대>를 누가 추천해 줘서 한번 찾아 읽어보려고 했지만 절판되어 구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재판되어 다시 구해봐야겠다.


어쨌든 이 <숨그네>라는 문학책은 장르를 소설이라고 봐야 할지, 에세이라고 봐야 할지, 혹은 장편의 시, 혹은 그냥 일기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책의 내용은 많은 사건을 짧게 나눠서 여러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들은 시간 연대기인 것도 같고 비슷한 경험끼리 연결한 것 같기도 하다. 이전의 경험을 계속 다시 반복해서 언급하고 경험을 연결 짓는 서술 방법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수많은 비유와 문법들이 굉장히 상징적인 메타포를 가득 품고 있다. 한 장 한 장의 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았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용소 문학은 이미 읽었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제5도살장>, 그리고 아주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의 기억을 보라>가 있다. 단편으로는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가 있다. 비슷한 주제와 배경을 하고 있어도 모든 문학의 성격이 다 다르다. 물론 이 중에 <숨그네>를 읽기가 제일 쉽지 않았다. 문체가 매우 건조하고,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상징적이다. 저자는 이런 글을 무의식과 의식을 왕복하며 여러 개의 경험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이 책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 과정 또한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세 군데 있다. 종이책이 무의미해져서 니체와 괴테의 책이 값싸게 거래되거나 담배로 사용되는 부분,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한 빵 바꾸기 이야기, 큰돈이 생겼지만 그저 더욱 왕성해지는 식욕을 채우기 위해 대부분의 돈을 사용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끝으로 전쟁, 참사, 그로 발생하는 참혹한 비극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No War.




좋았던 부분 :


초승달마돈나


집에서 가져온 책은 수용소에서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종이는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첫해 여름의 반을 보낼 때까지 책들을 막사 뒤쪽 벽돌 밑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헐값에 팔아치웠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담배 마는 종이가 되어 50장에 소금 1되를 받았고, 70장에 설탕 1되를 얻은 적도 있었다. 페터 시엘은 아마포로 표지를 씌운 <파우스트>를 가져가고 양철로 참빗을 만들어주었다. 지난 8세기 동안의 시를 엮은 선집으로는 옥수수 가루와 돼지기름을 먹었고, 바인헤버가 쓴 얇은 책은 좁쌀로 둔갑했다. 그러다 보면 예민하다기보다는 민첩해질 뿐이다. p.130


내 빵과 볼빵


빵 바꾸기는 필수다. 그 과정은 빠르지만 늘 아슬아슬하게 과녁을 비껴간다. 빵은 시멘트처럼 기만한다. 시멘트 병에 걸리듯 빵 바꾸기 병에 걸릴 수 있다. 빵 바꾸기는 저녁의 소요이며 눈에서 불꽃이 튀고 손가락이 떨리는 사업이다. 아침에는 빵 저울의 접시를, 저녁에는 빵과 상대의 눈을 더듬는다. 빵을 바꾸려면 빵뿐만 아니라 얼굴도 제대로 골라야 한다. 상대의 입이 쭉 찢어졌는지 잘 살펴본다. 낫처럼 가늘고 긴 입이 제일이다. 움푹 꺼진 볼에 배고픔의 털이 자랐는지도 살펴본다. 하얀 털이 충분히 길고 촘촘한가. 사람은 굶어 죽기 전에 얼굴에 토끼가 자란다. 그걸 보면 상대에게 빵이 이미 낭비임을, 먹어도 그 값을 못함을 알 수 있다. 얼마 못 가 다 큰 토끼가 밖으로 튀어나올 테니까. 그래서 흰 토끼와 바꾼 빵을 볼빵이라고 부른다. p.134


10루블


10루블은 큰돈이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먹자, 나는 생각했다. 남으면 베개 안에 넣어두고. 가죽각반을 팔 시간이 없었다. 딴 세상에서 온 이 망신스러운 물건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뿐이었다. 나는 겨드랑이 틈에서 각반을 떨어뜨리고는 10루블을 쥐고 좀벌레처럼 쏜살같이 달렸다. 목이 고동쳤다. 그리고 사탕무 시럽을 끼얹은 옥수수빵 두 개를 사서 고추냉이 이파리까지 먹어치웠다. 이파리는 씁스레했지만 위에는 약이나 다름없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고는 치즈가 든 러시아식 팬케이크 네 개를 샀다. 두 개는 베개에 넣어두고 두 개는 먹었다. 발효유도 작은 주전자로 하나 마셨다. 해바라기케이크도 두 조각 사서 한꺼번에 먹어치웠다. 외다리 소년과 다시 마주쳤고 소년이 파는 붉은 나무딸기즙을 한 잔 더 사 마셨다. 그리고 돈을 세어보니 1루블 6코페이카가 남았다. 설탕은 물론 소금도 살 수 없었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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