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평평하지 않다는 것..

by 부소유

지난 주일 미사에서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말씀의 주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세와 하느님께 불평을 쏟아내던 장면이었다. 불평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크게 다가왔다. 속으로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불평이 아니고,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불평이 된다는 설명이 와닿았다. 나 또한 일상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불평을 자주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자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한 이유를 신부님은 세 가지로 짚어 주셨다. 첫째는 현재의 어려움만 보고 하느님의 큰 계획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사탕을 달라고 떼쓰지만 부모는 건강을 생각해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아이는 당장 눈앞의 욕심을 채우지 못해 불평하지만, 부모는 더 앞을 바라본다. 나 역시 삶의 문제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앞의 불편함에만 집중해 불평을 내뱉었던 적이 많다. 신앙 안에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붙잡고 흔들리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둘째는 과거를 미화하는 습성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의 고된 노역을 잊어버리고, 광야의 고통 앞에서 과거가 더 나았다고 기억을 왜곡했다. 불평은 종종 과거의 기억을 조작하면서 현재를 더 힘들게 만든다. 나 또한 어려움이 닥치면 “그때가 더 좋았다”라는 생각을 하며 현실을 원망하곤 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과거 역시 힘든 순간이 많았다. 기억을 왜곡하며 불평을 정당화하는 내 모습이 신부님의 말씀 속에 그대로 비쳤다.


셋째는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기 위해 불평을 내뱉는 습관이다. 불만을 표현하고 나면 누군가 “맞아, 네 말이 옳아”라고 동조해 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마음으로 듣고만 있을 뿐,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경우가 많았다. 다른 이의 험담에 쉽게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내가 불평을 늘어놓을 때는 상대가 함께 분노해 주길 원했다. 그 모순적인 내 모습이 부끄럽게 다가왔다.


신부님은 불평이 습관이 되면 더욱 위험하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큰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불평을 쏟아내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불평이 삶의 기본 태도로 굳어져 버린다. 신부님은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어릴 적 경험이 쌓여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적인 불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들으며 나도 내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나는 어릴 적 결핍과 불안이 쌓여 습관적인 불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결국 불평은 하느님의 계획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과거를 잘못 바라보고, 타인의 공감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자라난다. 나 또한 그런 불평 속에서 자주 흔들리며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며 깨달은 것은 불평 대신 믿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평이 마음을 평평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와 이웃을 넘어뜨린다. 반대로 믿음은 평화를 준다.


신부님의 말씀은 나를 계속 반성하게 했다. 나이가 들어도 철들지 못한 채 불평을 내뱉는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신부님은 우리 모두가 ‘나이 밥’을 먹고 성숙해지기를 바라셨다. 불평 대신 감사로, 원망 대신 신뢰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앞으로는 불평이 입술에 오르려 할 때 잠시 멈추고, 하느님의 더 큰 계획을 바라보려 한다. 과거를 미화하기보다 현재 주어진 은총을 감사하며,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해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희망을 나누고 싶다.


사실 이번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였다. 나도 그들처럼 쉽게 불평하지만, 동시에 나도 변할 수 있다. 불평이 습관이 아니라 믿음이 습관이 되기를, 그래서 내 삶이 평평한 마음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자. 그렇게 하루하루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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