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혹은 <무기여 잘 있어라>

by 부소유

<노인과 바다>에 이어 헤밍웨이를 다시 골랐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읽고 나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헤밍웨이 단편선>까지 전부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와는 느낌이 달랐다. 노인과 바다가 좀 더 스펙터클했다. 전쟁 소설이니까 이것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은 계속 덤덤하게 흘러갔다. 로맨스가 나오고 에세이 같은 서술이 이어지고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것처럼 끝까지 갔다. 스위스로 넘어갈 때 큰일이 날 줄 알았다. 상어라도 올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목가적인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사람이 죽었다. 아이가 먼저 잘못되고 엄마가 뒤따랐다.


헨리는 대문자 T라고 생각했다. 캐서린 바클리는 대문자 F였다. 둘이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서로 동문서답하고 딴 얘기를 했다. 중반부에 헨리는 체스 같은 게임을 하고 싶어 했는데 캐서린은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대화하자고 하면 헨리는 고집을 부리며 게임 한 판 하고 대화하자고 했다. 끝까지 둘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거의 막판에 요즘 말하는 것처럼 대문자 T가 사회적 F가 되는 과정이 보였다. 캐서린이 처음부터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더 대화하고 싶어 했고, 공감받고 싶어 했다. 헨리는 사랑이라는 건 관념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확인해야 하느냐, 같이 놀면 되지, 쉬었다 가자. 이런 식으로만 대응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그 과정들과 대사들이 재미있었다.


헨리는 유물론자 같다고 느꼈다. 캐서린은 관념론자 같았다. 민음사 뒤에 번역자가 쓴 작품 해설에도 유물론자와 관념론자 간의 대조에 대해 짧게 언급이 돼 있었다. 내 감이 틀리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배경도 궁금해졌다. 이 소설을 계기로 전쟁사도 좀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음사 판본 앞에는 지도가 있었다. 다른 출판사에는 없었다. 지명이 낯설어서 지금 어디서 싸우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마다 그 지도를 한 번씩 펼쳐봤다. 지금 시국도 전쟁 시국이니까 시의적절한 소설이기도 했다. 이란과 미국,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실시간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6.25 전쟁이 있었고 그전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수많은 외침을 겪었다. 그 안에서 죽어나간 민중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람 한 명 죽는 것은 쉬웠다. 이 소설에서도 그랬다. 서로 오해해서 아군을 총살하는 부조리한 일이 벌어졌다. 왜 인간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서로를 침략하고 싸우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내부에서 5.18이나 제주 4.3 같은 일이 벌어지고, 윗사람들의 탁상행정이 비틀어지면 그냥 군대를 보내고 결국 민중이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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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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