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심'으로 일하고 있나요?

Part1. 진심이 담긴 일을 시작하다.

by 부캐스트
당신 인생에서 전환점은 언제인가요?


누가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스물일곱 봄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지금의 9년차 회사원 부캐를 만들어준 순간.



지금은 남편이 된 구남친과 만난지 2년차 되던 해.

불미스러운 일로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한동안 일을 쉬게 되었고, 생활비를 위해 인생 첫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나이에 카드를 만들기엔 너무 어렸던걸까 무모했던걸까. 20대 후반에 같이 만들어낸 얼마 안되는 그 '빚'이 주는 압박감은 생각보다 두려웠다. 어쩜 핑계였을지도. 노량진 공시생이던 그 때의 나는 마침 두번째 국가직 시험이 끝나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인생 통틀어 두번째 알바를 시작했다.

유명 공무원 학원에서의 사무직 알바.

대학시절부터 용돈 벌 시간에 공부를 하라는 아빠의 압박으로 월급이라는 것을 받아본 것은 단기알바가 다였기에, 모든 것이 서툴었다.

심지어 무섭게 생긴 원장님을 마주쳐도 못 본체하며 인사도 하지 않았다. 감히 조직의 최고 권력자에게 인사도 않다니 베짱있었네 나..


내 업무는 간단했다. '담임'이라는 이름의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사사로운 학생들의 문의를 응대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나눠주고 각종 수업자료를 복사하고 화장실에 떨어진 물비누를 채우는 직원들이 꺼려하는 모든 잡일.


첫 일주일엔 참으로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당시 학원 건물만 6개. 수백명이 꽉꽉 차던 수십개의 강의실에서 쉬는 시간만 되면 학생들이 우르르 무리지어 '담임'을 찾아왔다.


"쌤, 저 오늘 단어 다 외웠어요!"

"쌤, 저 오늘은 일찍 왔어요!"


분명 몇 일 전만해도 그들과 같은 공시생이였음에도 이해되지 않았다. 난 쉬는 시간에도 아침에 틀린 단어들을 외우느라 화장실도 잘 가지 않았는데.. 저들은 왜 쓸데없는 저 말을 하러 사무실까지 온걸까.


그들의 말에 '담임'의 답변은 더욱더 의문이였다.


"거봐, 하니까 되잖아"

"이야~ 왠일로 일찍 왔어! 내일도 일찍 오면 아아 쏜다!"


'담임'의 업무는 신기했다.

매일 새벽 공시생처럼 강의실 출석체크로 출근도장을 찍고

쉬는 시간엔 학생들과 수다를 떨고 수업이 끝나면 매일 20명이 넘는 학생들과 1:1 상담을 진행한다.

그 와중에 손가락마다 형형색색 분필가루가 가득한 강사들의 비위를 맞추며 물티슈를 건네고

1타 강사 타이틀이 본인 것인냥 어깨에 뽕이 가득찬 조교들과 다음달 수업 스케줄을 논의한다.

그러다 지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상경한 신입생들이 방문하면 현혹된 말로 지갑을 열게 만들기까지.


의문이 풀린 건 불과 2주도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깨달음이였겠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쉬는 시간마다 찾아온 학생들은 메말라가는 공시생 생활에 숨통이 필요했고 '담임'은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존재이자 기댈 곳이 필요했던 학생들의 작은 쉼터였다.

강사와 조교들의 비위를 맞춘 것이 아닌, 조금이라도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행동이자 수업 만족도를 올리기 위한 그들의 의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 상경한 초시생의 지갑을 여는 것만이 목표는 아닌, 그동안의 데이터를 통해 현실을 알려주고 플랜을 함께 고민해주는 가이드였다.


어쩌면 잠시 잊고 있던, 외롭고 막막했던 공시생 시절에 빙의되어 별 것 아닌 직원들의 행동이 미화되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원들만 있던 사무실에서의 시시콜콜한 대화에서도 진심이 느껴졌고 그 모습이 그저 신기했다. 회사일을 저렇게 진심으로 한다고..?


우리는, 우리가 지금 만드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사무실 벽에 붙어있던 이 회사의 비전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다니.

알바 첫 날부터 봤던 대문짝만한 문구지만 다시 보니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이 사람들, 이 회사. 찐 진심이네..


그 날부터였던 것 같다. '진심'을 담아보자!

내 할 일만 실수없이 하면 모범알바라 생각했던 나도 업무에 '진심'을 담아보기 시작했다.

결석한 수업자료를 받으러 온 학생에게 무표정으로 프린트만 건네는 것이 아닌, 다른 수업은 놓친 것 없는지 쓸데없는 한마디를 더 건네보았고

강사가 올 시간이 되면 미리 주변에 물티슈를 두었다.

떨어진 물비누를 채우는 것이 아닌, 학생이 몰리기 전 전층을 돌며 화장실에 물비누를 미리 채워두었다.


사실 진심을 담아봐야겠단 거창한 생각은 아니였다.

그깟 알바였던 내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감사해하는 학생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알바처럼(?) 행동하면 안 될 것 같았달까.

그저 나도 남들에게 큰 존재처럼 보이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별 것 아닌 작은 성취감에도 뿌듯했다.

많은 직원들을 이끌고 있는 '원장'이 대단해보여 그간 피했던 인사를 이제야 하게 된 정도.(하지만 항상 내 인사를 씹으셨다.. 역시 첫인상이 중요하다)



OO아, 직원 해볼래?


여느때처럼 화장실 물비누를 채우고 오던 나를 실장님이 복도로 불러냈다. 잠시만 일하다 다시 공시생으로 돌아가려던 내 계획에는 아예 없었던 선택지.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대학시절 취업특강 자료들을 뒤적였다. 자기소개서를 써 본 게 몇 년전이더라..


내 꿈이였는지 부모님의 꿈이였는지 모를 공무원에 미련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일테지만, 2년의 공시생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사실은 가슴 깊숙히 밀어만뒀던 것 같다.

뚜렷한 목표없이 책상에 앉아만 있는 기분.

힐링이 필요하단 핑계로 친구를 불러 술을 마신 다음날엔 어김없이 캄캄한 새벽 노량진으로 향했던 영혼없던 몸뚱아리.

그 2년엔 내 '진심'이 담겨있던 순간이 있긴 했을까?


고민은 하루면 충분했다.

처음으로 취업을 위한 자소서를 썼고 출근하면 늘 뵙던 팀장님과 설레는 첫 면접을 봤다.

인사를 씹으시던 원장님과 긴장되는 2차 면접을 봤고 회사비전을 만든 대표님과 최종 면접을 봤다.


면접이 진행되던 때에도 평소처럼 물비누를 채우던 알바생은 다음날부터 '직원'으로 출근하게 됐다.




내 인생의 전환점은, 내 각종 비밀번호이기도 한,
'진심'이 담긴 일을 시작하게 된 첫 회사 입사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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