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정받은 첫 팀은 7급공무원 준비생을 담당하는 '7급팀'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같은 신입이라는 동질감에 괜스레 의지가 됐던 동기 2명과 함께.
사수도 생겼다.
첫인상은 누가 봐도 앳되보여 학생인가 싶었지만 기혼자였고 어느 직원, 강사, 학생들과도 거리낌 없이 너스레를 떨던, 모든 말에 장난이 섞여있어 가벼워 보이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가 있던 재밌고도 신기한 분이었다.
근데 이상하다. 첫 1개월 동안은 회사에서 다루는 툴 외에는 딱히 교육이랄 게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신입의 첫 한 달은 A는 이렇게 하면 돼. B는 저렇게 하면 돼 라는 앉아서 듣는 교육으로 가득 찬 장면들이었는데..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던 건지, 스스로 기억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서였는지 입사 때 받은 노트를 항상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첫 일주일간은 적은 게 거의 없었다.
사수가 가는 곳에 같이 따라가기 바빴고 프린터에서 뭐라도 나오면 사수 책상에 갖다 놓느라 눈알만 정신없이 돌아갈 뿐이었다. ㄱ나니..? 다들 바쁜데 나만 할 일이 없어 뭘 해야 할지 눈치만 보던 시절
정신없는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쌩신입인 나와는 달리 2명의 동기는 짧지만 동종업계 경력이 있었고 내 눈엔 그들은 항상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사수의 모니터를 집중 공략(?)했다. 사수에겐 집중 테러였을지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뒤에 서서 혼자 메모를 했고 보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도 사수는 기다렸단 듯이 내게 답해주었고 차차 '업무'가 생기게 되었다. 자리로 돌아와 까먹지 않게 바로 똑같이 따라 해보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동기들처럼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막히는 순간이 왔다. 분명 메모한 엑셀 수식대로 똑같이 했는데 잘 되지 않았고 네이버와 동기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들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사.수.
잘 생각해보고 다시 해봐.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고 짜증이 났다.
아니 잘 안되니까 물어본 건데 잘 생각해보라니... 다시 해도 안되니까 물어본거잖아..
내가 진짜 다시 해보는지가 궁금한 건지 내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그분 덕에 다시 하는 흉내를 냈고 결과는 역시 실패.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눈빛으로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장난스런 미소를 띠며 다시 해보라는 고갯짓만 할 뿐이었다.
"여기서 얘의 값을 구하고 싶은 거니까 여기서부터 범위를 정하고~"
잘 생.각.하면서 하고 있다고 일부러 들리게 혼잣말을 했다.
"얘의 값을 구하고 싶은 거 맞아? 근데 이렇게 범위를 지정하는 게 맞아? 너 이 값 구하고 싶은 거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아니지?ㅎㅎ"
놀리듯 말한 그의 농담을 다시 되짚어보니
'오잉 그러네.. 나 잘 생각한 거 아니었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정답을 알려주면 되는 쉬운 방법을 두고도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고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 그 사수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데이터 형식이 달라도 배운 함수가 적용이 안되던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 '잘' 생각하게된 그때부터 진짜 '내 것'으로 체화할 수 있었으니까.
'일'은 알려주는 게 아니었다.
A는 이렇게, B는 저렇게. 그렇게 정답만 교육 받았다면 지금의 내가 그 수많은 엑셀 함수들을 응용할 수 있었을까?
9년차가 된 지금의 나는, 그 시절 사수의 별 것 아닐 수 있는 그 인내심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수많은 후배들이 버벅거리고 이상한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할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단 걸 지금은 너무나 잘 아니까.
아직도 난 그런 사수가 되기엔 멀었지만,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내 첫 사수를 떠올리며 노력하는 중이다. 누군가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훗날엔 도움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