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지 못한 청년들의 초상 (肖像)
이 글은 국내 유일의 OTT 미디어, <OTT뉴스>에 1월 14일자로 기고된 글입니다.
군대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딱 두 가지. 내가 싫어하는 선임들의 모습이 나에게서 보일 때랑 내가 후임들에게 잘 했는지, 못 했는지 헷갈릴 때였다. 문제 되지 않은 군 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전역할 때 가장 눈에 밟혔던 건 후자였다. 후임들은 정작 전역하는 나를 보고 속이 후련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왜 후임이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선임처럼 굴었는가. 전역하는 날까지,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 채 20대 초반을 장식했다. 그런 대한민국의 "나"를 찾는 드라마, 한준희 감독의 <D.P. (2021)>다.
감독 : 한준희
장르 : 드라마, 사회
개봉 : 2021. 8. 27.
시간 : 6부작
연령제한 : 15세 이상 관람가
원작 : <D.P 개의 날> (김보통)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도 아니고 당장 내일 입대인 안준호 (정해인)는 피자 배달을 하다가 입대를 하게 된다.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달래기 위함. 인간 대접 못 받는 훈련병 시절을 마치고 도착한 자대는 헌병단. 2014년의 헌병은 그 어떤 때보다 부조리가 그득그득한, 아이러니한 집단이었다. 벽에 박힌 못을 피하지 못하게 밀치는 황장수 (신승호) 병장의 가혹행위 속에 이를 가득가득 갈던 준호는 군탈담당관 박범구 (김성균) 중사의 눈에 띄어 탈영병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에 소속된다.
사회에 나갈 수 있고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느슨해진 준호는 박성우 (고경표) 상병을 만나 첫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행선지는 강남 역. 성우의 부탁 아닌 강요에 의해 임무 도중에 술을 먹고 흥을 돋는 분위기에 맞장구 쳐주던 준호는 어느 순간, 모든 게 꼬여버리면서 각성하게 되는데…
6부작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담으려 했지만 대체적으로 준호의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입대 전부터 훈련병, 자대 배치를 받은 이병 시절까지가 시즌 1의 내용이다. D.P. 조로 발령난 이후로는 한호열 (구교환)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다. 캐릭터에 대한 사전 배경이 살금살금 흩뿌려져있지만 자세하지 않아 추측하면서 캐릭터를 이해해야만 한다.
캐릭터를 시청자가 스스로 추측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D.P. (2021)>는 최고의 몰입감을 뽐내는 수작이다. 가히 올해의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뼈저린 군 생활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시스템과 사람 사이의 갈등, 그 시스템 속에 있는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은 드라마를 꿰뚫는 핵심 내용이며 답이 없는 물음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시스템에서 살던 20대의 어린 청년들은 어느덧 나를 "해하는" 또 다른 시스템 속에서 어떤 입지가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행동한다. 어리숙한 생각들은 어긋나기 쉬운데 장수와 그의 후임, 조석봉 (조현철) 일병은 그에 어울리는 초상 (肖像)이다.
전학을 가면 내가 새로운 학교에서 어떤 식으로 보여질지 아무도 모른다. 소위 "일진" 무리에 섞이게 될지, 그들의 피해자 무리로 살게 될지, 아니면 이들을 지켜보는 방관자가 될지, 그 아무도 모른다. 어떤 무리에 소속되면 그 소속감에 의해 쉽게 다른 무리로 전환하기가 어려운데 그나마 다행인 건 학교에서는 선생님, 부모님을 비롯한 절대적 권위자가 있고 또 학교만 끝나면 다른 일상에선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군대는 다르다. 어떤 무리가 되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잠을 자는 그 순간까지, 그 무리가 된다. 마치 장수가 '준호의 와꾸만 봐도 화가 난다'라고 말하듯이 이유 없이 싫어질 수도, 좋아해야 할 수도 있다. 가장 괴로운 건 자고 일어나도 똑같고, 변함없는 하루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달라지려고 노력해도 누군가가 - 특히 상급자가 - 낙인을 찍어버리는 순간, 나는 그 낙인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아무리 그 상급자가 전역을 하더라도, 그의 세력이 잔존한다면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탈영을 하는 것이다.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군 생활이 엿 같아서 등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탈영병들은 군대에서의 현실이 싫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 극단적인 결정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돌아가야 하니까. 벗어나려 해도 이 시스템에 있어야만 하니까. 그럴바에 나를 잃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나를 잃는다"는 표현은 군대 내 상담병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표현이다. 1년 넘게 상담병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접했는데 나와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대화가 필요한 사람과 나를 잃고 있는 사람. 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여기선 이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이 없었다. 대부분은 다른 동기나 상급 간부에게 도움을 청하는 뿐이었는데 이들이 도와주지 않는 순간, 스스로를 잃는 걸 막기 어려웠다. 가장 자부심 넘쳤던 본인을 잃게 되는 순간, 목숨을 끊는 건 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녔을 것이다. 경험컨대 자신이 가장 아꼈던 '나의 모습'은 여자친구에게 사랑 받던 나였다. 그래서 이별 후의 탈영병이, 자살 시도가 많아진 것이다.
나는 22살의 나이에 입대해 24살의 나이에 전역했다. 대부분의 선임과 동기들이 나보다 어렸고 군 생활은 1년 차이가 나는데 나이는 2살 차이가 나는 아이러니함을 겪기도 했다. 이런 거에 익숙하고 개방적이라 생각했던 나도, 동갑내기 동기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회자한다. 그만큼 군대라는 시스템은 '나를 잃기' 좋은 시스템이다.
그래서 종종 추천한다. 나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고 믿음과 신념, 그리고 긍정적인 바이브가 조금이라도 준비되지 않았다면 군대를 늦추라고. 사회의 통념과 달리 내가 생각한 군대는 빨리 가서 더 힘든 곳이었다. 끊임 없이 본인을 부정하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나를 잃지 않고 어찌 어찌 군 생활을 하려면 상황적인 운이 필요한 장소였다. 극단적으로 그 운이 잘 따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라. 대부분은 준비되지 않은 청년들이 즐비했고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들을 깎아내렸고 잡아 먹었다. 피해자들은 살아남지 못한 게 아니고 남들보다 더 순수했을 뿐이다. 나만큼의 착함이 모두에게도 있을 거라는 그런 순수.
훈련병 시절의 사진들은 어리버리 그 자체다. 여긴 어디, 난 누구. 근데 부모님 걱정은 끼치기 싫으니 활짝 웃자- 라는 식의 사진들. 이 어리석은 청년들의 초상화는 때로 초상 (初喪, 사람이 죽는 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라고 말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너보다 더 영악하고 속세에 쩌든 아무개가 널 잡아먹었고 그 개인을 탓하기엔 대부분이 그러하니 시스템을 탓하는 것이다. 아, 물론 시스템도 문제가 있다. 준호는 말한다. "군대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안타깝게도 답은 곧바로 나온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국방부의 허가가 떨어졌을테니 드라마로 나온 것일텐데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에 대해 계속해서 곱씹었다. 시대상이 달라서? 현재는 많이 나아졌으니까? 다 정말 개소리. 안타깝게도 여전히 지금도 어린 청년들의 초상화가 초상에 걸리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통계적 오류를 낳는 변명들은 다 개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가혹행위의 가해자, 그리고 피해자들은 사회에 잔류해 또 다른 죄악을 낳고 또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 잔혹한 현실에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게 현 문제에 대한 반증이다.
내용 외적인 요소들도 충분히 재밌는 게 많은데 군대 "썰"이라고 신나게 내 얘기만 했다. 일단 정해인은 그간 가지고 있었던 "멜로 눈깔"을 십분 발휘해 부조리한 시스템 속 옳은 신념을 가진 인물로 재탄생했다. 구교환은 다시 한번 본인의 작품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메기 (2018)>로 이름을 알리고 <반도 (2020)>로 명성을 쌓은 구교환은 특유의 껄렁껄렁 거리고 정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이 아닌 본인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모가디슈 (2021)>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는데 앞으로의 필모그래피가 더욱 더 기대되는 배우다.
감초 같은 역할의 김성균, 손석구는 정말 군인 같아 보인다. 더 나아가 현봉식의 존재는 내 방구석을 부대로 만들기 적합했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조현철, 조석봉 일병으로 나온 조현철은 그간 짧게만 나왔던 아쉬움을 제대로 폭발시킨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감정선을 살리는 모습인데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과 그 애매함이 쌓이고 쌓여 폭발했을 때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해냈다. 정해인, 구교환이 테이블 세터라면 조현철은 4번 타자다. 이들의 연기력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하다.
하는 법도 모르는데 입대식을 할 때 부모님께 충성을 하라고 한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뭐가 올라가서 하긴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이 시작은 "끝"이라고 말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이 그 끝을 내 삶의 끝이라고 외치지 않길 바라며,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아, 군 생활을 짧게 공유했던 제작지원 손석주 님께 샤라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