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erland 'Til I Die》 그깟 공놀이가 아닐 때
사회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 1820 ~ 1903)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 (Man created societies because of their fear of life and they made religions because of their fear of death)" 하지만 잉글랜드, 타인위어 주에서는 죽음보다 구단, 선덜랜드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죽어도 선덜랜드"라고 외친다.
주제 : 스포츠, 축구
개봉 : 2018년 12월 14일
방송사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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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선덜랜드 (2018~2020)》 시즌1의 1화 첫 장면에서는 교회로 시작한다. 목사는 "선덜랜드 축구팀과 우리 도시를 위해 기도합시다"로 예배를 시작한다.
- 하느님 아버지, 축구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축구가 어떻게 우리를 결속시켜 우리를 결속시켜 줄 수 있는지 보여주시옵소서.
- 매 경기마다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 우리의 팀이 최고의 성적을 내지 못할 때도 분노와 격분의 감정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선덜랜드 시민들이 좌절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모두 열심히 일하는 선량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 도시와 축구팀을 향한 올바른 사랑의 마음을 갖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 그 사랑은 모두 열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 선덜랜드와 우리의 모든 선수들이 모든 경기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그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주시옵소서.
- 우리 팀의 성공은 곧 우리 도시에 성공과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아멘.
17-18 시즌, 선덜랜드는 세계 4대 축구 리그로 손꼽히는 프리미어리그 (Premier League)에서 2부 리그인 챔피언십리그 (Championship League)로 강등된 첫 시즌을 보낸다. 그 절망감 속에서 팬들은 교회에서 기도한다. 팀이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하게 해 달라고. 교회에서 유니폼을 입고 기도한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경기장으로 향한다. 홈 경기장인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Stadium of Light)에서 선수들을 향해 욕한다. "꺼져", "내 부인이 그것보다 잘 차겠다" 등 실컷 욕을 퍼붓는다. 처참하게 무너진 팀이지만 그다음 주에도 경기장으로 향한다. 왜냐고? 선덜랜드니까.
축구팬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드라마의 결말은 비극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했는데 아무래도 제작진이 바라는 그림은 2부 리그에서 1부로 승격하는 그림이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3부 리그로 강등되는 비극을 담았다. 잘 나가는 구단이 말 그대로 '몰락'했다. 그게 시즌1의 결말이다.
시즌2는 18-19 시즌을 담았다. 강등되면서 새로운 구단주가 자리 잡았고 새로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보통 상위 리그에서 강등된 팀은 어떤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리그 상위권을 지킨다. 아무래도 시즌2는 그렇겠지, 이번에는 승격하겠지, 하면서 봤지만 알다시피 시즌2도 비극이다. 승격을 앞두고 결국 3부 리그에 잔류한다. '또' 실패한 것이다.
실패의 연속. 실패는 결코 익숙해지지 못한다. 1부 리그에서 강등될 때에도 구단의 많은 구성원들이 떠났고 3부 리그 소속이 될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선덜랜드를 떠났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식단과 편의를 책임져주는 직원들과 코치까지도. 구단주는 무책임하게 새로운 구단주에게 매각했고 새로운 구단주는 엉망이었던 팀을 구해내려 발버둥 친다. 팬들은 아우성친다. 경기력이 엉망인데 왜 리 캐터몰 (Lee Cattermole)을 계속 기용하냐고, 반 시즌 동안 16골이나 넣은 조시 마자 (Josh Maja)를 왜 이적시키냐고. 구단의 운영진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속사정부터 그 속사정을 겉으로만 보는 팬들의 심정까지 적나라하게 담는다.
다른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선수와 구단의 운영진을 주로 비춰주지만 《죽어도 선덜랜드 (2018~2020)》는 팬들이 주인공이다. 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선덜랜드를 보고 "왜 이렇게 좋아하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보통은 이기는 팀을 좋아할 텐데, 지는 팀을 보고 욕하면서도 여전히 좋아한다. 그들은 왜 몰락하는 팀을 버리지 못하는가.
과거 조선업과 탄광업으로 이름을 날린 도시 선덜랜드는 1950년대, 조선업의 몰락과 함께 축구팀 선덜랜드도 위기에 처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축구팀 선덜랜드가 몰락하면서 공동체는 그들의 부흥을 기도한다. 우리는 이 팀이 성공하지 않으면, 우리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극단적일 수 있으나 그 정도로 선덜랜드는 공동체의 전부다. 우린 "죽어도 선덜랜드"만을 응원할 것이다.
그래서 시리즈 내내 열정이 느껴진다. 구단의 상징색인 빨강은 팬들의 열정이 만든 색깔이다. 어린아이도, 노부부도 경기에 희로애락을 녹여낸다. 아버지가 알려줬던 선덜랜드 팬으로서의 길을 아빠가 되어 아들에게 소개한다. 구단의 성공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한때는 그랬지'하며 늙음을 실감한다. 그렇게 선덜랜드는 단순 축구 구단이 아닌 공동체가 된다. 커뮤니티라는 개념은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 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프로바둑기사 조치훈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에 어떤 것도 영향을 못 미치는 바둑이지만 나에게는 세상 그 전부인 바둑. 선덜랜드 지역의 사람들도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깟 공놀이지만, 그래도 세상 전부인 축구, 그리고 선덜랜드.
* 여담이지만 리그 재개 전인 2020년 6월 3일 기준, 선덜랜드는 3부 리그 격인 리그 1에서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흐름이면 이번 시즌도 잔류에 가깝다. 세 번째 시리즈도 비극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