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산타할아버지께

산타할아버지 엄마가 할머니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by 책중독자 진진

기억나니?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고, 게다가 일요일이었으니 엄마는 눈은 떴지만 이불속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어. 그런 내 옆에서 너는 포근한 이불 위에 뒹굴뒹굴거리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걸어왔어. 작은 입이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은지, 너는 쉴 새 없이 종알댔어. 귀여운 아기새처럼 말이야.

그게 '엄마 얼른 일어나!'라는 신호인 줄 알면서도 엄마는 일어날 수가 없었어. 밤이 길어지는 겨울이 되면 한 없이 이불속에 몸을 숨기고만 싶어 지거든. 게다가 그 이불은 지금 너와 함께 덮고 있는 짙은 남색의 꽃무늬 이불인데, 너도 알다시피 이 이불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엄마는 도저히 이 이불속에서 나갈 수가 없었어. 너도 덮어봐서 알지? 이 이불이 얼마나 포근한지 말이야.

그렇게 한참을 침대 위를 뒹굴대던 네가 갑자기 엄마에게 물었어.

"엄마, 내가 어른이 되면 엄마는 할머니가 되는 거야?"

작은 네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했을까? 엄마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 줬어.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럼, 그렇지."

"안돼, 엄마 할머니 되면 안 돼. 그럼 우리 같이 있을 수 없잖아."

그러더니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야. 엄마는 네가 무얼 할지 궁금해서 가만히 웃으며 너를 바라봤어.

"산타할아버지. 우리 엄마가 늙어도 할머니가 되지 않으면 좋겠어요. 원래 모습이면 좋겠어요."

너는 어디서 봤는지 무릎을 꿇어앉은 채, 작은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고 있었어.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엄마가 왜 할머니가 안되면 좋겠어?"

"그럼 죽잖아. 엉엉."

아... 엄마가 네 곁을 떠날까 봐 두려운 거였구나. 예쁜 내 딸!

나는 가만히 너를 안아 주었어.

너에겐 그게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찡해왔어.

그러고 보니 엄마도 어린 시절 가족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문득

아빠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펑펑 울었었는데...

그때의 아빠는 허허 웃으셨던 것 같기도 하고 눈에 눈물이 맺히셨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내가 그때의 아빠처럼 어린 네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짓는 부모가 되다니,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큼 네가 날 크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하지만 아가, 걱정 마.

엄마는 언제까지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네 곁에 있을게.

겉모습까지 그러리라곤 장담 못하겠지만

친구처럼 함께 커피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그렇게 친구처럼

네 곁에 있을 게.

그러니 걱정 마 아가야.

그리고, 엄마 아직 할머니 되려면 멀었어!


- 23년 12월의 마지막 날, 소중한 둘째 딸과의 대화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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