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다디단 밤 산책

달콤한 아이스크림, 그보다 더 달콤했던 대화

by 책중독자 진진

아들, 네가 7살이 됐을 무렵. 너는 너무나도 말을 잘하는 아이가 되어있었어.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엄마는 너와 대화를 하다 종종 뒷목을 잡곤 했단다. 너는 너만의 논리로 엄마에게 무언가를 따져댔고, 엄마는 엄마만의 논리로 너에게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지. 그런 대화가 너의 성장에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종종 피로감을 느끼곤 했어. 그래서 결국 네가 엄마의 뜻대로 말을 듣지 않는 날은 종종 예의와 참을성을 억지로 강요하는 듯한 억지스러움으로 대화가 마무리가 되는 날이 많았던 것 같아. 그즈음엔 특히 그랬어.

그래서 대화의 끝이 늘 개운치 않았지.


그러던 어느 날. 그런 개운치 않은 대화가 끝을 치닫던 날이 있었어.

아빠가 10박 11일의 출장을 갔던 그 끝무렵이었지.

그때 엄마는 육아휴직 중이었지만, 아직 2살밖에 되지 않은 둘째가 엄마와 너의 마음을 이해할 리 없으니, 엄마는 둘째에게도 너에게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너희를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어.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하루하루 아빠가 돌아오는 날은 계산하며, 10일 남았다.. 9일 남았다.. 할 만큼 엄마에게 그때 하루는 길고도 길었단다.(이건 너희를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의 문제는 아니란다. 조금은 성장한 너희들이라면 엄마의 이 마음을 이해해 주려나?)

엄마는 그날도 동생이랑 차별한다며 서운해하는 네게 네가 해야 하는 일과 동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직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네게 엄마는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강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너에게 첫째 아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의젓해지기를 강요해 왔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는 그게 옳은 행동이라 믿었어. 엄마에게도 숨 쉬어야 할 구멍이 있어야 했으니, 네가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랐던가 봐.

그날도 엄마는 너에게 잔소리를 해대곤, 둘째를 재우고 나왔어. 그러고 나니 거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네가 보이는 거야. 그리고 그 시각 깨어있던 사람 중 가장 작았던 그때의 네 모습이, 실은 진짜 너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됐어. 어리석게도 엄마는 동생이 생겼단 이유로 네가 갑자기 훅 자라기라도 바랐던 가봐.

몸이 조금 편해지니, 갑자기 네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


"00야, 우리 둘이서 산책 갈까?"

"정말? 우리 둘이서?"

"응, 우리 둘이 나가자."

"그럼 동생은?"

"CCTV 켜두면 돼. 잠깐 둘이 데이트하자.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좋아!"


동생이랑 같이 하는 산책은 그렇게 귀찮아하더니, 둘이서 밤산책을 가자하니 너무나도 좋아하던 너.

엄마는 그때 네가 신나 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이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자주 못해 줬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가득 들었지.

그날 우리는 아파트를 한 바퀴 산책하고, 그네도 타며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고 편의점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까지 나눠먹었어. 그러고 나니 글쎄 네가 세상 착한 아들로 변해있는 거야.

엄마를 서운하게 바라보며 화를 내던 표정은 사라지고 세상 순하고 맑은 얼굴로 엄마를 보고 웃고 있었지.

너는 활짝 웃으며 엄마에게 말했어.

"엄마, 일주일 중에 오늘이 제일 행복해."

이 정도의 노력에도 너는 이렇게 반응을 해주는 데, 엄마는 그동안 무얼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사랑을 베풀면 저절로 해결될 일을 엄마는 널 붙잡아두고 혼내는 방식을 택했던 지난 시간들을 참으로 많이 후회했단다.(그런데 말이다 아들.. 사랑도 마음이 여유로워와 샘솟는다는 것을 조금만 이해해 주겠니? 이건 뭐.. 사과 편지를 쓰면서 자꾸만 이해를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만..)

아들, 그날 우리가 정했던 약속 기억하니?

"00야, 우리 화가 나도 가족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고, 오늘 같은 즐거운 추억을 서로 기억하자. 알았지?"

"응, 엄마. 그리고 서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즐거운 추억을 하나씩 더 만들자. 오늘처럼."


그때의 우리는 이렇게 도덕책에 나올법한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었단다. 엄마는 우리의 대화가 너무 아까워 블로그에 기록해 두었었지.

일곱 살인 너와 나눈 대화를 더듬어보며 엄마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돼. 그때보다 우리의 대화가 좀 더 성숙해졌나? 떠올려 보는 중인데.. 도저히 100점은 못 줄 것 같아.


아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 이 날을 떠올리며 엄마랑 밤 산책 한 번 다녀오자.

그날처럼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고 말이야.

물론, 엄마에겐 아이스크림보다 너와 나누었던 이 모든 추억들이 더 다디달지만.


- 2020년 9월. 일곱 살 아들과의 대화를 추억하며.



# 언젠가 이 글을 보게 될 아이들에게..

요즘 너희들과 나누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어. 이 글들을 모아 너희에게 줄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엄마는 어떤 글을 적을까.. 예전에 적었던 블로그의 글과 메모장에 남겨두었던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들춰 보았어. 오늘은 아들, 네 이야기를 해 볼까 해. 둘째는 둘째라서 귀여워하며,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너를 '첫째'라는 프레임을 씌워, 얼른 어른이 되기를 기대한 바보 같은 엄마의 고백들이 이어질 예정이야. 참으로 부끄럽지만 소중한 기억들, 나중에 함께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질 이야기들, 혹은 언젠가 이 글을 보게 될 너희에게 전해질 사과의 글이 될지도 몰라. 언젠가 이 글들이 책으로 완성되어 너희와 함께 읽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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