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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Dec 15. 2023

잘 안 보는것과 안 보이는 것 사이에서

영문 조판 가이드북 - 라틴알파벳 조판의 모든 것(안그라픽스)

책의 마감을 진행할 때는 챙겨야 할 것이 많기에 ‘잘 안 보는-안 보이는- 것은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 또는 ‘그 역할만 하면 되는 거니까 좀 작게 해서 페이지라도 줄이자’라는 악마파와 ‘그래도 할 건 제대로 해야’ 지라는 천사가 싸운다. 물론 거의 내 안의 정의감이 천사의 편을 들어 한 번 볼 것도 두 번 세 번 보며 어떤 것이 더 적절한지 고민해서 최종 결정하지만 그래도 악마의 속삭임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걸 누가 보겠어. 작게 해서 페이지라도 줄이자’는 말은 거의 백이면 백 ‘이런 걸 누가 보라고 이렇게 (작게) 한 거예요’이라는 피드백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출처: 안그라픽스


누군가의 성토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좀 더, 조금만 더! 를 외치며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놓으려 노력한다. 그래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외국어 조판의 경우가 그렇다. 한국어(한글)를 제1언어로 삼고, 글을 쓰니 당연히 외국어(주로 영문) 조판을 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외국어 조판은 책 곳곳에 숨어 있다.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번역서의 참고문헌이 그렇다. 아무리 적게 들어가도 몇 페이지 이상 되는 경우가 많고 그 안에 이탤릭, 굵기 조정 등 세세하게 다른 요소가 많다. 게다가 한국어(한글)와 외국어(주로 영문)는 점유하고 있는 공간 자체도 다르고 띄어쓰기의 너비, 글자의 리듬감으로 인한 글줄의 길이나 정렬의 개념이 아예 다르다고도 할 수 있어 외국어를 제1언어로 쓰는 사람이 본다면 다소 이상한 조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앞서 말한 대로 늘 찜찜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문제를 완벽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책이 나왔다. 이 또한 외서이긴 하지만 같은 네모자 글자를 쓰는 일본인의 시선으로 탈네모자라고 할 수 있는 영문 조판에 대해 설명한 점이 기존에 나왔던 많은 타이포그래피 책과 다른 점이다. 동양인의 시선에서 볼 수밖에 없고, 때론 보이지 않는 많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작가인 다카오카 마사오는 정식으로 출판이나 디자인을 배운 사람은 아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활판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하나씩 차근차근 활자와 글자 그리고 조판을 마치 나무가 나이테를 쌓아가든 차곡차곡 그리고 빼곡하게 배운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쉽게 설명해 나간다. 그리고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한 게 최고인 시대에서 느리더라도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효율적인지, 아름다운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쉽게 돌이킬 수 없는 활자 조판에서 최선의 집중력을 발휘해 뽑아낸 조판과 놀라울 정도로 안일하게 짜인 조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보이느냐고. 그리고 한 번쯤은 더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떠냐고.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안그라픽스는 이런 고민을 공유하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요즘 같은 시장 상황에 내놓기 쉬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들의 책 간기면에는 늘 만든 사람의 정보와 책에 쓰인 글꼴을 표기해 준다. 이를 보고 많은 이들이 이 책에 쓰인 글꼴의 사용과 쓰임, 구성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독자를 비롯한 디자이너에게 큰 배려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의 자부심과 자신감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만들면서 또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과연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안그라픽스에서 발행되는 거의 모든 책의 간기면에는 만든 사람들의 정보, 책에 사용된 글꼴들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다.


* <이 책은 왜>에 소개되는 모든 책은 100퍼센트 내돈내산, 일체의 협찬없이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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