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의 어느 날 새벽, 라디오를 들으며 잠이 들던 열일곱의 한 청소년이었던 나는 벼락같은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 물론 진짜 벼락은 아니었으나 벼락같은 충격을 주는 소리였달까. 고요하고 유니크했던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에 선잠이 들었던 나는 벌떡 일어나 펜과 종이를 찾았다. 노래가 끝나고 DJ가 말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이었습니다.'
당시 방송되고 있던 프로그램은 새벽에 방송되던 영화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었기에 의레 영화음악이겠거니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새벽에 휘갈겨 쓴 종이 쪼가리를 들고 동네 모퉁이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레코드점에 달려갔다.
"아저씨,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가수가 있어요?"
아저씨는 열심히 R칸을 찾았고 단 한 개의 CD를 발견한다.
rain, rain, rain........
CD 뒷면 수록 리스트를 확인하다가 <rain>을 발견했다. 그러고선 손에 든 CD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당시의 나로선 거금이었던 1만 원에 가까운 9천 얼마를 썼다.
아저씨는 쿠폰에 도장을 찍어주고 나는 그 벼락과도 같은 충격의 음악을 확인하러 집으로 거의 날아갔다.
출처: 나무위키
https://youtu.be/omWZGZ2HZu8?si=6ufnrfwkmUd_NWWR
'아... 가수는 아니었구나. 연주자였나 보네'
라고 나는 그를 반쯤만 이해하고 음악을 들었다. 앉은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약 60 몇 분을 꼼짝도 않고 마치 6분을 들은 것처럼 집중해서 들었다.
알고 보니 그 음반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명반 중의 명반 <1996>이었다(실제 발매일이 1996년 6월 4일). 내가 첫 귀에 반한 'rain'만큼이나 수록곡 모두가 명곡인데 그중 'rain'과 함께 내 귀와 심장을 때린 명곡도 앨범에 수록돼 있다. 바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 1983, 한국 제목은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 존재를 알고 있지만 본 적은 없다는 그 영화. 어떤 음악가는 케이블 방송에서 우연히 이 영화가 방영되는 걸 보고 너무 기뻐 각 잡고 보았지만 어느새 졸고 있었다는 전설의 영화. 그 영화의 동명의 주제곡이다. 영화는 제2차 대전 당시 일본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화해와 인간 이해’를 다루는 작품이라고 하는데(실제로 보지는 못했으므로) 류이치 사카모토를 비롯해 데이비드 보위, 기타노 다케시 등의 배우가 출연하며 감독은 무려 1978년 제31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오시마 나기사이다. 영화를 본 적은 없으나 몇몇 스틸컷, 포스터, 결정적으로 주제곡의 존재감에 보지 않아도 띵작임을 확신했고 인생 음악 중 한 곡으로 꼽곤 했다.
출처: 나무위키
https://youtu.be/fyk6vjwI3wc?si=jPH9e5_URxjlZA5o
그랬던 '그' 노래가 조금 색다른 형태로 갑자기 나의 알고리즘을 타고 유튜브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2024년 ive(아이브)에 의해 <supernova love>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된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아이브의 만남이라니... 나는 그 케미의 조화나 폭발력 등 보다도 그 '조합'자체에 '화들짝' 놀랐다. 그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조합이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최애'와 '최애'의 조합이지만 반가움보단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이 조합은'케이디엠 레코드'에서 진행하는 'THE COLLAB X 프로젝트'의 첫 번째 앨범으로 아이브와 David Guetta의 영어 컬래버레이션 디지털 싱글이었다. 한마디로 프로젝트성이고 이미 20번 정도의 리메이크 전적이 있었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이었기에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새 시대를 맞이할, 이 곡을 원래 대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소비할 준비가 너무 안돼있었던 것뿐이었다.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1996> 음반을 듣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내 세계에서 상상했듯, 지금의 시대에서 지금의 방식대로 풀어낸 것뿐이었다. 명곡이라면 의레 거치는 수많은 일 중 하나 아니던가.
나이가 들면서 나는 많은 것과 부딪힌다. 그런데 그런 거의 모든 일이 기존의 내가 이미 공고히 세워두었던 어떤 기준 같은 것과 부딪힐 때는 당황하기도 한다. 마치 이 음악들을 들었을 때. 그리곤 생각한다. 때론 추억도 새로운 추억이, 해석이 쌓일 수 있도록 그냥 둬야 하는 시기도 있다고. 나는 그것을 배워가고 있다. 그 시절 류이치 사카모토로부터, 지금의 아이브로부터도 말이다.
* 대한민국에 아이브 팬이 아닌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나의 경우 문제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x48> 첫 화 장원영님의 등장 그 순간부터 그녀의 팬이었다. 고로 그녀의 행보와 모든 것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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