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의 <넘버 원(1)>과 지코, 이쿠라의 <듀엣(2)> 사이에서
옛날옛날 밀레니엄 버그라는 것이 생겨 세상이 혼돈 상태가 될지 모른다는 암흑이 예고된 세상 즈음에 한 소녀가 '현해탄'을 건넜다. 그녀는 무려 열세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밝은 에너지로 그 현해탄 너머에서 '넘버원'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10대 가수가 드문드문 존재하긴 했으나 시대의 상황을 반영이라도 한 듯 특유의 순종스럽고 소녀소녀함을 잃지 않은 채 조용조용 활동했다면 그녀는 '난 내 세상이 (따로) 있죠'라고 기성세대를 향해 선전 포고를 하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 엄청난 성량을 자랑하면서도 기존 댄서와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멀티로 보여줬다. 이는 기존에 없던 캐릭터의 등장이었고 이에 다소 당황한 동시대 소녀들은 그녀를 동경하기보단 질투에 가까운 억까를 시전했다. 그랬던 그녀가 그 많은 억까를 물리치고 우리 동네도 아닌 옆 동네에 가서 넘버원을 찍었다. 아시아의 빌보드와도 같았던 오리콘 차트에서 넘버원을 찍은 것! 세상은 순식간에 그녀의 세상이 되었다. 일본 어딜 가도 그녀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도쿄,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의 성지(?) 와도 같았던 메인 핫스팟, 시부야의 정중앙에 있는 109라는 건물 메인 광고판에는 몇 해동안 그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는 일본에서의 그녀의 입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 그 자체였다. 그녀는 한국이 아닌 또 다른 경제 부국에서 성취를 이룬 것이다. 이른바 케이팝 해외 활동의 선구자, 보아의 이야기다.
그녀는 지금 해외 활동하고 있는 한국 가수들의 길을 깔아준 사람이나 다름없었는데, 세계 시장으로의 도전이 성과를 낸 거의 첫 사례라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노래가 아닌 그 시절 제일 유행하는 스타일로. 그런 그녀가 걸어간 길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었다.
일단 언어가 현지에서 통해야 했고, 그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고로 그녀는 외국인이니까 오히려 더 좋은, 약간은 어설픈 일본어 '회화'를 구사하면서도 노래만큼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발음으로 일본어 발음으로 노래했다. 얼핏 듣기엔 그 나라 사람이 부른 것처럼도 들리고 '잇쇼겐메이(일본어 표현으로 '일생을 바쳐'정도. 아주 열심히 힘내서 노력한다는 뜻)' 노력하는 그 어린 소녀의 모습에 일본인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에서 발표한 노래를 일본어로 바꿔 부르기도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생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cK3qpJfb7w8
그 후에도 많은 한국 가수들이 그녀를 본받아 일본 시장을 개척(?)하러 떠났고 성공을 거두고 돌아오는 사례도 많았다. 그렇게 그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공식과 방정식이 되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 있었으니 가사는 항상 원웨이였다는 것. 한국어 버전, 일본어 버전. 각 버전에 영어가 들어가는 건 오케이였지만 각 나라의 말이 들어가는 사례는 없었다. 그녀가 개척한 길의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그것이었다. 가사라는 언어의 경계. 그 경계를 침범하는 사례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었다.
이에 판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분명 일본어 버전이라고 노래가 나왔는데 일본어 가사는 멜론 가사 기준으로 50개의 글줄 중 단 여섯 줄. 거의 영어와 한국어가 반반의 비율로 90퍼센트를 차지한 노래가 나왔으니 뉴진스의 'supernatural'이다. 심지어 이 두 줄 조차 한국 버전에선 한글로 대체됐다. 관계의 위계랄까 중심이 바뀌기 했지만 이때까지도 **'버전'이라는 장벽은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soyDLFPWE&list=RDsssoyDLFPWE&start_radio=1
그러나 얼마 전 그 장벽이 깨졌다. 더 이상 '버전'은 없다. 노래만 있을 뿐이다. 노래 속 가사에는 영어, 한국어, 일본어가 모두 나온다. 그러나 가사에 끊김은 없다. 여흥구를 위한 알 수 없는 영어 가사도 없고 세 가지의 언어를 썼으나 하나의 흐름으로 읽힌다. 이는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이미 수십 년 전 '난 id는 peace B'라고 선전포고했던 한 소녀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답으로 돌아온 결과처럼 보인다. 세상은 하나로 연결됐고 그 시절에는 '코넥팅 인 '마이' 네트워크'에서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 어떤 네트워크에서도 세계인은 연결되어 있고 언어는 그들을 이어준다는 것을 노래로 보여 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써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이해할 수 있다. 묘하게도 No. 1에서 Duet으로 돌고 돌아 둘이 되었으나 다시 하나가 되는 경험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신기하게 느껴지고 서로가 가깝게도 느껴진다. 아, 맞다! 한국과 일본은 옆동네 사는 사이지. ㅋㅋ
https://www.youtube.com/watch?v=QplijwggNxs
덧. 사실 <Duet> 이전에도 서로의 언어를 쓰며 노래한 사례는 있다. 두 곡당 한국 쪽이 랩을 맡고 일본 쪽이 노래를 맡았다. 한국에서도 니게하지 댄스로 유명한 드라마 <도망치는 것도 도움이 된다>의 주인공이자 가수인 호시노 겐과 래퍼 이영지의 <2>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둘이지만 사실상 일본어 하나를 썼다는 점이다. 두 곡당 발표일은 딱 10개월의 간격을 뒀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같은 듯 다른 소통의 방법을 찾아가는 듯하다.
덧 2. 이 글을 쓰고 난 후 전설의 '보아'는 25년간 함께한 기획사를 떠났다. 한국과 일본에 J-pop과 K-pop의 존재를 알려줬고, 보아와 그 기획사가 하나의 세트로 아이콘 그 자체였다. 그녀와 기획사의 결별 기사에 또 한 번 K-pop과 J-pop의 다음 단계가 눈앞에 왔음을 체감하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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