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작가>

북킹콩의 독서 일기

by 김국주

오랜만에 중고가 아닌 새책을 샀다.

새책 냄새도 맡아보고, 책 커버도 씌우고,

책장의 종이 질감도 만져본다.
이쯤 되면 변태가 따로 없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선택해서 구입한 게 아니다.
독서 토론 리더라는 수업의 과제를 위해 샀다.


그래서 사실상 사전 지식 하나도 없이 구입을 했다.
그리고 저자 소개를 보고 당황했다.

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갈 책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제목만 봤을 때는 한국판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14p

그리고 내용을 보고 다시 한번 당황했다.
내용의 무게가 가벼울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작가... 상당히 유머러스하다.
슬픈데 웃음이 나온다. 이거 엄청난 재능이다.


그리고 도스토... 의 주인공들이 찌질하다는 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넘나도 찌질해서 열은 받는데
작가의 명성(?)때문에 차마 화는 못 내고
씩씩대면서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존중이란 존경이나 숭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자’ 로서 그 사람을 대우하고
승인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난 이제야 깨달았다.



1장. 노련한 장애인


26p

이런 노련함 아래에 얼마나 수많은

아픈 경험들이 쌓여있을까...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시켜서 ‘보여지는 나’가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바라보는 나’는 깊은 곳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인식 행위.
이를 ‘성찰성’이라고 한다.
p.33-35


퍼포먼스의 얼굴에 대해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작가가 말하는 퍼포먼스는 참 다르게 다가온다.
삶이 퍼포먼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 나의 삶 자체도 퍼포먼스였다.
표정관리를 잘하는 편임.
나는 얼마나 많은 나를 분리시켰던가...
작가는 얼마나 많은 자신을 분리시켰을까...



2장. 품격과 존엄의 퍼포먼스


사람의 품격존엄에 대한 이야기.

품격’ 이란 사람의 외형적 가치를 위한
일방통행 퍼포먼스의 구현.
존엄’ 이란 사람의 내적 가치를 위한
상호작용 퍼포먼스의 구현.


품격에는 수단만이 존재하지만,
존엄에는 진심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퍼포먼스를 배제한
진정한 존엄의 무대는 어떤 것일까.



3장.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p.78 - ‘푸른잔디회’ 의 행동강령

사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특히 3번.
하지만 ‘보여지는 나’의 퍼포먼스가
배제되었다는 의미는 알겠다.


고도의 성찰적 인물의 연출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는
이 책에 상세히 나와있다.


91p

작가는 이러한 타인 지향적 연극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맞게 이해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 결핍이라는 속성을 진정으로
수용한다 함은 어떤 의미일까.



4장. 잘못된 삶


나를 태어나게 했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시오
p.95

우리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환대해 줄 수 있다.

우리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공동체의 일원, 친구
더 나아가서는 연인, 가족(배우자)으로
환대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우리는 내 아이의 장애를 환대해 줄 수 있을까.


부모가 자기 아이의 ‘잘못된’ 부분까지
환대할 수 있어야 ‘잘못된’ 요소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삶이 존엄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닐까
p.98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97p

실제로 이러한 소송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책에는 아이의 장애를 환대한
아니, 일부로 갖게 한 부부의 이야기가 나와있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다 읽고 나면 쉽게 비난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처음엔 속으로 욕했다.


그런데 저 소송을 보면 이상하다.
‘잘못된 출산’의 경우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납득이 간다.
장애아 vs 비장애아이니까.



117p

그런데 ‘잘못된 삶’의 경우는 본인에 해당되는데
장애를 갖는 경우 vs 갖지 않는 경우 가 아니다.
장애를 가진 본인이 태어남 vs 그렇지 않는 다른 사람이 태어남
한마디로 본인이 태어남 vs 다른 사람이 태어남
인 것이다.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것보단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고 소송을 거는 것이다.



124p

나는 이 대목에서 울 작가님이 정말로 그 결핍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정체성으로 수용했구나를 느꼈다.

129p

뼈 때리는 이 말은 어느 방향에서 찍어보아도
반박이 불가능하다.


5장. 기꺼운 책임


진짜 어렵다.
그럼에도 챕터의 마지막을 읽고 나면 어렴풋이는 알겠다. 사실 이 조차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님께서 이 정도까지만이라도 흡족해하시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믿음은 나의 의지에 따라
믿거나 믿지 않기가 어렵지만,
수용은 오로지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p.139

작가님께서 이번 챕터에서
정신승리” 와 “수용” 의 차이점에 대해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이건 나도 정말 궁금하다.
나름 정신승리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믿고 있기에
내가 하는 정신승리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역시 참 궁금하다.


146p

자발적인 실천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것이 정신승리와 수용을 나누는 키워드가 된다.


장애가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면,
산물로서의 가치보다
수행으로서의 가치를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p. 148



149p

정체성이 어떤 산물, 즉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경험에 맞선 이야기, 즉 과정이라는 이야기인가 싶다. 잘 이해했는지 확신은 없다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가 아닌
자신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지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p. 152



즉 자발적이고 실천적인 책임이다.
그래서 산물이 아닌 수행으로서의 가치인 것이다.

154p

이것이 이번 챕터의 결론이다.
하지만 저 문단만 보면 절대 이해가 불가하다.
챕터 전체를 곱씹듯 씹고 또 씹어야 가물가물 이해가 갈듯 말 듯 하다. 나는 그랬다.



6장. 법 앞에서



그런데 이 결핍이란 것을 내가 개인적으로만 수용한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란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 속해있고 사회에는 규율 즉 법이 있다. 이 법이란 것은 강제성을 띄고 있고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

이번 챕터의 폐쇄병동 이야기는 진정 슬프고 무서웠다.


170p

강제로 갇힌 정신병원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가 정신병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착실하고 성실하게 치료를 받는 길 뿐이다. 정신병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다.


과거 인생을 돌아보며 구축한 가상의
자아는 그 이야기의 일관성,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우리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 181



우리는 각자 인생이라는 책을 쓰고 있다.
과거에 써놓은 이야기도 많다.
그리고 미래에 쓸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미래에 쓸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흐름을 유지해야 하니까.
갑자기 뜬금없어지면 안 되니까.
우리는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에 의존해서 미래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우리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186p

그 이야기의 가치는 예술성에 있지 않고,
각기의 고유성에 있다.
그리하여 각자 이야기에 위계질서는 없다.
모든 이야기가 평등하다.
저자가 누구 건간에....


199p

이 부분은 진짜 모르겠다.
그럼에도 중요해 보여서 일단 써보겠다.

무시무시한 사회 안에서 이 고유한 이야기들이
조금이라도 무시를 덜 당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커버링’을 거부하는 방법.
논리적 근거를 강제하는 대화
커버링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대라.
이것을 강제 시 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정말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불가한
중증 장애인이라면 어찌해야 하나.
작가는 ‘공동 저자’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의 친구들, 가족들이 이야기의
공동 저자가 되는 것이다.



7장. 권리를 발견하다


하지만 사회가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여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든다고 하여도 사실상 무용지물일 경우가 많다.


“장애인의 차별을 금지한다.”
단순히 이걸로는 사실상 차별은 막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각자 조건이 다르기때문.

​작가가 책에서 얘기한
‘오줌권’이나 ‘이동권’ 이 대표적인 예다.

​어떤 식당이 ‘장애인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고 써붙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단 3개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식당주는 차별을 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고객이 걸러지게 되어있다. 그건 비단 식당뿐이 아니라
대학, 회사, 기관, 대중교통... 등등....
거의 모든 장소에 해당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차별을 진정으로 막을 정책.
이 제도를 ‘배려’ 아닌 ‘의무’로 만들어야 한다.


권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변화는
대개 강력한 저항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p. 227


하지만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는 약자들은 보통 비주류에 속한다. 비주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세상이 주목할 만한 강력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
좋은 말로 해선 절대 안 들어처먹는다.

228p

장애인들은 강렬한 투쟁 끝에 법률이 명시한 자신들의 자유권을 배려가 아닌 사회적 책무로 바꾸었다.
이것이 불과 몇 년 전 이야기.



238p

이러한 합리적 편의 제공은 이제 의무다.

딱히 장애인뿐 아니라 더 광범위하게 나아가다보면 이것을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간혹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법이 정한 사회적 책무이다.

​그것도 윗분들이 배려심 충만하여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길고 강한 투쟁을 거쳐서
약자들이 스스로 얻어낸 산물이다.

이 책무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에 따른
논리적 근거를 대야 한다.



8장.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


이 책이 독자 입장에서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챕터만은 독자보다는 작가님 입장에서 어려워 보였다.

​아름다움이란 것은 너무나도 주관적인 가치라 설명도 설득도 그 어떤 개입도 불가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주관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그런 미적 기준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사실상 무용지물이긴 하지만 외모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고용이나 교육의 영역이 아닌 사랑과 우정 같은 사적인 애정의 영역이라면?”(p.253)
이것은 절대적으로 개입이 불가하다.

257p

하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미적 기준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디보티즘이란 것을 한번 보자.

​이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페니시즘과 같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절단된 다리를 욕망하는 것은 비정상이고
미끈한 다리를 욕망하는 것은 정상인가.
뭐가 다른 것인가. 같지 않을까.




267p

우리는 전에 수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작가는
신체에 대한 혐오야 말로 그 존재에 대한 진정한 부정”(p.267)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렇다면 이유야 어쨌든 디보티즘은 괜찮지 않을까.


271p

작가님은 그 생각을 한번 더 뒤집는다.
한국판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 느낌.

엘리슨은 디보티즘을 연구한 끝에
디보티 예외주의를 발견했다.

​디보티즘이 단순히 신체를 욕망한 것이라면 패티시즘과 같다. 하지만 디보티들은 자기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절단된 신체를 혐오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자기들만이 그 신체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디보티즘은 페티시즘과 달라진다.

284p

그렇다면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이란 무엇일까.

​시작의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욕망의 이유가 단순히 신체라고 해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어디로 나아가는가이다. 몸에서 시작해서 그 몸을 가진 개별자에 대한 사랑으로 에로스가 확장될 때”(p.268)
그것이 사랑이 된다.


내가 우리 신랑을 처음 좋아한 이유는 키가 크고 잘 생겨서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신랑이 화내지 않은 유한 성격에, 꽤 양심적으로 행동하고, 엄청 똑똑한 데다가 유머러스해서 좋다.
지금은 뚱뚱해졌지만 그것도 나름 귀엽다. 머리는 빠지지만 너무 똑똑해서 머리카락이 못 견디는 것 같다. 무뚝뚝하지만 측은지심이 있어서 늘 안 보이게 배려를 해주는 편이다.

울 작가님은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의 순간적 스냅사진이 아닌 세월이 축적된 초상화.

​그런데 세월이 축적된 초상화를 그리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자주 만나는 것이다.
자주 보고 오래 만나야 저런 애정들이 쌓인다.

우리가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친목 모임에서 자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9장. 괴물이 될 필요는 없다.


엄마는 나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서,
내가 지금 같은 장애가 있는 걸 알았으면
그래도 낳았을까?
p.291-292



질문하는 입장에서나 받는 입장에서나 가장 무서운 질문이 아닐까.
가장 답을 듣고 싶으면서도 듣고 싶지 않은...

293p

하지만 어느 대답이건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같은 것이라고 작가님은 얘기하고 있다.

297p

부모들은 내 고통보다는 자식의 고통이 더 아프다.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보다 더 큰 것인가.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308p

장애를 수용한다는 말은
그 장애가 객관적으로 좋은 가치를 가졌음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이다.


310p

나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굳이 전사(괴물)가 될 필요는 없다.
완벽해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


313p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진심에서 나오고, 그 사람과 사람의 존중에서 나오며, 그 존중의 순환이 궁극적으로 나를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

p316-317


책을 덮으며,
나 역시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재치 있게 풀어내 준 작가님의 용기와 의지와 행동력과 지성에 감사드린다.

​비록 책 한 권이지만 나는 이 안에서 작가님의 매력을 보았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작가님이 말한 초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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