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떠나 보자고

귀촌하자고 떼쓰는 여러 가지 방법

by 김영
육아 휴직이요!



어느 날, 친한 회사 동료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기차뷰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여기는 어디지? 상주? 경상북도 상주? 당장 메시지를 보냈다.


- 어디 간 거예요? 이사 갔어요?

- 네! 상주로 이사 왔어요. 첫째 입학 맞춰서요.

- 진짜? 친정 근처로 간 거예요?

- 친정이 가깝긴 한데, 그것 때문은 아니고 농촌 유학하려고요.

- 농촌 유학? 와, 멋있다! 그런데 회사는요?

- 아, 저는 일주일에 두 번만 사무실로 출근하면 되고, 남편은 육아 휴직 냈어요.

한 번도 육아 휴직 안 써서 2년이나 쓸 수 있더라고요. 일단 휴직 기간 동안에 할 일 찾아보기로 했어요.

- 진짜? 육아 휴직?! 우리 출근날 만나서 점심 먹어요!


유레카! 나는 방법을 찾아냈다. 시골에서 먹고살 방법을 말이다.




내가 세 번째 집에 이사했을 때, 친구들에게 집 사진을 보내면서 이곳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 중 한 명이 ‘너는 분명 5년 안에 또 이사할걸?’라고 했다. 나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했다. 우리 가족에게 이보다 완벽한 집은 없다면서 말이다.


우리 부부의 신혼집은 원룸이었다. 그곳에서 2년 조금 넘게 살았다. 분리된 방이 없을 뿐이지 둘이 살기에는 적당한 크기의 집이었다. 함께 음식을 해서 TV를 보며 먹고, 집 주변 산책도 자주 했다. 가끔 부부 싸움을 하면 등을 돌리고 앉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서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집은 방이 두 개인 복도식 아파트였다. 베란다에서 한강이 측면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멋진 뷰에 9호선 급행열차가 서는 역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다. 나는 회사까지 갈만 했지만,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그래도 친정 엄마, 아빠와 좀 가까워져서 좋다고 생각했다. - 엄마, 아빠가 갑자기 귀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이 집은 구축 아파트라, 새시부터 거실 확장까지 인테리어 공사를 전부 하고 이사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정말 힘들었는데, 이사하고 나니 아늑하고 좋았다. 그곳에서 깨를 볶는 신혼 생활을 더 즐기다가 만보를 낳았다.

그리고 세 번째 집은 방이 세 개인 신축 아파트였다. 인테리어 공사 후유증으로 구축 아파트는 절대 싫다고 했는데, 진짜 운 좋게도 남편 회사와 가까운 곳에 조건이 좋은 집이 나왔고,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세 번째 이사를 결심했던 것은 육아로 인해 히스테릭해진 나, 그리고 만보를 위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육아에 더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면서도, 만보의 공간도 만들어 줄 수 있는 넓은 집! 우리 가족에게는 완벽한 조건의 집이었다. 게다가 서울 신축 아파트라니. 나는 이사 후 자수성가했다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영원히 이 집에서 살리라!


그런데 여기에서 3년 살고 나니, 또 이사를 가고 싶은 것이 아닌가! 그것도 서울이 아닌 바닷가 근처 어딘가로 말이다. 그러니 바닷가 근처에 살다가도 또 이사를 하고 싶지 않을까? 나에게 ‘영원히 사는 집‘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육아 휴직을 내고 잠깐 시골에 살다가 다시 서울에 오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줄줄이 뻗어나갔다.

동료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날,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육아 휴직 내면 어때? 나는 사무실에 두 번만 출근하면 되고, 나머지는 재택 근무하면 되니까. 육아 휴직 급여랑 내 월급이면 살만 하지 않을까?”


남편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남편도 직장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쳤을 거라, 휴직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였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남편의 말에 따르면, 남편 직장에서 2년까지 육아 휴직을 쓴 사람이 있다고 했다. 1년은 유급, 1년은 무급 형태로 말이다. 그럼 내가 2년 동안 시골에서 살 수도 있겠다고 말하자, 남편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일단 씨알이 먹힌 것 같았다. 됐다, 됐어! 그럼 다음 차례는 누구를 설득해야 하는 거지?

그때 만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엄마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뷰 아파트에 마음이 뺏겨서 아이는 뒷전인 엄마. 그것이 나의 진짜 모습이었지만, 나는 짐짓 아이를 위해 귀촌하는 것으로 둘러댔다. 남편에게 아까 동료와 밥 먹으며 들은 농촌 유학에 대한 썰을 풀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는 교육비가 안 든대. 교육비가 안 드는데, 학원을 안 보내도 될 만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대.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도 다 학교에 가고, 정상 수업했대. 애들이 적어서 좋고……..”


퇴근길에 찾아봤던 농촌 유학에 대해 유튜브와 블로그 링크를 남편에게 보내줬다. 남편의 마음이 다시 한 번 귀촌으로 더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나와 달리 아이가 우선이었던 남편. 남편은 만보에게 좋은 환경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더 큰 액션으로 맞장구를 치며, 시골에서 키우면 더 좋다고 강조했다. 아마 시골에서는 아프지도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귀촌은 영원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서울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자, 이제 모든 가족들은 내 편이 되었다. 아니, 귀촌에 긍정적이게 되었다. 서울을 일단 떠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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