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고 싶은 이유

시골에서 자라는 기쁨을 물려주기

by 김영
만보 학교는 어쩌고?

내가 처음 바닷가로 이사 갈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발표한 날, 친구가 물었다.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말이다. 그 즉시 난 면접 준비를 철저히 한 취준생처럼 ‘농촌 유학‘에 대해서 멋지게 늘어놓았다. 시골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다양한지, 또 얼마나 근사한지 줄줄이 읊었다. 그리고 만보가 가장 좋아하는 물놀이를 여름 내내 할 수 있음을, 가족이 계속 함께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 순간의 나는 도시의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 만보의 어린 시절을 시골에 사는 기쁨으로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분명 시작은 나의 서울 탈출 욕구에서 시작되었지만, 나 혼자만의 탈출이 아닌 우리 가족의 탈출이니 모두의 꿈을 이루는 귀촌이 되어야 했다. 바닷가뷰에 홀려 무작정 귀촌한 사람일 뻔했지만. 서울을 떠나,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산다면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맨날 동네 산책을 하는데, 그 길에 바다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내가 바닷가 마을로 귀촌하자고 남편을 설득할 때 주로 친 대사다. 남편은 그럼 속초 시내에 있는 신축 아파트가 좋지 않겠냐고 했다. 걸어서 바닷가도 갈 수 있는 데다가 도시의 인프라가 적당히 갖춰져 있으니, 아이 키우기에는 더 좋지 않냐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발 닿는 곳에 다이소가 있고, 올리브영이 있고, 편의점이 있는 번화한 곳이 싫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왜 싫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밤이 되면 불빛이 반짝이는 간판들이 있는 곳이 싫었다. 아주 캄캄하고 고요한 시골 동네에 살고 싶었다.


서울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나의 내면 깊은 곳에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욕망이 어린 시절의 향수 때문이라는 것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깨닫게 되었다. 나도, 남편도 어린 시절에 동네 슈퍼가 하나 있는 시골 마을에 살았는데,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5살 꼬마 시절, 우리 가족은 아빠가 다니는 공장의 사택으로 이사했다. 공장은 김포 외곽 지역(지금은 신도시가 된)에 있었는데, 하루에 버스가 몇 대 안 다니는 시골이었다. 읍내에 있는 유치원 버스가 집 앞까지 오지 않아서 어린 걸음으로 한 10분을 걸어서 동네 슈퍼 앞으로 나가서 버스를 타야 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언니는 읍내 초등학교를 가려면 그 걸음으로 30분을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가야 했다. 여름날이면 나도, 언니도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에는 또래 친구가 없었다. 그래도 언니가 있었고, 집 마당에 강아지, 토끼, 닭, 오리들이 살았다. 언제든지 마당으로 뛰어나가서 동물들과 놀았고, 언니와 시골길을 탐험했다. 풋여름에는 도라지꽃을 터뜨리다가 주인아줌마한테 걸려 후닥닥 도망치기 바빴고, 마을 어딘가에 있던 사슴 농장에서 사슴 구경을 하다가 된통 똥 세례를 받아서 개울가에서 씻어내기도 했다. 주말에는 아빠와 개울가에 미꾸라지를 잡으러 다녔고, 붉은 노을이 질 때까지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5, 6살 시절의 기억에는 가족과 함께 웃던 일만 온통 가득했다.

남편의 어린 시절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속리산 관광 호텔에서 일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언젠가 남편이 살았던 동네를 함께 가 보았는데, 산으로 둘러싸여 고즈넉하고 공기가 참 맑았다. 그곳에서 남편도 형, 동네 친구들과 곤충 채집을 하며 온 동네를 누볐다고 했다.


나와 남편, 두 사람 모두에게 시골 DNA가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복작복작한 서울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모든 시간에 차가 늘 가득한 도로,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기대야 하는 지하철, 정강이 아프게 걸어야 하는 환승 지하도를 지나 출퇴근하는 서울의 삶. 매일 밤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의 환한 낯에 피로함을 느꼈다. 여기를 벗어나, 나 어릴 적 살던 시골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랐던 것이다.


그러니 만보도 서울을 떠나 시골에 살 수 있다면, 나와 남편에게 있는 시골 DNA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만보의 어린 시절 기억이 가족과 함께하는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을 떠나기, 귀촌, 농촌 유학이 우리 가족에게는 지금 꼭 필요한 것이다.


교육 조건도 완벽하다는 농촌 유학,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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