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어강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스탑! 영문법을 암기하는 그대여

문법부터 배우는 언어의 한계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그대여, 태어나서 말을 배우며 문법 체계를 먼저 배우고 언어를 습득했던가? 우리 모두 백지인 상태에서 태어나 주변 말의 소리를 듣고 관찰하며, 이 단어는 이런 뜻임을 직감적으로 배우지 않았는가?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어 문법이라는 과목을 고등학생이나 돼서야 배웠다.

게다가 문법을 배우기 전에 한국어로 이미 충분히 읽고 쓸 능력이 있었다.

즉, 문법은 언어 구사 능력에 있어 기반이 되는 요소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외국어인 영어는 반대로 하고 있는 걸까.



대부분 영어는 말하기 전에 쓰는 법을 배우고, 눈으로 보이는 글자의 소리를 배우다가

제대로 뜻도 모르는 문법적인 용어들을 다 가져다 놓고 암기하라고 시킨다.

영문법을 먼저 배우고 있는 건, 말하기 전에 영어의 틀만 다듬고 있는 거다.

그건 죽은 언어와 다름없는 행위가 아닌가.  

언어는 소통의 창이지 얼마나 아름다운 문법을 사용했는지 감상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영어 강사로 생활하며 가장 크게 탄식하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영어로 말도 안 트인 아이들에게 문법, 즉 언어의 체계부터 주입시키는 것이다.

말이 안 트인 상태에서 무슨 문법이 소용이 있는지. 가끔 내가 가르치면서 회의감이 들곤 한다.

한국어를 배웠던 것이 너무 어릴 적이라 다들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감이 떨어진 상태라 그런가,

대부분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집단 최면 상태인 거 같다.




물론, 문법적인 구조를 알아야 더 고급진 언어를 구사하고, 더 문장의 뜻을 잘 품고 있는 건 백 프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건 가장 최상위 단계에 접한 사람에게 적용시켜야 하는 학습법이어야 한다.

말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정말 잘 읽을 수 있으며, 문법적인 용어들 자체에 대한 심층 이해가 가능한 학습 상태를 갖추었을 때의 학습법인 것이다.




그런 조건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구조에 맞는 언어를 구하게 시킨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 나아가 생각을 구조에 맞추는 것과 구조대로 생각하는 것에는 결국 엄청난 차이가 있을 거다.

문법적 체계 안에서만 생각하는 언어, 즉 죽은 채로 습득한 언어는 절대 살아있는 언어가 되지 못한다.

자유 안에서의 무한한 언어적 능력을, 결국 문법이라는 틀 안에서 제약을 걸고 제한적으로 발전하게 하는 것이 아닌지. 내가 아이들의 학습적인 능력을 가둬두는 교육을 하는 것 같아 매일 같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어떤 교육을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영어를 습득할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보람찰까.



언어적 능력이란 결국 사고의 능력이기에.

영문법 암기는 사고의 능력을 좁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 것이다.

그대여 지금 영어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표현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영문법을 배울 게 아니라 표현법을 배워라. 영문법을 더 외운다고 해서 회화가, 그리고 전반적인 영어적인 감이 절대 늘지 않는다.



물론, 학원 내에 있을 땐 문법적인 요소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결국 나 또한 문법을 암기하라고 지시한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한국 영어 교육은 틀을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문법보다 더욱 중요한 건 직감이다.

직감은 찍는 게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더 많이 말하고 듣고 읽으면, 자연스럽게 더 잘 직감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틀에 갇힌 구조에서 시험 점수만 올리고 싶다면, 문법을 배워라. 암기하고 또 암기해라.

그렇지만 말로 나오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면 문법이 아니라 표현 구사법을 배워라.

실생활에서 쓰이는 용어들을 접하려 노력하고, 두려움 없이 읽고 쓰고 말하려 노력해라. 물론, 한국에서 영어 공부하며 접하기 어려운 환경이긴 하다만..




내가 앞으로 영어 교육에 종사함에 있어서, 나 스스로 떳떳한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를 글자 그대로 읽는 것과 문법적 요소를 파악하는 그 이상을 학생들이 추구하게끔 해야겠다 싶다.

언어는 사고의 기반이자 더 나아가 문화와 생활을 포함한 아주 문화-생활친화적인 요소이기에,

영어를 배우는 것은 그 언어를 쓰는 모든 문화권에 대한 인문학적 공부인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교육에 종사해보니 아이들이나 사람들이 틀에 갇힌 사고를 한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을 조장하는 사회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을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내 아이를 낳는다면 정말 누구보다 치열하게 읽고 쓰며 언어적 유희를 마음껏 누리게 키울 수 있기를 바라며, 나 먼저 좋은 교육자가 되려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강사가 되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