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꽃이 피었단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작약꽃은 분홍빛 등을 켠 것 같단다. 요즘 나는 산책할 때 자주 작약 정원에 머문단다. 그러면 내가 마치 너의 집 정원에 서 있는 것만 같거든. 너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 만같거든. 너는 작약꽃을 좋아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내게 작약꽃은 가슴 저릿한 감정을 올라오게 하는 꽃이란다.
내게 있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약간의 슬픔이 묻어 있지. 그게 사람이든 식물이든 그 무엇이든. 내 감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슬픔. 너의 슬픔은 아직 내 마음의 방에 가득 차 있단다. 나는 아직 그걸 전부 비워내지 못했지. 너와 내가 만난 건 슬픔, 그 자체이기 때문인 걸 알기에 나는 그 슬픔의 방을 어쩌지 못하지. 네 슬픔이 내 슬픔과 같은 공간이이란 건 운명이었던 걸 알기에.
작약은 너무 빨리 속절없이 진단다. 마치 너처럼.
5월이면 너희 집 담장안에 작약이 탐스러웠지.
너는 담장 가까이 작약을 가득 심었지. 5월이면 꽃봉오리 작약을 꺾어 부엌 창가에 두곤 했지. 너는 고단한 네 일상을 피어나는 꽃으로 위로받고 싶었을지 몰라.
그땐 그런 너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지. 나도 나와 많이 닮았으니까.
내가 있는 공간에도 꽃이 아니라도 푸릇한 식물이 있어야 하거든.
5월의 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주황 그리고 분홍. 촌스럽지만 화려하지 않은 환한 색.
나는 네가 오일장에서 장미를 사와 수돗가에 정성을 기울여 꽃을 심던 날을 잊지 못한단다. 여름이면 웅크려 앉아 채송화 사이로 난 풀들을 뽑으며 웃던 네 모습. 채송화, 금잔화, 봉숭아, 분꽃을 키에 맞춰 가꿀 줄 아는 너. 가지, 호박, 토마토, 박들을 어우러지게 심을 줄 아는 너는 태어나기 전부터 정원사. 너희 집은 사방이 꽃과 나무들 천지였지.
종일 밭에서 이리 메치고 저리 메치고 풀 뽑느라 고단했을 네가 꽃밭의 풀까지 뽑을 때면 안타깝다 생각했는데... 그치만 너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일로써가 아닌 너 자신을 의식할 수 있는 시간 말이야. 네 삶이 꽃밭의 꽃들처럼 가꾸어지길 바랐을 테지. 그래서 어쩌면 너는 너를 꽃들에게 투영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너에겐 그런 소박한 시간조차 그리 오래 허락되지 않았지. 네 가정이 평화를 찾을 무렵 너는 몸져 누웠으니까. 마당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의 힘만 남은 너를 보는 건 안타까웠어. 네가 많이 아팠을 때, 나도 돈을 벌기 시작했지. 나는 네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과 주황색 스웨터, 원피스를 사갔지만 너에게 그런 것들은 이미 소용없는 때였지. 그런 것들이 오히려 네 처지를 더욱 처량하게 한다는 걸 나는 왜 알지 못했을까.
네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쉬운 것,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 나는 그처럼 쉬운 걸 해주지 못했어.
네가 안쓰러워 종종 너를 찾아갔지만 매번 용기내지 못했단다. 네가 이생을 마치고나서야 너를 붙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말을 했던 거 같아. '편히 쉬어. 너무 고생했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게 내겐 회환으로 남았지. 그토록 쉬운 말도 내겐 가장 어려운 말이었던 거지.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자랐기에 . 하지만, 아무리 늦게라도 배우고나면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알아. 그러니, 배워서 좋은 말은 빨리 배우는 게 좋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의 방법을 부지런히 배워야한다는 걸 나는 몰랐어.
"사랑한다. 고맙다. 괜찮아." 그런 말 말이야.
그땐 원망이 더 컸던 거 같아. '너는 왜 나와 함께 여행 한번 못 가고 이렇게 누워만 있는 건지... 왜 나는 너를 위해 내 어린 날들을 바쳐야 했던 건지..." 나는 그렇게 너를 원망할 때가 많았단다. 변명하자면 그래서 나는 너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거 같아.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걸 나는 몰랐어.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부질없이 멈춰진다 걸. 내가 성숙하기 전에 누구든 훌쩍 가버린다는 걸...
내가 본 네 삶은 늘 지쳐 보였어. 행복해 보인 적이 거의 없었어.
네가 행복해 보인 때는 새 집에서 화단에 꽃들을 심을 때, 그때뿐이었던 거 같아.
내가 춘천에 살 때 가끔 너를 찾아와 뭐 하냐고 물으면 너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지.
'풀 뽑아야 꽃이 보이지' 그러면 나는 옆에 앉아 함께 풀을 뽑곤 했지. 그리곤 가지며 호박을 따와 네가 해준 저녁 밥을 먹곤 했지. 너는 내가 좋아하는 감자조림을 해줬지.
네가 오랜만에 본 나에게 하는 말은 '잘 지냈니?'가 아니었지. 너를 떠난 나를 조금은 원망하는 눈빛 뿐이었지. 그러나 너는 단 한 번도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어. 그러면 내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걸 너는 알았기 때문일거야. 나는 네가 돌아오라면 분명 돌아갔을테니까. 너는 내가 너처럼 살길 바라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나와 함께 살고 싶으면서도 나를 위해 말없이 보내준 거지. 그게 너의 사랑의 방식이었던 거야. 내가 아이들을 양육해보니 네 마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더구나.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 말이야. 그걸 우린 희생이라 하지. '희생'이란 말은 요즘엔 얼마나 낡은 말이 되었는지 몰라. 앞으로 수십년 후 지구의 온도가 40도가 넘어버리면 '희생'이란 단어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너를 만나러 가면 네 얼굴은 까맣게 타 있었고 눈밑엔 근심 한 스푼이 얼룩얼룩 흘렀지.나는 그런 네 모습을 보며 점점 슬픔을 키워왔는지 몰라. 네 방에는 슬픔이 차고 넘쳐 그 슬픔은 나를 적시고도 남았으니까.
네가 이생에 단 하루 다시 온다면 나는 너와 무엇을 할까? 나는 네가 생을 떠나고 나서 몇 번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어.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그런데 나는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믿는 편이야. 조금 위험한 생각이지. 세상에 없는 네가 다시 살아올 리 없겠지만 나는 언젠가 너를 더 가끼이서 만나려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지.
10년이나 모아서 작은 땅을 샀단다.
그 땅은 너의 땀이 스민 땅, 너와 내가 만난 땅. 기적 같은 땅이지.
골짜기 구름밭을 어디에 쓰려고 샀냐,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더라면 지금쯤 일을 그만두고 놀며 살 텐데... 주위에서 그런 말을 자주 들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땅을 산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단다.
나는 내가 만든 정원에서 너와 많은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하거든. 네가 좋아했던 꽃, 채소, 열매와 새들... 그런 것들과의 만남은 곧 너를 만나는 일이니까.
그 정원엔 네가 좋아했던 꽃과 나무를 심을 거야. 네가 좋아했던 꽃과 나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같으니까. 날마다 새들이 찾아와 열매를 먹더라도 좋을 거야. 너라면 새들에게도 음식을 나누어줬을 테니까.
나는 이제야 알아. 네가 너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네가 만든 작은 정원뿐이었다는걸...
고단하고 두려움 가득한 세상에서 오로지 너를 달래고 위로할 곳은 정원뿐이었을 거야. 그 시절 네 것은 오직 꽃들과 나무밖에 없었지.
그런다고 네 삶의 고통과 두려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네가 가꾼 꽃들과 만나는 그 시간은 오롯이 너 자신이었을 테니까.
네게 있어 평온한 일상은 당연한 것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여 쟁취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지.
네가 나에게 준 것은 이것 하나,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살아야 한다. 사는 것이 힘들다면 견뎌내야 한다는 것.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너만큼은 아닌 걸 알아. 나는 그걸 잘 아니까. 내가 가장 힘들었던 날도 지나 보면 너만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쩌면 죽고싶었던 몇몇 날들도 견뎌왔는지 몰라. 견디고 나니 고통의 날보다 평온한 날이 훨씬 많았고, 눈물나게 고마운 날들이었더라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이룬 것들은 결코 자기 자신을 배신하지 않아. 나는 그걸 너에게 배웠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가꾼 밭, 정원은 너에게 결과로 알려줬으니까.
무기력이라는 힘센 놈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네가 가꾼 꽃밭, 풀 한 포기 없이 가꾸어낸 구름밭을 기억해 내곤 해.
고마워, 너는 이생에 없지만 아직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단다. 나는 요즘, 몇 년 후 돌아가 내가 가꾼 작약밭에서 누구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을 하곤 해. 그게 다음엔 네가 아닌 그 누군가여도 괜찮았으면 해.